ENGLISH ICEBREAK VISUAL VOCA 333 - Basic
영춘선생 지음, Icebreak Contents Lab 기획 / Watermelon(워터메론)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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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현재 영어 폭풍이 휘몰아 치고 있다. 아니 폭풍이 아니라 광풍이다. 여기서 영어, 저기서 영어, 영어, 영어, 영어... 온 나라가 영어를 부르짖고 있다. 왜들 그리 영어 타령인지 영어가 우리 국어인 줄 착각 할 정도이다. 지금의 현상을 과장하면 한글을 버리고, 영어를 우리 국어로 바꾸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다들 영어에 목매고 있지만 영어 실력은 그와 비례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중고등학교 6년, 길게는 초등학교 6년을 합하여 12년 동안 영어를 배우지만 실력은 전혀 따라주질 않으니 교육 실패라고 할 수 있다. 12년 간 영어를 교육함에도 실력이 전혀 늘지 않는 것은 교육 방법과 목표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영어 교육은 독해력 향상을 위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어는 단지 그것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듣기 교육 모두가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진정한 영어 교육이고, 그것이 목표가 되어야 바른 교육이다. 하지만 학교의 영어 교육은 그렇지 않으니 영어가 늘리가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하루에 한 시간이 못 되게, 일주일에 서너번 받는 교육으로는 독해는 커녕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12년을 배워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 받는 영어 교육으로는 아무 도움이 안 되기에 조기 유학을 가거나 졸업 후에 어학 연수를 가는 등 난리도 아니다. 하지만 조기 유학이라면 몰라도 어학 연수는 영어 실력 향상을 100% 보장 해 주지 않는다. 한 마디로 자기 하기 나름이다.

 

 영어는 외국으로 나가서 배워야 한다는 주장은 단지 핑계에 불과하다. 그것은 외국에 나가면 저절로 영어가, 혹은 어쩔 수 없이 늘거라는 막연하고도 안일한 심리에서 비롯된 핑계이다. 여기 한국에서도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영어 실력을 기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자기 노력이 중요하다. 외국에 10년 살아도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이도 있다. 외국에 나가면 영어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이 크게 열리는, 보다 나은 장점이 주어지는 것이지 반드시 영어 실력이 늘게 된다는 보장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외국이든 한국이든 영어 실력 향상에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영어 실력 향상을 원한다면 읽고, 쓰고, 말하고, 듣기 중 어느 한 가지만 일방적으로 키워서는 안 된다. 네 가지 실력 모두를 동시에 늘려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중 분명 어느 하나는 가장 더디게 실력이 느는 것이 있을 것이다. 본인은 네 실력 모두 형편없지만 그중 특히 - 자세히 말하면 - 어휘 실력이 부족하다. 어휘력이 너무 낮다. 그렇기에 문법을 알고는 있지만 단어를 모르기 때문에 읽기, 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본인은 지금까지 단어집을 단 한 권만 사보았다. 중학교 때 말이다. 단어를 깜지 쓰며 외웠다. 그 후 중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단어 암기에 힘쓰지 않았다. 때문에 단어력이 매우 약하다. 단어를 외우는 게 너무 귀찮아서 외우지 않았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어떻게 하면 단어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단어집을 찾던 중 <ENGLISH ICEBREAK> VISUAL VOCA 333 - Basic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ENGLISH ICEBREAK 시리즈야 유명하니 잘 알고 있었지만 단어 시리즈도 나왔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본인의 실력이 너무도 미천하기에 가장 하위 버전을 보게 되었다. 보고 난 후의 소감은 단어 외우는 게 참으로 쉽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단어 외우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이런 책이 진작 나왔다면 지금과 같이 단어력이 형편없지는 않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입에서 흘러 나왔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보게 되었으니 시작이 반이라고, 앞으로 열심히 외우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단어가 지나치게 basic 이라는 것이다. 333개의 단어가 너무나 쉽다. 본인의 단어력이 아무리 형편없다 하여도 기초 어휘는 어느 정도 습득하고 있기에 이 책에 나온 단어 중 모르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참으로 아쉬웠다. 본인은 더 많은 어휘 습득을 원했지 기존 어휘의 반복 암기와 사용을 원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아쉬움에도 이 책이 좋은 것은 단지 단어 나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2~6 단어를 이용하여 문장을 만들어 제시 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아는 단어라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는 알던 뜻대로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많다. 문장 속에서 기본 뜻과는 다르게 사용 되는 단어들이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그것을 알려 주고 있다. 기초 단어들이 실제로 쓰이면 어떻게 뜻이 변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외워 두면 유용한 문장들이 많다. 그 중 본인이 예상한 뜻과 어긋나는 문장들이 많았다. - 물론 본인 실력이 부족한 탓이 그지만 -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이 책에 제시된 많은 문장들을 입에서 자연스럽게 새어 나올 정도로 암기하면 기초 단어들이 문장 안에서 그 뜻이 어떻게 변화되는 지와 문장 속에서 어떻게 배열되는지 지도가 그려질 것이다. 홈페이지에서 이 책에 정리된 단어를 듣고 따라 할 수 있도록 음성 파일을 제공하고 있으니 그것의 도움을 받으면 재미가 더해지고, 지루함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본인과 같이 정말 단어의 뜻과 그 사용에 대한 '생 기초'가 부족한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목적은 단어의 뜻을 가르쳐 주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기초 단어들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그것들을 실제에 써먹으라는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 그렇기에 단지 모든 문장을 암기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이 책을 100%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외운 것들을 어떻게든 써먹어야 한다!

 

 이 책을 볼 때에 유의 사항이 있다. 암기한 내용들을 실제로 써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너무나 쉬운 문장처럼 보일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으로 배울 수 있는 이만 읽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지겨운 반복에 쉽게 낙담하고, 포기하는 이라면 이 책을 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한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이에게만 이 책이 이롭고, 유용 할 것이다. 그것들을 극복하지 못 할 이에게 이 책은 별 도움 안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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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기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조태성 지음 / 베다니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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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신앙의 외적 행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와 말씀이다. 그 두 가지를 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 두 가지를 빼고 무엇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많은 신자들은 그리 중요한 두 가지를 등한시 한다. 아니 중요한 줄 알면서도 가까이 하지 못한다.

 

 둘 중 어느 것을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지만 특히 기도는 하루라도 거르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의 말을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의사 소통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교제의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력 없이는 진정한 대화가 되지 않는다. 대화가 아니라 나의 생각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통보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 진정한 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 되도록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그것을 이룰 수 있을까? 여기 한 책에서 그 방법을 잘 알려 준다.

 

 

 

 '임재기도'

 

라는 제목의 이 책은 얼핏 보면 주제가 '기도'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책의 목적은 내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이루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 방법으로 여러 기도를 소개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도는 찬양을 통한, 성경을 읽고 쓰는 것을 통한, 그리고 책을 통한 또한 묵상, 관상, 침묵 등을 통한 기도이다. 그 기도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는지, 그분과 교제를 할 수 있는지 기도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기도의 방법, 우리가 할 수 있는 왠만한 기도의 방법은 전부 소개한다. 단순히 이러한 것들이 있다가 아니라 앞서 말했듯이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함으로 우리가 실제에 옮길 수 있도록 친절히 돕는다.

 

 내용이 상당히 좋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방법들이 100% 성경적인 방법들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성경은 기도 지침서가 아니기에 이 책에 소개된 방법들을 모두 이용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을 기도는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잘 모르는 이들이나 누구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원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내용이 어렵지 않기에 바로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꾸준히 하지 않으면 이 책에 소개된 방법들이 아무리 좋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본인도 하나님의 임재를 무척 갈망한다. 그분과 교제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다. 그래서 평소에 길을 갈 때 그분과 대화를 한다. 자연을 통해 그분을 노래하고, 그것들을 통해 그분을 느낀다. 그러나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는 못한 느낌이다. 나의 말만 전할 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것을 가장 잘 이뤄낼 수 있는 임재기도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본인이 모르던 기도의 방법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하나님과 어서 깊고, 많은 교제를 나누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분과의 교제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게 되었다. 가자! 그분과 교제를 나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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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심겨진 가시나무
원의숙 지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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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신앙 간증을 일부러 찾아 듣지 않는다. 교회에서 누군가 간증을 하면 듣는 정도이다. 간증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눈을 감기 전까지는 ing이기 때문에 오늘의 간증이 내일의 신앙을 보장해 주지 않기에 간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 그리스도인들 - 가 현재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 하고 있더라도 언제 시험에 빠질지 모른다. 오늘이나 오늘 이후에 신앙의 위기를 맞고 그것을 버리게 될지 더 성숙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의 모습이 아무리 좋더라도 그것은 내일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오늘 아무리 감동적인 간증을 했더라도 내일은 그 간증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의 간증이 아무리 감동적이더라도 그 고백과 믿음을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하나님께 가는 순간까지 유지하지 못한 채 고난 이후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면 전에 했던 간증은 결국 배울 것 없는 한때의 신앙, 어떠한 의미에서 거짓된 신앙이기에 간증을 좋아하지 않는다. - 물론 간증한 사람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는 사람은 없을 뿐더러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면 그 자체도 배울 거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간증의 유익이 매우 큼을 알기에 간증을 들을 때는 참 좋다. 그 때마다 감동이 된다. 간증을 통해 신앙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시련과 유혹을 믿음으로 어떻게 이겨 낼 수 있는지 지혜를 얻게 된다. 장차 나도 비슷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이기면 되는지 이정표가 된다. 나도 현재 그런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이겨내면 되는지 지침서가 된다. 그렇게 간증을 듣는 것은 큰 유익이 되기에 잘 듣지는 않지만 들을 때는 그것에 빠진다.

 



 

 본 서의 저자는 평범한 주부이다. 어머니의 암투병을 간호하며 하나님을 체험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다. 둘째아이를 낳은 후 산후통으로 인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육체의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봉사하였다. 어느 날 놀랍게도 병이 말끔히 치유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재발하였고, 둘째아이마저 소아당뇨 진단을 받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자신의 육체적 고통과 아이의 육체적 고통을 처음에는 잘 견디어 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고통은 그녀의 신앙을 무디게 하였고, 결국 절망에 빠뜨렸다. 믿음이 무너지고, 남편과의 관계도 나빠졌다.

 

 현재 그녀는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 자신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다시금 그분을 열심히 섬기고 있다. 무너진 관계를 회복해 나가고 있다. 그런 그녀의 고백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지금 나의 고난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님이 틀림없다. 고난의 끝은 현재의 내 어려움과 고통이 사라진 때가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고난을 더 이상 아픔과 괴로움이 아닌 기쁨의 축복으로 받아들일 그때가 바로 고난의 끝이자 축복의 시작이라는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었다." - p255.

 

 이것이야 말로 참 간증이고, 참 신앙이 아닌가 싶다. 고난이 지난 후에는 얼마든지 멋지고, 감동적인 간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난 중에는 그것으로 인한 고통에 집중하여 그런 간증을 할 수 없다. 누구나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서 그것을 회상하며 얼마든지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참 기쁨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 하는 믿음의 고백이야 말로 진정한 신앙에서 나오는 참 기쁨이다. 그것은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고백이 참으로 감동적이고, 은혜가 된다. 나도 언젠가 그런 고백을 하고 싶다. 내가 겪는 고난에

 

 "하나님, 왜 저를 고통 속에 빠뜨리셨나요!? 왜 저를 구해 주시지 않나요!?"

 

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저에게 지금의 고통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의 고통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느낍니다!"

 

와 같은 고백을 하고 싶다. 고난을 겪은 후에 간증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 믿음의 간증을 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이겨낸 후 또 다시 믿음의 간증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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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와 웨슬레신학
밀드레드 와인쿱 / 생명의말씀사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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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존 칼빈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그는 위대한 종교개혁자로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와 함께 교회사에 매우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기독교 3대 고전이 된 '기독교 강요'를 썼고, 무엇보다 그로 인해 개혁파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카톨릭에서 분리된 교회가 또 다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가 남긴 사상은 그의 사후 500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웨슬리는 영국의 종교개혁자로, 복음 전도에 열의를 가졌다. 그 열의가 얼마나 컸으면 50년 동안 말을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가 다닌 거리는 지구를 10바퀴 이상 도는 거리라고 할 정도이다. 웨슬리는 당시 영국의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대규모 신앙 운동을 전개하여 그것이 그의 사후 감리교회가 되었다. 그가 교회사에 남긴 족적 또한 칼빈과 비교하여 만만치 않다.

 

 1618년에 열린 도르트 공의회에서 채택된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알미니안주의에 반박을 위한 것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채택됨으로 인해 알미니안의 주장은 이단으로 선포 되었다. 두 주장은 '인간', '예정', '속죄', '은총', '성도'에 관한 교리에서 명백히 차이가 난다. 그후 알미니안이 주장은 웨슬리을 통해 재평가 되었다.

 

 칼빈 신학과 웨슬리 신학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느냐에 따라 이견이 발생 했다. 두 신학이 강조하는 부분이 다르다. 칼빈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데 반하여 웨슬리 신학은 인간의 책임에 강조점을 두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두 신학은 예정론과 성결, 성화 등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이 책은 칼빈주의와 웨슬리 신학을 비교한다. 개인 예정에 관한 교리를 논하는 것을 시작으로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웨슬리주의 신학을 비교하고, 웨슬리 신학이 정통신학과 성령에 대한 교리에 미친 영향 등을 논한다. 주요 골자는 성결과 예정에 대한 두 사상의 교리적 차이다. 이 책을 통해 그 두 신학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정리해볼 수 있다. 따라서 칼빈주의와 웨슬리 신학에 대해 좀더 깊이, 그리고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고 넘어가면 좋을 것이다.

 

 

 

 오늘날의 칼빈 신학과 웨슬리 신학은 두 사람의 처음 주장과는 많이 달라졌다. 더욱 발전 되었다. 물론 주요 골자는 유지되고 있지만 아마 두 사람이 오늘날의 자신의 사상이라 하는 주장을 본다면 상당히 난감해 할 것이다.

 

 두 사람의 주장이 다른 것은 주목하는 초점과 주장하는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후학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다른 주장을 펼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분에 대해 좀더 제대로 알기 위해 자신의 관점을 주장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혼란과 분열을 일으키긴 했으나 그렇다고 그들의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의 몫은 그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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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개인전도 건강한 교회 만들기 시리즈 3
마크 데버 지음, 김귀탁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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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 마태복음 28장 19절

 

이다. 이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으로 성도들의 전도의 이유가 되었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은 전도를 사명으로 삼고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전도한다.

 

 교회는 얼마 전까지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로 열심히 전도하였다. - 사실 지금도 그리하는 이들이 있다. - 6.25 전 후부터 8,90년대까지 전쟁 복구와 경제 발전을 목표로 온 국민이 열심히 살았다. 그 당시에는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고, 그것으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부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당장 먹을 것이 급했기에 그러한 강한 구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경제가 안정 되고, 모두가 먹고 살만 해지자 슬슬 교회의 구호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전에는 몰랐지만 상당히 신경이 거슬렸다. 너무나 이분법적이고, 편협해 보였다. 그래서 저 구호를 들으면 누구나 손발이 오그라들게 되었다. 이제는 저 구호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전도를 하지 못한다. 그 이유로 갖가지 핑계를 댄다. 시간이 없어서, 자신감이 부족해서... 등 핑계를 들어보면 참으로 우습다. 심지어 복음이 부끄러워 전도하지 못하는 이도 있으니 개탄 할 일이다. - 물론 본인도 전도를 하지 못하기에 부끄럽고, 할 말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 전도하지 않는 신앙은 자기만족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이다. 주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신앙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그것에 머물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마크 데버이다. 그는 유명한 목회자로 우리나라에는 '신약 성경의 핵심 메시지' 등 그의 저서가 어려 개 소개 되어 있다.

 

 이 책은 복음 전도의 이유와 목적 등을 소개하는 책이다. 좀더 정확하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 이유', '복음이란 무엇인가', '누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등을 이야기하는, 굳이 말을 붙이자면 복음 전도의 총론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 조금 작고, 내용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복음과 전도에 관해서는 필요한 말만 담고 있기에 책이 상당히 담백하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이가 이 책을 읽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공상을 하며 책을 읽었거나 신앙이 바르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쉬운 점은 내용은 담백하지만 깊이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각 사항에 대해 필요한 말만 하는 대신 좀더 깊은 이해와 설득은 없다. 그러한 단점이 반대로 장점이기도 하다. 그만큼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은 복음을 전하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이에게 추천한다. 그러한 이가 읽는다면 당장 전도에 뛰어 들 것이라고는 장담을 못하지만 도전은 받을 것이다.

 

 

 

 이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가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교회 일각에서도 그러한 구호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지금은 관계 전도가 더 힘을 발휘하는 시대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단의 득세 때문이다.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한 시골 마을에서는 이단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방문하여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러 온 이라 하더라도 이단으로 의심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의 난립하는 수많은 미혹으로 인해 대인 전도가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폐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전보다 유화적이지만 효과적이고, 강력한 방법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전과 같이 사람들이 거부하는 구호만 외친다면 그것은 전도가 아니라 전도를 막는 주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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