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자끄 엘륄 총서 1
쟈크 엘룰 지음, 이문장 옮김 / 대장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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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곳은 어디인가? 당연히 세상 속이다. 참 우스운 질문과 답이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잊은 채 살아간다. 자신의 정체성을 잊는다는 말이다. 교회에 가면 갑자기 경건하고, 신실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삶의 자리로 돌아가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전혀 구분 할 수 없게 된다. 이쪽 사람도 아니고, 저쪽 사람도 아닌 어중간 하게 양다리를 걸친 모습을 보인다. 

 오늘날은 다원주의 시대이다. 진리는 하나가 아니다. 정답이 없는 시대이다. 내가 보는 것, 네가 보는 것 모두 맞다. 하나만 고집하면 속 좁고, 답답한 사람이 된다.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왕따가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해하지만 용납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매우 기회주의적인 자세다. 결국에는 가랑이가 찢어져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될 것이다. 아니, 분명히 진리를 부인하는 쪽으로 향할 것이다. 

 진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리 아닌 진리를 만들어 무엇이 진짜 진리인지 분별할 수 없게 방해한다. 이것도 진리, 저것도 진리라 외친다. 이때 진리를 알고 있는 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진리를 확실히 외쳐야 한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당당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몸을 움츠린다.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기 확신이다. 자신이 믿는 바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믿는 바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당당히 주장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소명을 잃게 되고,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의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 세상 가운데에 보냄 받은 이들이다. 세상의 잘못된 것들로부터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하나님의 좋은 것들을 그들에게 전해 주기 위한 임무를 받은 이들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소명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다. 세상에 안주하여 편한 삶을 살기 원한다. 그냥 하나님을 편하게 잘 믿다가 그분께 가길 원한다. 결코 손가락질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을 두려워한다. 어쩌면 수치스러워 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한다. 온갖 것들로 유혹을 한다. 거기에 그리스도인들도 종종 넘어간다. 기독교의 혁명성을 잃고, 구습에 물든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한다. 목적을 잃고, 수단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한 모습을 회개하여 고치려고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면 저절로 나아지길 바란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복음을 들고, 사회 각계에 진출하여 세상을 계도 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자신의 목적을 잃으면 하나님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문제거리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야지 도리어 하나님의 문제거리가 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역사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복음을 부끄러워 말라. 복음을 들고, 세상을 변화시키라.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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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축복 - 작은 자를 크게 쓰신 하나님의 은혜
김병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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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구약성경에서 - 표면적으로 드러난 -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 '야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인생을 무일푼의 타향살이에서 시작하여 여러 자식과 많은 가축을 얻었다. 자식을 잘 둔 덕에 생의 말년에는 큰 호사를 누렸다. 물론 야곱이 여기까지 오는데는 말도 못할 우여곡절을 겪었다.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은 후,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얻어 냈다. 그로 인해 분노한 형이 보복을 할까 두려워 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그의 둘째 딸 라헬에게 반하여 그녀를 얻기까지 장장 14년 동안이나 무료 봉사를 해주었다. 열 두 아들과 딸 하나를 얻었지만 형제들 간의 불화로 - 야곱은 몰랐던 사실이지만 - 가장 사랑하던 자식을 잃었다. - 후에 다시 되찾긴 하지만 - 그의 축복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그의 생은 축복으로만 가득 찼던 것이 아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야곱의 축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고 싶다면 당장 성경을 펼쳐보고 그의 일대기를 면밀히 살펴보라.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된다. 

 이 책은 성경에 나타난 야곱의 전 생애를 그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살펴본다. 그의 삶에 부어진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다양한 예화를 곁들여 신자의 신앙생활의 길을 제공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잘된 인생을 사는, 그러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가 받은 축복을 부러워하며 왜 자신은 그러한 축복을 받지 못하는가 탄식하고,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것은 부족한 생각이다. 축복만 받는 인생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축복을 받는 동시에 고난과 고통도 함께 받는다. 말도 못할 어려움을 이겨 냈기에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치열한 전투 없이 승리를 얻어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잘된 모습만이 축복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평탄하고, 형통한 인생만 축복이 아니라는 말이다. 당대의 의인 욥을 보라. 많은 자식과 막대한 재산을 몽땅 다 잃고, 몸에 병까지 낫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저주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하나님을 마구 저주하고, 당장 그분과의 인연을 끊을 상황이다. 그런데 욥은 어떻게 했는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20-21절) 

 이해가 가는 행동인가? 이해할 수 없지만 욥은 어려움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러 했기에 그는 이전보다 더 큰,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 그의 고난과 시련은 저주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축복인 셈이다. 그가 받은 갑절의 축복은 모든 어려움을 무사히 이겨냈기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 거저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야곱으로 돌아가자. 야곱이 겪은 모든 어려움은 모태에서부터 보인 그의 욕심과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 한분만을 올곧게 믿지 않고, 편법과 그의 방법대로 살려고 한 잘못으로 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셨다. 그가 당신께로 돌아올 때까지 참으시고, 기다려 주셨다. 지극히 작은 자, 못난 자를 큰 자 삼아 주셨다! 야곱이 비록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종종 곁길로 벗어나긴 했지만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갔고, 결국 영광의 피날레를 장식 했다.  

 이 책에서는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것만을 축복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 - 좋은 상황이든 고난 속에서든 - 에서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분의 임재 가운데 있을 때 축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말을 듣는 것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것이 삶이 되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저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은 이였다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순탄한 삶을 살고 현재의 자리에 올라 하는 말이었다면, 그러한 삶 가운데서 야곱의 삶을 분석하고, 말한 것이었다면 그의 말에 별 감흥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도 많은 어려움을 겪은 자이기에, 그러한 인생의 말이기에 내 마음에 더 깊이 다가왔고, 은혜가 되었다. 

 자,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광의 피날레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지금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그것 또한 축복임을 잊지 말자.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이겨내면 영광의 순간을 누릴 수 있음을 잊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이겨내자. 그러한 자세를 유지할 때 개선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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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쉽게 읽는 지식총서 1
니콜레 랑어 지음, 윤진희 옮김 / 혜원출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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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서인지 만화에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릴 적 한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을 접한 기억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이용하여 시의 적절하게 행동하는 캐릭터의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러한 기술, 독심술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고, 알 필요가 없는 것까지 알고 괴로워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본 후로는 그러한 생각을 버렸다.

 심리학은 마음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마음의 작용, 인간의 의식을 연구한다. 특정 행동을 관찰하여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어떠한 마음의 작용으로 인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분석하고, 잘못된 행동일 경우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 어떻게 보면 독심술의 사촌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심리학은 고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학문적 형태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갖추게 되었다. 그 후 기독교의 영향으로 한동안 위축 되었고, 17, 18, 19세기를 거치며 독립적인 학문이 되었다. 

 이미 말한바와 같이 심리학의 원점을 그리스 철학으로 보고 있는데, 심리학은 철학과 달리 나름대로 쉽고, 재미있다. 물론 심리학도 깊게 들어가면 골치가 아프다. 그러나 철학과는 달리 많은 전문가들의 노력에 의해 비전문가들에게도 비교적 친숙하게 되었다. 그것의 단적인 얘기 '000 심리학' 이라는 수많은 서적들이다. 전문가들이 어려운 심리학 용어와 설명을 쉬운 설명과 예로 대체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실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심리학은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가까워졌다. 누구나 독심술을 사용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살기도 바쁜데 심리학에 관심을 둘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것을 알아야 할까? 사실 심리학에 관심을 둘 필요는 없다. 몰라도 사는데 전혀 지장 없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안다면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심리작용으로 인함인데 그때에 각 행동과 연관성 있는 심리학에 대해 미리 알고 있다면 보다 나은 대처를 할 수 있다. 물론 이미 말했듯이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삶의 경험으로 조금씩 체득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알아두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심리학의 역사에 대해서는 어떨까? 이것은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필요가 없다. 실질적으로 사용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본인은 심리학에 관심이 있어 이 책을 읽었고, 비록 얇은 책이지만 심리학의 역사와 그 파생에 대해 잘 약술하고 있어 큰 유익이 되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매우 적은 분량 - 176페이지이지만 책이 작다. - 탓에 개론도 아닌 개론의 요약본 정도의 역할밖에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것은 장점이 된다. 심리학의 각 이론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간단히 살펴보기에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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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꿈이다 - 찬양사역자 김명식의 노래와 삶의 이야기
김명식 지음 / 가치창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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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만을 위해 살 수 있을까? 하나님만을 기쁘게 해드리며 살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그 모범을 보였고, 지금도 많은 선배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수많은 유혹과 고통을 하나님과 더불어 이겨내야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만을 위해 사는 것이다. 하나님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삶이 그분만을 위한 삶이고, 무엇이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일까? 그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몇 가지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고, 삶으로 그분을 노래하는 것이다. 

 입술로 곡조를 읊조리는 것만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 또한 노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 하나님만을 향한, 하나님만을 위한 노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세상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사는 동안 수많은 유혹과 핍박이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짓눌러 하나님을 잊게 만든다. 하나님을 노래 하기는 커녕 원망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일 지경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만을 노래하며 살 수는 없을까? 여기 그 본을 보이고 있는 이가 있다. 그는 찬양 사역자 김명식이다. 

 찬양하는 사람들이라는 찬양단에서의 짧은 활동을 시작으로 한국 컨티넨탈 싱어즈에서 오랜 사역 후, 솔로 사역을 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는 입술로만 하나님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도 하나님을 노래했고, 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찬양 사역을 시작한 그, 힘겹게 오늘에 이른 그이지만 이 책을 통해 그는 어떠한 순간에도, 한시도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의 기나긴 항해는, 항해의 중간에 이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은 하나님의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한 채 말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로 울고, 웃었다. 힘과 위로를 얻었고, 변화 되었다. 나 또한 그 중 한 명이다. 나는 그의 노래로 힘을 얻었고, 위로를 받았다. 그의 노래가 도전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노래를 통해 받은 힘과 도전을 또 다시 얻었다. 책을 읽는 내내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의 모든 고백이 은혜로웠다. - 특히나 그의 찬양을 들으며 그의 고백을 읽으니 은혜가 더욱 컸다. - 자신의 치부까지 솔직히 드러내며 자신은 결코 뛰어난 사람이 아님을 고백하는 그의 겸손함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금껏 쓰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의 항해에 힘껏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입술과 삶을 통한 노래를 기대한다. 하나님의 꿈 되어 그 꿈을 조금씩 실현해 갈 그의 앞날을 기대한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끼쳤던 선한 영향력보다 더 큰 선을 앞으로 끼치게 되길 기도한다.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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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내러티브강해의 기술
캘빈 밀러 지음, 박현신 옮김 / 베다니출판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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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예배는 일련의 순서에 따라 진행이 된다. 다시 말하면 예배는 여러 요소로 구성 되어 있다. 그 요소에는 경배와 찬양, 설교, 헌금, 기도 등이 있다. 그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물론 예배의 요소 중 어느 하나만 딱 잘라서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요소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들이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설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요소들은 모두 일차적으로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오직 설교만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교는 설교자의 입을 통해 회중들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설교자는 하나님과 회중을 이어주는 매개적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설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이용하여 회중에게 전해주는 보화다. 하나님께서는 설교를 통해 당신이 인간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지와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 하신다. 살아갈 방향을 정해 주신다. 그리고 위로해 주시며 힘을 주신다. 이외에 하나님께서는 설교를 통해 인간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신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적 존재이지만 이따금 그것에 반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성으로 인한 거룩한 중압감 혹은 과중한 스트레스와 인간적 욕심 - 설교를 통한, 그것을 이용한 인기영합, 우월감 고취, 타인의 조종 등 - 등으로 자신의 위치를 잊은 채 설교를 자신의 의도대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것을 보면 설교자와 설교의 중요성이 참으로 돋보인다.

 그런데 과연 설교자는 계속적으로 설교의 기법을 연마하고, 다듬어야 할까? 그것은 합당한 일일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간자인, 하나님의 대언자인 설교자가 설교의 기술을 새롭게 하는 게 과연 성경적으로 합당한 일일까? 성경과 연결한다면 조금 숙고해 볼 일이지만 그렇지 않고, 설교도 사역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합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중들의 가정과 사회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관심사와 사고 방식 또한 변한다. 비록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하나 그것을 실제적으로 전하는 것은 인간인 설교자이다. 따라서 설교의 기술을 회중들의 변화에 맞추지 않는다면 소 귀에 경읽기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을 붙여 주신 것은 모세가 말을 잘 못하였기 때문이다(출4:10, 14). 그것을 설교와 연관지어 이렇게 재해석 - 물론 그것은 올바른 해석은 아니다. 이 글을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니 착오가 없길 당부한다. -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세는 설교를 잘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역을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설교를 잘 하는 아론을 함께하게 하시어 그가 대신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그렇게 보면 설교의 기술, 말을 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설교의 보다 나은 방법을 가르쳐 주는 안내서이다. 설교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려 사항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설교문을 작성할 수 있는지, 설교를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설교와 관련된 실제적 기술들을 제공한다.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고, 매우 흡족하다. 설교자들에게 많은 도움, 실제적 도움이 될 것이다. 상당히 유용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지적 했듯이 이따금 눈에 띄는 오탈자, 그리고 본문의 구성 상태와 편집이 보기에 불편하다는 것과 번역의 아쉬움으로 2% 부족함을 느낀다. 그것을 제외 한다면 꽤 마음에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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