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변화시키는 성경의 힘
제이 E. 아담스 지음, 송용자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년 전 학교에서 '목회상담학'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본인은 목회로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명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언젠가 준 사역(?)은 할 가능성이 있기에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 수강을 했다. 목양을 위한 상담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증을 한 아름 품고 수업에 임했다. 결론적으로 그 수업은 심리상담학을 다루었다. 가르치시는 교수님은 목사이면서 동시에 오랜 시간 동안 심리상담을 한 심리상담사였다. 따라서 그분의 상담 노하우와 심리상담의 측면에서 수업 내용은 탁월했다. 하지만 수업 내용과 방향이 내가 기대했던 성경적 상담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었기에 수업 내내, 그리고 종강 후에 큰 아쉬움이 들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경의 힘'

 본서는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심화 연구 책임자로 있는 제이 아담스의 성경적 상담학서라고 할 수 있다. 정통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저자의 이력만 보면 본서에 무언의 큰 기대(?)를 하게 된다.
 본서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성경적 상담을 위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성경적'이라고 한다면 그 초점이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지향하는 '성경적 상담'은 성경의 특성 중 특히 '성경의 충분성'을 바탕으로 한 상담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장 16절)

라는 성경 말씀을 굳게 믿고 확신하며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피상담자의 변화를 유도하는 상담이라 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저자가 주장하는 성경적 상담은 피상담자가 그리스도를 닮게 만드는 것을 목표한다. 상담과 변화의 모든 과정에서 상담자와 피상담자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성령님의 통제가 있어야 함을 역설한다. 성령님은 과정을 이끄시는 본질적인 분임을 주장한다. 저자가 지향하는 상담은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상담의 방법, 본서에 제시하고 있는 그 과정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면 위에 성경 말씀에 근거한 과정에 따라 상담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즉 1단계 교훈, 2단계 책망, 3단계 바르게 함, 4단계 의로 징계하고 교육하기라는 방법으로 상담 방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일련의 방법에 따라 단지 피상담자의 행동이 아니라 내면의 삶이라는 실질적 변화를 꽤한다.
 본서가 지닌 한계점이 있다면 성경적 상담을 위한 구체적 안내서 혹은 지침서가 아니라 개론서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지향점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나 저자가 제시하는 성경적 상담을 알고, 습득하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다. 동시에 그렇기에 이것이 정말 우리가 지향하고, 대안이 될 수 있는 그 성경적 상담(?)일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다시 말해서 상담자가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상담과 환경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더 많은 사례 제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한 권을 통해 저자가 제시하는 성경적 상담의 전부를 배우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저자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얻기 위해서는 (번역되지 않은) 저자의 다른 많은 책들을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이 가진 최대의 장점은 '성경적 상담'의 한 유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비성경적 치유상담 및 일반 학문 영역에서 통용되는 심리학이 교회에 들어와 성경적 상담인 것처럼 거짓 행세를 하는 지금, 이 책은 그것들의 대안과 더 나은 상담 방법을 제시한다. 단기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오늘의 일반 상담을 사용하는 교회 상담과 달리 저자의 성경적 상담은 피상담자가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변화를 꽤한다. 이점에서 다른 목회상담과 분명한 차별이 있고, 더 낫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앞서 살짝 언급 했듯이 오늘날 목회상담 혹은 기독교 상담을 보면 참으로 한탄스럽다. 기독교적인 상담인 듯 행세하지만 사실은 그저 세상의 일반 학문 영역에서 사용하는 심리사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이 기독교에 어울리는 상담일까? 교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내적치유나 전인적치유 등의 영적 치유 세미나 및 상담을 보면 의심과 안타까움은 더욱 커진다. 물론 그러한 방법들을 통해 치유 받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방법들은 성경이 지향하는 방법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생활과 영의 모든 문제는 성경 한 권만 가지고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과 경책을 통해 인간은 변화 받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다.물론 여기에는 인간의 개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만 오늘날 교회의 비기독교적인 방법들은 성경은 아예 옆으로 밀어둔 채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단기적 변화만을 추구한다. 이것이 아무리 당장은 유용할지라도 잠깐의, 그리고 얕은 외적 행동의 변화에만 도움이 될 뿐이다. 내면의 문제와 삶의 변화는 오직 성경을 통한 성령님의 도우심만으로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문제는 성화와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겪는 내면의 아픔과 잘못된 습관 및 행동 등은 인간의 죄인 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첫 사람의 죄로 인한 모든 인류의 타락, 다시 말해서 전적 부패로 인한 태초에 지음 받았을 때 가졌던 온전한 인간성의 상실, 여기에 더하여 사탄의 미혹과 인간 스스로의 욕심 등으로 인간의 모든 갈등과 문제가 일어난다. 따라서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과 문제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를 닮는, 하나님 형상의 회복을 위한 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적인 상담이라 할 수 있다. 바꿔 말해서 기독교 상담은 피상담자의 단기적 행동과 내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성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 구원론 만화로 보는 조직신학 시리즈
백금산 지음, 김종두 그림 / 부흥과개혁사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직신학은 보통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으로 나뉜다. 여기에서 어느 학자는 성령론을 빼는 등 학자들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곤 하지만 일반적인 구성은 나열한 바와 같다. 앞서와 같은 조직신학의 구성 중에 인간론과 구원론은 인간에 대해 다룬다. 전자는 인간의 죄 문제를 다루고, 후자는 구원에 관하여 다룬다. 인간론은 비교적 이해하기가 쉽다. 반면 구원론은 인간론에 비하면 어렵다. 특히 구원론에서 구원의 서정은 교단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은 물론 어느 것이 더 성경적인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각자의 소견대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어쨌든 구원론은 죄의 상태에 빠진 인간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다룬다. 기독론과 함께 구원론을 잘 이해하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깊이, 그리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구원론은 구원의 방법과 과정, 다시 말해서 신자의 믿음과 삶에 대해서 다루기 때문에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화 구원론'

 본서는 국내 최초의 만화 조직신학 시리즈이다. 과연 어려운 조직신학을 만화로 공부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이 책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고, 매우 유용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아마도 독자는 만화가 가진 장점인 친화성과 가독성 등으로 교리는 고리타분하다는 인식 및 그에 따른 거부감이 줄 것이다. 만화의 한계로 구원론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울 수는 없지만 개론서로 삼기에는 더없이 좋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을 통해 구원론을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다. 특히 개혁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안심하고 읽어도 된다.
 이 책은 대학, 청장년, 평신도, 신학생, 목회자 등 남녀 노소를 무론하고 모두를 독자로 삼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읽어도 될 만큼 내용과 구성이 탄탄하다. 물론 다루는 내용이 신학적이기 때문에 타깃으로 삼고 있는 독자 중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주일학교에서 교육을 잘 받은 고등학생 혹은 중학생, 나아가 명민한 초등학생이라면 스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려울 경우 어른이 지도해 준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구원론에 대한 개론서가 필요한 이가 있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구원은 어떠한 면에서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멸망에 처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이에 대한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택함 받은 자에 한하여 구원 받았고, 구원 받고 있고, 구원 받을 것이다. 이것은 칭의, 성화, 영화라는 구원론의 한 요소를 통해 말하는 구원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 어떻게 믿을 것인가? 그리고 왜 믿는 것인가? 등을 알려준다. 곧 이것은 신자의 믿음과 삶의 지표가 된다. 이러한 구원 및 그 서정 등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올바른 믿음 생활을 하기 어렵다. 이단들의 거짓된 가르침으로부터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힘들다. 따라서 신자는 온전한 믿음 생활을 위해 구원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지식이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 잘못된 기독교 분별 시리즈 6
행크 헤네그라프 지음, 이선숙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기독교는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늘 내부와 외부의 적과 싸워왔다. 내부라 하면 거짓 교사들이라고 할 수 있고, 외부라 하면 이단 혹은 무신론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거짓 교사들은 진리를 가르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비진리를 가르친다. 노골적으로 거짓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라면 분별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철저히 숨긴다. 그리고 진리와 거짓 진리를 교묘하게 섞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분별력이 낮거나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여기에 속아서 진리라 믿으며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 멸망의 길로 나아간다.

 이단들은 진리를 드러내놓고 왜곡한다. 노골적으로 거짓 가르침을 전한다. 교회의 가르침과 명백히 다른 가르침을 전한다. 이단들은 왕성한 전도와 전력을 다해 가르치며 멸망의 길로 이끌 또 다른 먹잇감을 찾는다. 역시 분별력이 낮은 사람들은 이들의 가르침을 진리라 여기며 따른다.

 17세기, 18세기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이후에 탄생한 무신론자들은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성을 내세우며 진리를 반박하고 거부한다. 그들의 의견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이성에, 논리적으로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의 말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사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이다. 기독교인은 보고 믿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고 믿는 것이 아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은혜이다. 믿음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무신론자들은 이것을 이해하려 하지도, 결코 이해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믿음을 거부한다. 이성에 합당하면 옳고, 그릇되면 틀리다는 주장을 할 뿐이다. 따라서 신자라 할지라도 자칫 그들의 합리성에 빠져버릴 수 있다.

 이단과 무신론자들의 말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가르침과 주장은 교회의 가르침과 분명히 다르기에 분별이 쉽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은 다르다. 그들의 가르침은 너무나 교묘해서 왠만한 분별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속기 쉽다. 주의를 기울여도 속기 일쑤다.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

 이 책은 교회에 침투해 있는 거짓 교사들의 교묘한 위장을 벗겨낸다. 빈야드와 신사도 운동이라는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거짓 교사들 혹은 거짓 선지자들의 속임수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들이 주장하는 성령 운동, 가짜 부흥 운동의 거짓된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사용하는 거짓말과 환상과 기만, 그리고 방언, 치유 등의 잘못된 은사 운동과 쓰러짐 등의 거짓 기사(奇事)의 속임수를 들추어낸다. 어리석은 멸망의 자식들이 전하는 얄팍한 거짓 가르침을 벗겨내어 악랄한 그 속을 보여준다.

 저자는 실상을 밝혀 거짓 교사들의 악한 모략을 저지하며 주의를 당부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본문의 거의 대부분이 사례를 전하는데 치중한다는 것이다. 거짓 교사들의 기만과 속임수의 현장을 전하는 데만 집중한 게 참으로 아쉽다. 그들의 역사와 거짓 이사(異事) 및 가르침을 성경 진리와 비교, 분석하여 참다운 진리를 다시 한 번 밝히고, 분별력을 길러주는 노력이 없는 게 아쉽다. 그 거짓과 허구성의 현장만 드러나고, 그 가르침 자체의 문제점은 명확히 드러내지 않아서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들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비판해야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더 분명히 알고, 분별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신자들을 미혹하여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는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 그 행태의 윤곽과 시커먼 속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미국 교회에서 국내로 들여온 거짓 가르침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알기 바란다. 거기에 빠져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 거짓을 깨달아 하루라도 빨리 멀리하길 바란다. 그리고 성경으로 돌아가 진리를 더욱 알기에 힘쓰고, 그 진리를 바탕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길 바란다.

 말세에는 교회 외부에서 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나고, 교회 내에서는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을 미혹한다고 신약 곳곳에서 전한다. 지금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 말세와 가까운 때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거짓 교사들이 거짓 가르침을 교회에 전하며 마치 그것이 진리인 양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큰 주의가 요구되지만 교회들은 이것에 무관심하다.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이끌 책임이 있는 목사들은 분별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것인지 하등 가치 없는 설교만 하며 성도들의 분별력 상실을 주도하고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주어야 할 신학자들은 자기들끼리 맞네 틀리네 학문 노름이나 하고 있다. 목회자들과 학자들은 교회를 보호하기는커녕 저희끼리 진흙탕 싸움만 하고 있다. 이에 성도들은 제 갈길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교회 안에서 바른 가르침을 전해 받지 못하자 많은 성도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외부 단체들의 거짓 가르침이 진리라 여기며 거기에 열광을 하고 있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까?

 지금은 책임을 추궁하고, 떠넘기는 것보다 교회 안에서 진리를 전하는 게 먼저이다. 교회에서 속히 바른 가르침을 전하여 성도들에게 분별력을 길러주고, 그들을 안전한 교회 안에 머물게 해야 한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역사를 체험토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얻은 위로와 지식과 힘과 열정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며 진리를 전하도록 해야 한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교회는 친목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을 섬기며 진리를 가르치고, 전하게 하는 하나님 군사의 연합이고, 그분의 병영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단지 친목 단체로 전락하여 그 힘을 잃었다. 심하게 병들어 있다.

 교회가 속히 바로 서길 바란다. 어서 곪은 환부를 덜어내어 새살이 돋았으면 좋겠다. 교회는 견고한 진을 구성하여 내외부의 공격에 맞서 진리를 수호하고, 진리로 반격하길 바란다. 진리가 살아 움직이는 역사가 다시 일어나고, 그것을 증거하는 약동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 요한복음 14장 연속설교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정상윤 옮김 / 복있는사람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근심이 점점 쌓인다. 특별히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의 국내외 정치, 사회, 자연 환경 및 상황을 보면 근심이 끊이질 않는다.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위한 이기적인 정치만 한다. 도덕과 예의가 무너져 범죄 및 각종 기가막힌 일들이 벌어져 사회가 점점 더 흉흉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자연 재해가 전세계적으로 계속 발생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난 뒤에 이 시기를 보면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 더 어려웠던 시기였을 뿐이라고 회상할 수 있을까?
 위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불안과 두려움, 삶의 고민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원인 혹은 우리 인간의 본성, 즉 악한 심성과 그 기저에 깔린 죄에서 기인한다. 자연 재해는 우리의 힘으로는 그 발생을 막을 수 없기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정치나 사회 등의 문제는 우리의 노력으로 충분히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죄악된 인간들은 그것을 바라지 않는 듯 상황을 점점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에게 소망과 희망이 있을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책은 20세기 마지막 청교도, 최고의 강해 설교자라 칭송 받는 영국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요한복음 14장 강해설교집이다. 요한복음 14장을 본문으로 한 연속 설교를 담고 있다. 로이드 존스 목사가 이 설교를 했던 당시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만 안 된 시점이었다. 2번의 큰 전쟁으로 당시에는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 그리고 피폐해진 민심 및 사회 기반 시설 등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였다. 이러한 절망의 시기에 로이드 존스 목사는 총 8번의 설교를 통해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바라봐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첫 소절을 설교의 시작으로 신자 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마음에 불안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신 그분이 계시기에 근심 할 필요가 없음을 전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러 가셨으니 우리는 그분이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릴 것을 충고한다.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상기 시킨다. 세상에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결국 실망만 안겨 줄 것임을 말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고 기대야 할 것은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강조한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며 그것에 집중시킨다.
 따라서 이 책은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이 있는 그리스도인, 복음의 본질이 가진 능력과 핵심을 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등과 복음의 메시지를 알지 못하는 비신자가 읽기에 좋은 책이다. 다른 본문의 설교보다는 내용이 적지만 로이드 존스 목사답게 기독교의 기본과 핵심을 분명히 짚고 있기에 역시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세상은 점점 더 악화 일로로 치닫고,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정부는 경제가 나아질 거라고 장미빛 발표를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전혀 다르게 점점 더 회색빛이 되어 가고 있다. 물가가 계속 치솟아 가계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정치인들은 이것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단지 앞에서는 립서비스만 하고 뒤에서는 딴전을 피운다. 화산이 곳곳에서 폭발하고, 쉽게 볼 수 없던 강진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엄청난 폭우와 많은 양의 눈 등 이전에는 겪은 바 없는 기상 이변과 그로 인한 자연 재해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신음 소리가 곡소리로 변할 지경이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 최소한 그리스도인에게는 희망이 존재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사실로 말이다. 그분은 비록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지만 언젠가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의 거처가 다 예비 되면 마침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다시 이 땅에 오시어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다. 2천 년이 지나도 소식도 없는, 속절없는 그분이라고 원망하지는 말자. 어제와 같이 우리 살아생전에는 비록 그분이 오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의 생을 마감하면 그분을 뵐 수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의 곤경과 하나님의 능력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김종호 옮김 / 복있는사람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8세기에 르네상스의 기초 위에 선 계몽주의가 전 유럽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계몽주의의 기치 아래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며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모두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에 이성과 합리성에 부합하는 과학이 빠르게 발달하고, 그에 반하는 종교는 거부하여 쇠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신본주의를 버리고, 인본주의로 돌아섰다. 사람들은 계몽주의 이후 신과 결별을 하였다.
 그에 따라 나타난 것이 낙관주의 사상이다.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생각에 기름을 붓듯 일어난 산업혁명은 낙관주의를 고조시켰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유토피아를 꿈꾸며 지구상에 지상낙원을 만들 수 있을 거라며 큰 기대를 하였다. 종교가 무시되고, 윤리와 도덕이 강조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2백년 뒤, 세계 1, 2차 대전으로 무참히 무너졌다.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완벽히 제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능력과 본성으로는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없다는 사실에 한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느꼈고,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의 곤경과 하나님의 능력'

 본서는 최후의 청교도이자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자 등으로 칭송 받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1941년 에딘버러의 자유 교회 대학의 강당에서 연속으로 강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로마서 1장을 본문으로 하여 복음의 위대성을 밝히고, 인간의 무능력함을 낱낱히 벗겨낸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자신의 능력을 맹신하는 사람들의 낙관론을 비판한다.

 "... 비록 사람들이 사회를 개선하려는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있어도, 영적인 열정과 열의가 식으면 결과적으로 언제나 도덕적, 지적 퇴보가 뒤따랐습니다(47p)."

 그는 인간 스스로는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종교보다 도덕을 강조하고, 도덕의 능력을 믿지만 그것은 헛된 것임을 알려준다.

 "... 도덕은 출발점부터 인간을 모욕합니다. 우리의 행동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언제나 긍정적이기보다 훨씬 더 부정적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모욕이 됩니다(53p)."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인간의 능력은 무기력하고, 허황됨을 알게 될 것이다. 대신 종교, 기독교 복음의 위대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 복음만이 인간 구원의 유일한 해결책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복음의 능력을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비신자들에게는 여전히 거부될 내용이지만 어쨌든 이 책을 통해 복음의 중요성을 알고, 그 기초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복음, 곧 하나님의 능력을 높이는 이 책을 그리스도인에게 적극 추천한다.

 첫 사람의 죄와 타락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모든 인간은 그분의 능력을 거부하며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일이다. 인간은 한치 앞도 내다볼 능력이 없는 존재이다. 물론 경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완벽한 도움이 되지 못한다. 특히 구원의 문제는 100% 무기력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계속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스러운 일인가!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다. 그분의 능력은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나다! 하나님은 모든 고통과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의 위대한 능력과 답은 복음 안에 담겨 있다. 그러한 복음은 이 지구상에서 인간을 이끌고 구원 할 최상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모든 고통과 문제의 답은 하나님이 주신 복음 안에 있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힘이 복음 안에 있다. 인간이 꿈꾸는 유토피아, 아니 그와 비견할 수 없는 세상이 바로 복음 안에 있다! 복음은 결코 망상이 아니다. 복음은 실제이자,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이다! 그런 복음을 받아 먹으라! 그것을 맛보면 인간의 끔찍한 죄를 깨닫고, 가책을 느끼는 동시에 절망에서 소망이 움터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