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역사 - 구약성서입문 1
데이비드 F.힌슨 지음, 이후정 옮김 / 컨콜디아사(재단법인한국루터교선교부유지재단) / 1983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학교 교재로 구입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 말이죠. 저는 이스라엘 역사 / 왕국사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어 보았습니다. 그 책들은 이스라엘 역사를 성경의 내용 대로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기술한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책은 이 책이 처음입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출간 당시에는 최근 경향이었을 겁니다. 문제는 출간된 지 상당히 오래된 책이라는데 있습니다. 그간에 학계의 연구가 얼마나 진행 되었고, 따라서 또 다른 최근 경향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과 이 책의 내용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 책 외에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된 책을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어쨌든 이 책은 이스라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두 가지 방법을 혼합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적 내용으로, 다른 하나는 학문적 / 고고학적 내용으로 말입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성경 내용으로 기본 골자를 삼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일정한 주제에 따라 이스라엘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학문적 / 고고학적으로 성경 내용을 부연하고, 해석합니다. 기존에 알던 성경 내용과 상충 되는 학문적 연구 및 해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전혀 없다면 그러한 부분들, 학문적 논쟁점으로 인해 혼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은 거짓이란 말인가? 학문적인 연구가 잘못된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이스라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성경에 담긴 그대로 보기 위한 분들에게는 비추천합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역사를 성경에 담긴 대로 보기보다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비평하기 위한 분들에게는 얼마의 도움을 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서왕, 여기 잠들다
필립 리브 지음, 오정아 옮김 / 부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원탁의 기사', '엑스칼리버', '카멜롯 성'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은 브리튼의 전설적인 왕인 아서왕과 관련된 것들이다. 아서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것들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아서왕과 그의 충성스러운 기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혹은 게임 등을 통해 접해봤을 것이다. 아서왕은 카멜롯 성의 이상적인 군주로 마법사 멀린의 도움을 받으며 그의 충직한 12명의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갖가지 모험을 겪는다. 그들의 모험은 매우 신비롭고, 흥미진진하다. 그들의 활약은 독자로 하여금 동경하게 한다. 일각에서는 전설의 아서왕은 역사적 인물을 바탕으로 가공된 인물이라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그와 관련된 다양한 모험담은 상상력을 길러주고, 꿈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다.

 

 '아서왕, 여기 잠들다.'

 

 시중에 아서왕과 관련된 책이 많이 있다. 그 책들은 주로 아서왕의 전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동안 만나본 책들과 다르다. 상당히 사실적이다. 아서왕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다. '그위나(혹은 '그윈')'라는 가공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다른 책들은 아서왕을 전설적인 영웅으로 다룬다. 하지만 이 책은 아서왕을 우리가 기존에 알던 위대한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단지 ('마르딘'이라는) 한 음유시인에 의해 과장되고, 포장된 인물로 그린다.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똑같은 능력을 가진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 그린다. 그러한 아서왕이 어떻게 전설적인 영웅이 되어 가는지 '그위나'라는 인물을 통해 들여다본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책에 등장하는 아서왕은 영웅이 아니다. 그저 한 명의 평범한 인물일 뿐이다. 그나마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브리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여러 개의 작은 군대 중 한 군대를 지휘하던 지휘관이고, 야심이 있다는 점 뿐이다. 그 야심마저도 섹슨족을 몰아내고, 브리튼을 통일하겠다는 원대한 꿈이 아니다. 그저 좀더 많은 보물과 조금 더 넓은 영토를 얻겠다는 것뿐이다. 즉 이 책에는 재미를 주는 극적 장치가 거의 없다. 다시 말해서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없다. 단지 아서왕과 그의 주위에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사실 -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의 사실 - 만 담겨 있을 뿐이다. 그것들을 '그위나'를 통해 진술식으로 기술된다. 그로 인해 지루 할 수도 있다. 대화가 적고, 설명이 많기 때문에 생동감이 적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에 알던 전설적인 이야기들과 전혀 다른 또 다른 이야기 진행으로 인해 새로운 지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단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아서왕이 어떻게 전설적인 영웅으로 과장 되어 가고, 포장되는지 그리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아서왕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기존에 알던 이야기에서와 다르게 변형 되어 있다. 그래서 인물들이 헷깔릴 수도 있다. 하지만 후기에서 누가누구인지 친절히 밝히고 있으니 후기를 먼저 읽고, 본문을 읽으면 내용 이해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과 다윈의 시대 - 인간은 창조되었는가, 진화되었는가?
EBS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 제작팀 지음 / 세계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1859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책 한 권이 출간 되었다. 그 책은 바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종의 기원'은 출간 되자마자 초판이 모두 판매 되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 만큼이나 과학계는 물론 종교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종의 기원'의 출간으로 인해 사람들의 관점과 생각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 전에는 종교의 영향으로 신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전제하에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이루어졌다. 신을 더 알기 위한 수단으로 철학과 자연과학 등이 발달하였다. 하지만 '종의 기원'으로 인해 사람들은 점차 신에게서 벗어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자연을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고, 변화하는 주체로 보았다. 인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제 인간을 신의 작품으로 보는 것을 거부했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로써 자연의 객체, 자연선택에 의해 환경에 알맞은 형태로 변화하는 또다른 주체로 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로 사람들을 혼란에 빠졌고, 끊임없는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지금,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현재 과학은 매우 놀라운 진보를 이루었다. 신의 분노라 여기며 벌벌 떨던 자연현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의 발생을 예측하고, 재해를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원자를 들여다 볼 수 있고, 우주로 나갈 수 있는 놀라운 기술력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진보는 생명의 암호가 숨겨진 '게놈지도'의 완성일 것이다. 영원한 신비일 줄 알았던 DNA의 구조를 파악하여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99%나 밝혀내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어냈다. 이로 말미암아 생명 창조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의 촉매는 다윈의 '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초 '진화론'은 생물학의 한 부분만을 차지 했다. 그러나 이제 '진화론'은 더 이상 작은 한 부분에 국한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의 바탕이 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진화'라는 개념은 이제 과학은 물론이고, 과학을 넘어 사회 전 분야와 인간의 의식 구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영향은 단연 종교에 대한, 종교와의 대립일 것이다.

 

 

 

 '신과 다윈의 시대'

 

 이 책은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했던 '신과 다윈의 시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본문에서는 '진화론'과 '지적설계론', 그리고 '창조론', 그 각각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각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각 주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본다. 무엇보다 세 주장 간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고, 합일점을 모색한다.

 

 이 책의 결론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당연한 일이다. 세 주장의 대립은 당장에라도 터질 화산과 같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건들기라도 하면 심하게 물어 뜯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긴장감이 더욱 심하다. 그래서 이 책은 어느 한 쪽을 옹호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가 양보하고 도울 수는 없는지, 중재자의 입장에서 결론을 맺는다. 지금까지 이러한 시도를 한 책과 다큐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 책과 다큐의 조사와 노력에 큰 값을 매길 수 있다.

  '진화론', '지적설계론', '창조론', 이 세 주장을 비교하며 살펴보고자 한다면 단연 이 책을 추천한다.

 

 

 

 '진화'의 개념이 역사에 도입 되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감히 신을 부인하지 못했다. 단지 신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 주류 종교에서 말하는 신을 - 왜곡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그러나 (앞서 간단히 언급한 바와 같이) '진화'의 개념으로 인해 신은 먼 발치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제 신의 자리를 '진화'가 넘보고 있다.

 

 '과학'을 대변하는 - 아니 어쩌면 '인간'을 - '진화'와 '종교(신)'를 대변하는 '창조'는 '종의 기원' 출간 이후 한번도 쉬지 않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고 있다. 서로 팽팽히 맞서 상대를 날카롭게 반박하고, 부인하고 있다. '과학'은 '창조'를 검증 불가능하다며 부인하고, '종교'는 '진화'를 신을 모독한다며 부인한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원수가 없을 정도로 서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서로 존중하고, 양보 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의사를 내비친다. '진화'와 '창조'는 대립 할 성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화'는 '이론'을, '창조'는 '믿음'을. 둘은 아예 다른 영역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기에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은 '종교'가, '종교'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은 '과학'이 설명하며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서로 양보와 화합이 가능할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논쟁의 당사자들도 예측 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우리가 예상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얼마간 치열한 논쟁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것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3
옥성호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07년 초반과 후반에 연이어 출간된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는 논란과 찬반의 대상이 되었다. 자극적인 주제와 저자의 독설이 어떤 이들에게는 되돌아 볼 자극제가 되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두 책은 출간과 동시에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두 책으로 인한 뜨거운 논쟁이 잦아들 무렵, 3년 만에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이하 엔부기)'가 드디어 출간 되었다!

 

 3부로 기획된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엔부기'는 당초 계획보다 늦게 출간 되었다. 시간이 지나 두 책으로 인한 논란이 가라않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다시 논란이 일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기존의 두 책에서 느꼈던 저자의 강한 독설을 곱씹으며 또 시작이냐고 아예 책을 멀리 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전보다 많이 느슨해졌다며 구성과 필치에 아쉬워 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 책과 시리즈가 주는 자극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음악과 록의 효과와 영향 등으로 이야기가 시작 된다. 이후 CCM -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CCM 과 워십송을 구분한다. 하지만 이후 내용 전개상 둘을 통칭한다. 따라서 저자가 둘을 구분하여 언급 하지 않으면 CCM 이라 할 때 주로 워십송을 가리킨다. - 에 대한 다양한 주장, 그것의 위치와 영향 등을 다룬다. 그 다음으로 예배와 찬양 등을 살펴보고, CCM 의 바른 위치를 모색하는 것을 끝으로 내용이 마무리 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특히 국내외 모 찬양인도자와 찬양을 거론하고 있기에 혼란이 예상된다. 따라서 저자의 말에 무조건 찬성하거나 반대하기보다는 주장의 당위성에 대해 많은 토론과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록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에 따라 록을 기반으로 한 워십송을 분명히 반대한다. 거의 모든 워십송이 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록을 기반을 한 모든 워십송을 폐기하고, 다른 음악 장르를 이용하여 워십송을 만들어야 할까? 워십송의 바른 위치에 관한 저자의 세 주장 - '록을 기반으로 하는 한 워십송은 예배에 쓰일 수 없다', '워십송은 전도의 수단이나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흥분제로 쓰여서는 안 된다', '교회적 차원에서 워십송에 대한 선별 작업이 필요하다' - 중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모든 부분에 대해 좀 더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CCM 의 바른 위치를 찾기 위한 저자의 다음의 말들에 적극 동의한다. "CCM 은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세상의 조류에 맞서 제시할 수 있는 분명 좋은 대안입니다. ... 우리의 CCM 종사자들이 더 뛰어난 음악적 수준으로 세상에 고급문화의 한 대안을 보여 주기 바랍니다. 하루 빨리 일반 가수들보다 더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CCM 가수가 나와 대중가요들을 훌쩍 뛰어넘는 CCM 곡들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사역이자 우리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 CCM 을 부르는 가수들은 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이 갖지 못한 신앙으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책에 또 그러냐며 비난과 조롱을 보냈다. 반면 어떤 이들은 환영의 인사를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각 주장들에 대해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좀 더 생각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CCM 과 워십송, 그리고 예배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그것들의 바른 길을 찾기 위한 저자의 노력에는 적극 힘을 보태고 싶다.

 

 혹자는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에 대해 저자의 독설을 - 다른 두 책에 비해 이번 책은 좀 약해졌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 문제 삼기도 하고, 혹은 근거가 빈약하다며 발목을 잡기도 했다. - 한편 이 시리즈를 비난하던 사람들에게 느끼는 의문과 아쉬움이 있다. 과연 저자가 국내외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유명한 학자였어도 그렇게 감정적으로 발목을 잡았을 것인가? - 저자의 글쓰는 방식 등 여러 부분에 있어서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비전문가가 쓴 책임을 생각한다면 '엔부기'를 포함한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는 상당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저자가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연구 방법을 통하여 책을 썼더라면 더욱 완성도 있는 시리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보이는 문제에 대해, 한국 교회의 병폐가 되어가는 문제에 대해 과감하게 칼날을 겨눈 저자의 용기와 노력에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낸다.

 

 저자가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통해 지적한 문제둘이 앞으로 한국 교회에 더더욱 깊이 뿌리 내리고, 언젠가 분명 논란거리로써 수면 위로 떠오지 않을까 싶다. 부디 그때가서 수술하여 큰 고통을 겪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은 딱지만 앉은 지금 전문가에 의한 점검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속주의를 경계하라 - 타락한 세상의 유혹에 대항하기
C. J. 매허니 외 지음, 소행선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속화는 이 세상 풍속에 물드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주로 종교적 입장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기독교 입장에서 이 말을 사용하면 세속화는 성경에 담긴 진리대로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의 이치대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가 세상에 너무나 많은 것을 양보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기 시작하자 갖가지 병폐가 발생하게 되었다. 기독교의 본질이 왜곡 되었다. 점차 진리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기준이 불명확해지자 무엇이 기독교인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혼란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동화되어 갔다. 기존에 진리라 여겼던 것들을 멀리하고, 새로운 기준을 척도로 삼기 시작했다.

 

 '세속주의를 경계하라'

 

 이 책은 기독교와 세속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속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저자는 모두 5명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주제로 세속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요 주제를 살펴보면 '텔레비전/인터넷/영화, 음악, 물질주의, 패션감각 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직접적으로 맞딱뜨리고 있는 사항들을 다루고 있다. 첫 장에서는 세속주의의 문제를 이야기 한다. 세속주의와 관련하여 주의 할 것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등을 이야기 한다. 그 외에 다른 장에서는 앞서 열거한 주제들로 이야기를 한다. 몇 가지 사항에서는 그것들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전제하여 각각의 사항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세상을 즐기고, 참여 할 것을 독려한다. 언뜻 보면 마지막 장은 첫 장, 그리고 다른 장들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발을 딛고 있는 곳, 십자가를 전해야 할 곳은 세상임을 생각한다면 마지막 장의 기본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여러 명이라서 내용의 연속성은 떨어진다. 그러나 기본적인 관점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읽는데 부딪히는 점은 없을 것이다. 내용이 깊지 않고, 글이 설교체이기 때문에 편하게 - 가볍게가 아니다. -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세상 풍조에 기독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독교인은 계속 기독교의 진리를 따르며 뒤쳐지는 사람들로 각인 되어야 할까? 답답한 이들로 평가 받아야 할까? 흔히 믿지 않는 이들은 기독교에 양보와 타협을 촉구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불변하는 진리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진리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하다. 양보와 타협은 곧 진리의 파괴와 부인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코 물러설 수 없다. 다만 영속하는 진리 안에서 바른 삶 -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바탕으로하여 그분과 이웃을 사랑하는, 그에 마땅한 구체적인 행동이 있는 삶 - 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상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좇는 삶을 거부하고, 앞에서 이야기 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행동이고, 추구해야 할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