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ㅣ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위기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으며 살고 있다. 경제 위기, 기초 학문의 위기. 위기, 위기, 위기... 위기라는 말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보면 위기란,

  "위험한 고비나 시기"

이다. 한 마디로 '안 좋은거'다.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위기 없는 삶이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인생 자체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인생 자체가 위기속의 삶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지금 당장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바로 몇초 후에 나에게 사고가 닥칠지, 닥치지 않을지 예상할 수 있는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인생 자체가 위기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부정적인가?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보자.

 '전화위복(轉禍爲福 )'이라고 위기 없이 성장한 사람, 그것 없이 꿈을 이룬 사람은 없다. 소위 성공 했다 불리는 사람은 숱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이다. 실패를 거듭함으로 성공의 비결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실패를 통해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위기는 단지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Homo bookus'
 이 무슨 괴이한 말인가? 굳이 번역(?) 하자면 '책 사람'이 되지 않을까? 책 사람? 말이 복잡하니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바꾸자. 책을 읽는 사람. 이제 쉬워졌다.

 책이란 무엇인가? 인류의 지적 재산이 담긴 정보의 보고요, 인류가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 할 것이라는 흔적과 증거이다. 왜 인간은 책을 쓰기 시작 했고, 책을 쓰며 책을 남길까?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자면, 그것은 '인간은 어디서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철학적 논제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책을 남기는 것은 앞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인간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거, 인류의 존재를 증거하는 것이다. 왜 인간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할까? 그것은 존재의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유는 삶의 이유이다. 내가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명확하다면 삶의 방황은 현격히 줄어들게 된다. 물론 그것이 없어도 전혀 지장 없이 잘 사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말이다.

 앞서의 이야기는 철학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실제적으로 살펴볼까? 인간이 책을 읽고, 쓰는 이유는 가르침을 얻고, 전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왜 필요한가? 후손들에게 더 낳은 삶을 물려 주고 싶은 지극히 자연스런 종족 보전 본능에 따른 것이다. 자식이 더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더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다. 무엇보다 내 지식이 모자라니 이 얘기는 여기서 그만 하련다.



 한국출판연구소가 실시한 '200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2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조사 됐다"고 한다. "그게 어째서?"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어째서... 그게 어쨌냐 하면 독서는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 조사 결과는 매우 '안타까운' 결과인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알아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 새로운 것이 나와야 남을 이길 수 있다. 그래야 앞서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독서는 그 원천이다.

 시중에 독서법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있다. 많은 이들이 독서에 대한 도움을 얻고자 그 책들을 보지만 낭패를 겪는다. 왜 그럴까?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책 한 권도 읽지 않던 사람이, 책을 별로 읽지 않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제시해 놓은 독서법을 따라한다고 결코 하루 아침에 그 사람들과 같아질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기초부터 착실히 쌓아야 노하우와 실력이 쌓이는 법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발전 속도가 붙는 다. 그러니 독서법을 보고 따라 한다고, 그런 꼼수를 쓴다고 해서 당장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평소에 꾸준한 독서가 선행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책 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지 상당히 궁금 했다. 그래서 읽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독서를 종용하는 책'이다. 그러면 내용을 살펴 보자.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의 제목은 '왜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2부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다.

 1부에서는 지겹도록 들었을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그 말을 지겹게 들었을 사람들을 더 지겹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번 더 지겹게 하기 위해 책의 내용을 잠깐 언급해 보겠다.

  "영상 시대인 오늘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다."(p55)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책에서 나온 것처럼 책 읽기는 '정서적 안정과 치유'를 주고, '글 잘 쓰기'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생산자가 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엘빈 토플러'가 '제 3의 물결'에서 처음 언급한 프로슈머(prosumer)가 여기에도 살짝 적용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자연스레 글을 쓰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고 싶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그것들을 통해 자기 발전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남을 앞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다해서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책 읽기는 그것을 포함한다는 말이다.

 2부에서는 책 읽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책 읽는 방법이라...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타인의 독서법을 나에게 적용한다고 내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타인의 독서법이 나에게 꼭 들어 맞을 수 없다. 나만의 독서법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꾸준한 독서를 통해 스스로 찾아야 한다. 다만 참고서 겪으로 타인의 독서법을 들여다 보면 시행착오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독서법은 무엇이 있을까? '천천히 읽기', '겹쳐 읽기', '깊이 읽기', '독후감 쓰기' 등 몇 가지가 제시 된다. 혹시라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이 책을 읽어봐라. 말 그 자체와 같이 별거 아니다.

 2부에서는 독서법만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독서 실태에 대한 현재의 문제점을 짚고, 다음 세대를 위한 책읽기 방안을 제시한다. 

 이 책의 차례만 살펴보면 내용의 범위가 넓고, 중구난방으로 느껴진다. 그렇지만 읽다보면 주제가 한 가지로 축약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책을 읽자'는 것이다.



 논리적이진 않지만 내 나름대로 앞에서 책 읽기의 중요성을 장황하게 살짝 이야기 했다. 이 책을 읽으면 그것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200 페이지가 조금 넘어 그리 두껍지 않고, 내용 또한 재미있게 잘 씌어져 있기에 누구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책 읽기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혹은 처음으로 알고 싶은 사람, 독서법에 대해 살짝 알고 싶은 사람 등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내용이 포괄적인데 반해 두께는 생각보다 얇기에 그것들에 대해 깊이 알기 원하는 사람은 2%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기독교 이야기
유재덕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정확한 연대에 오차가 있지만 주후 2천 년이 지났다. 기독교의 역사가 2천 년이 된 것이다. 2천 년을 지구 역사에서 봤을 때는 순간에 불과하지만, 인류 역사로 봤을 떄는 만만치 않은 기간이다. 그 기간 동안 종교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수많은 토속신앙과 원시종교가 기독교와 이슬람에 정복 되어 사라졌다. 그 두 종교가 세계 종교사의 중심 축이 되었고, 인류 2천 년 역사의 중심 또한 차지 했다. 기독교만을 봤을 때는 성경이 정경으로 채택 되었고, 교리가 정립 되었다. 이단과의 대립, 그리고 내부 대립 등 크고 작은 대소사가 끊임없이 발생 했다.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은 단지 한 종교를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서양사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독교라는 종교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양사에 기독교가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 혹은 뒤에서 서양사를 쫓기도 하였다. 이것이 서양에만 국한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또한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 종교적 사명으로 시작된 전도 - 넓은 의미로 선교- 에 의해 기독교는 아프리카는 물론 아시아, 그리고 수많은 - 문화 사대주의 관점에서 - 미개 민족에까지 전해졌다. 때문에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서양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전세계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면 기독교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우리가 흔히 기독교라고 하는 말 중 '기독(基督)'이란 '그리스도 Χριστός(크리스토스)'라는 그리스어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아', '구세주'를 뜻한다. 그리고 '크리스트Christ'란 앞서 말한 그리스도의 영어식 발음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주후 125년 시리아의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많은 이들이 혼동하는 용어인 기독교는 '개신교(루터, 장로, 침례, 감리, 순복음, 성결 등)', '로마 가톨릭(천주교)', '성공회', '정교회(그리스, 로마)' 등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를 - 무리가 따르겠지만 -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수많은 대립과 반목의 역사'라고 하고 싶다. 물론 짧지 않은 2천 년 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 동안 조용할 날이 없었으니 나의 표현이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 2천 년 역사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 역사를 책으로 정리하면 엄청나게 장대한 분량을 이룰 것이다. 그렇기에 굵직한 주요 사건 중심으로 정리하고는 것이 현명하다.


 시중에 기독교사를 정리한 책은 많다. 각각이 맞추고 있는 초점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떄문에 한 권만 읽고 기독교 역사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기독교사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한두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학자가 아닌 이상 여러 권을 읽을 필요는 없다. 단순 흥미나 얼마의 지식만 필요한 사람이라면 잘 정리된 한두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기독교사 책 중 어떠한 것을 봐야할까? 그 선택의 문제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한 고민을 줄여주기 위해 한 권의 책이 출간 되었다. 그것은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만 다룬다 하여도 상당한 분량이 나온다. 그렇기에 이 책 또한 400 페이지가 넘는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덜 신학적이라는 것이다. 덜 자세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단점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이 된다. 책 표지에 나온 광고 문구처럼 '2천 년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쏙쏙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기독교 역사를 빠짐없이 다루고 있으면서도 깊게 들어가지 않기에 쉽고 빠르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물론 400 페이지가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기에 읽다보면 지루할 수도 있으나 책의 부제처럼 - 완전히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 재미있기에 기존의 기독교사 책에 비하면 덜 지루하다.
 
 이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라는 책은 앞서도 말했듯이 신학생들에게는 마음에 쏙 들 책이 아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이빨 빠진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깊게 들어가지 않았기에 내용이 상당히 빈약하다. 그러니 이 책은 신학생이든 신학생이 아니든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쉽게 즐길 이들에게는 추천한다. 파노라마로, 개괄식으로 볼 이들에게는 추천하지만 자세히 알고 싶은 이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짧은 글

 많은 사람들이 기다림을 싫어한다. 기다림은 낭비, 그리고 무기력함과 지루함 대변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1분 1초를 아낀다. 촌각을 다툰다. 그러하기에 기다림은 낭비로 인식 된다. 쓸모 없는 것으로 인식 된다. 예수회의 사제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다림이란, 우리가 현재 있는 곳과 우리가 있고 싶어하는 곳 사이에 있는 메마른 사막이다.  

 기다림은 무척 메마른 사막과 같다. 우리는 이곳에서부터 저곳으로 가려 하지만 메마른 사막인 기다림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다. 그 사막은 매우 덥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곳이다. 그러하기에 결코 맞딱뜨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 것도 없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혹은 명상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그것은 기다림 그 자체에 대한 적극적인 행위가 아니다. 단지 기다림을 잊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기다림으로부터 내 눈을 가리기 위한 임시 도구일 뿐이다. 기다림에 대한 수동적인 행위인 것이다.

 결국 기다림은 수동성과 무력함을 나타낸다.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그런 나의 무력함을 생생히 느끼게 한다. 그 시간은 나를 매우 지루하게 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행위를 하는 입장이 아니라, 행위를 받는 입장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관점을 달리 해 보자. 기다림은 인내를 동반한다. 인내 없이는 무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릴 수 없다. 그 또는 그녀가 언제 올까? 그 시간이 언제 올까? 인내하지 않으면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온전히 맞을 수 없다. 인내하지 않으면 뒤돌아서게 만든다. 여기서 나의 적극성이 개입된다. 인내는 외부의 작용으로 인한 것이지만 그 행위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이란 무언가 나에게 다가오기 떄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 오기를 내가 허용하였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나의 허락과 요구가 없다면 기다림은 있을 수 없다. 

 기다림은 내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받아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기다림이란 적극적인 나의 의지와 행동이 발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나는 결코 지루할 수 없다. 내가 그것을 허락 했기 때문이다. 요구 했기 때문이다. 

 나의 허락 혹은 요구로 인한 기다림은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가득 품게 하는 근거이다. 그렇기에 나를 지루하거나 무력하게 할 수 없다. 그 사람이, 그 시간이 언제 올까 나를 초초하게 만들 수 없다. 그것은 반가운 손님을 맞는, 그 사람을 기대하는 행복한 시간인 까닭이다. 

 이렇게 기다림은 결코 낭비가 아니요, 나를 무력하고, 지루하게 하는 것도 아닌 생각만 해도 설레고, 행복한 내 마음과 의지가 개입된 적극적인 행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영성에의 길 - 개정 증보판
헨리 나우웬 지음, 김명희 옮김 / IVP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수회의 사제였던 헨리 나우웬은 카톨릭과 개신교 양 진영에서 모두 사랑 받는 몇 안 되는 성직자이다. 그는 65세에 하나님 품에 안겼는데 오늘에 비하면 생을 짧게 마감하였다. 나우웬은 그 짧은 삶 동안 여러 책을 남겼는데 그것들을 통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과 은혜를 주고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인데 전체가 118페이지로 무척 얇다. 하지만 내용은 정말 풍성한 은혜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헨리 나우웬이 좋아서 읽게 된 이 책의 참 맛을 보러 함께 가보자.
 
 

 본서는 능력의 길, 평안의 길, 기다림의 길, 삶과 죽음의 길, 이렇게 네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짧은 글속에는 나우웬의 싶은 통찰과 깨달음이 담겨 있다. 그 중 몇 개의 글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능력의 길을 보자.
 

 능력의 길에서는 권력(power)과 무력함(powerlessness), 그리고 능력(power)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남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힘.'

이다. 남을 장악하여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힘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참으로 두려운 힘이다. 공동체를 분열 시키고, 한 사람을 파멸 시킬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권력에는 경제적 권력, 정치적 권력, 종교적 권력,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종교적 권력이 가장 나쁘다고 나우웬은 말한다.

  "가장 교활하고, 분열을 일으키며, 상처를 주는 권력은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사용되는 권력이다."(p26)

 이것은 지난 역사가 분명히 증거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데 권력이 사용될 때, 좋은 소식은 금세 나쁜, 아주 나쁜 소식으로 바뀌고 만다."(p27)

이것이다. 과연 이보다 더 슬픈 소식이 있을까? 이보다 더 하나님을 슬프고, 화가 나게 만드는 소식이 있을까?

 
 예수님은 이땅에 기적 같이 임하시어 십자가 위에서 무기력하게 돌아가셨다. 어느 권능자가 그런 무기력함을 피조물에게 보이려할까? 무수한 비난과 불신을 각오한 참으로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하나님의 이해하지 못할 그러나 사랑이 가득한 결단이

  "진정한 하나님의 무기력함과 하나님이 친히 한 부분이 되신 인류의 무력함이 사랑의 집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p33)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되었다.
 

 하나님은 가장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지만 연약한 능력, 무력한 능력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그런 그분을 이해한다는 것은 힘들다.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분은 우리에게 같은 것을 요구 하신다.
 
  "힘을 통한 능력에서 무기력함을 통한 능력으로 옮겨가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다."(p38)

 그분은 참으로 오묘하신 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행하지 아니 하시니 말이다.
 

 다음으로는 기다림의 길을 보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림을 싫어한다. 그것은 수동적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우웬은 그것을 다르게 본다.

  "인내하는 삶이란 현재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며 그 곳에서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p76)

 관점을 달리 해 보라. 기다림 혹은 인내는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 오기를 내가 허용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무기력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허락과 요구가 없다면 기다림은 있을 수 없다.

  "끝을 알 수 없지만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은, 삶을 향한 아주 혁신적인 자세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소망하는 것이다."(p78)

 기다림은 결코 지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기다림은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가득 품을 수 있게 해주는 근거이다. 그것이, 그 시간이 언제 올까 나를 초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반가운 손님을 맞게 해 주는 행복한 시간이다. 기다림은 적극적인 마음의 행위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조금 다르게 얘기 했지만 나우웬은 네 이야기 모두 하나님과 관련지어 이야기한다. 하나님 안에서의 능력과 평안, 그리고 기다림, 삶과 죽음은 모두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분께서 주신 우리의 소명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얇은 책이지만 참으로 풍성한 은혜가 담긴 책이다. 초신자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겠지만 초신자든 기신자든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별을 5개를 주어도 결코 아깝지 않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즉답기도 - 하나님이 항상 예스라고 응답하는 10가지 기도
앤서니 데스테파노 지음, 김성웅 옮김 / 포이에마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기도가 원하는 대로 꼭 응답 받길 바라며 간절히 기도를 한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우리가 배웠듯이 Yes, Wait, No 로 나타난다. 원하는 응답을 얻을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응답을 얻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항상 예스라고 응답하시는 10가지 기도(Ten prayers God always says yes to) 줄여서 즉답기도? 제목이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고, 기대를 크게 부풀린다. 정말 그런 것이 있다는 말인가? 잔뜩 기대를 한 채 첫 장을 넘겼다.

 먼저 차례를 보자.

 1. 정말 믿고 싶습니다 - 하나님, 당신의 살아 계심을 보여주십시오
 2. 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 하나님, 저를 도구로 써주십시오
 3. 제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 제 마음을 넓혀주십시오
 4. 더 이상은 못 참겠습니다! - 하나님, 이 고난을 통과하게 해주십시오
 5. 제가 인간 말종입니까? -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6. 스트레스에 눌려 죽겠습니다! - 하나님, 제게 평안을 주십시오
 7. 인정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 하나님, 제게 용기를 주십시오
 8. 똑똑한 게 다는 아니다 - 하나님, 제게 지혜를 주십시오
 9. 행복이란 말을 다시 할 수 있을까? - 하나님, 전화위복이 되게 해주십시오
 10. 그런데, 저는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 하나님, 저의 영적 운명을 발견하게 해주십시오

 차례만 봐서는 도대체 뭐가 즉답기도라는 것인지, 뭐가 항상 예스라고 응답하시는 기도 10가지라는 것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보통 차례만 보고도 책에서 말하려는 바가 짐작 되는데, 원래 차례의 목적이 그것인데 그 목적을 완전히 배신한 차례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내용을 살펴 볼까? 그러고 싶지만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무슨 말인고 하면 내 머리가 둔한 것인지 작가의 글 솜씨가 없는 것인지 도무지 내용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내용 정리를 하고서도 요점 파악이 되지 않았다.

 각 장마다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도대체 그래서 핵심이 무엇이라는 것인지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한 예와 말만 잔뜩 늘어놓고, 확실한 정의 없이 "앞에서 말한 것이 응답받는 기도이다."라고만 계속 이야기 하니 뭐가 응답 받는 기도라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 졌다. 오히려 지금 내가 평상시 하고 있는 기도가 100% 응답 받는 기도임이 더욱 확실해졌다. 어쨌든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은 Yes, Wait, No 중에서 반드시 한 가지는 있으니까.

 그래도 내가 이해한 대로 저자가 말하는 그 10가지 기도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선 부제들을 살펴보자.

 1. 하나님, 당신의 살아 계심을 보여주십시오
 2. 하나님, 저를 도구로 써주십시오
 3. 하나님, 제 마음을 넓혀주십시오
 4. 하나님, 이 고난을 통과하게 해주십시오
 5.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6. 하나님, 제게 평안을 주십시오
 7. 하나님, 제게 용기를 주십시오
 8. 하나님, 제게 지혜를 주십시오
 9. 하나님, 전화위복이 되게 해주십시오
 10. 하나님, 저의 영적 운명을 발견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이야기하면 황당하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예스라고 응답 받는 기도 10가지는 저것이다. 저렇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내용이 저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무엇을 기대 했던 내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워 진다. 내가 지나친 기대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저자가 옳은 것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크게 낚였다는 것이다.

 그래, 저자가 옳다 치자. 그렇다 쳐도 책 내용이 왜 이리 정신이 없는지 장광설이 매우 심했다. 내용이 자꾸 오락가락하여 핵심 파악이 쉽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이해력 부족으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분명히 내용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는데 핵심 파악이 얼른 되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글귀가 종종 눈에 띄어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다.

 포이에마... a division of 김영사인데 계속 이런 책을 내면 많은 독자들이 상당히 곤란해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