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흔한 젊은 여성 자립기라고 생각했지만 가키야 미우니까 믿고 보자는 식으로 읽었다. 하지만 제목은 반어적 표현이었다. 혼자 절대 살만하지 않았다. 밀리고 밀리고 밀려서 길에 나앉을 신세가 되자 부모님 무덤 가에서 죽어야지 하는 결심까지 했으니. 부모 찬스를 쓰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되는 이야기였다. 부모가 살아있으면 전혀 이해 못하는 세계. 부모형제친척 하나없이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나랑 겹쳐져 눈물겨웠다. 거기에 결혼이라는 타협도 안 하고. 물론 결혼도 부모형제친척 없으면 그 자체가 고군분투이긴하다. 하지만 궁즉통이라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주위 사람들까지 도와줘 어찌저찌 위기를 넘기는 모습을 보노라니 무슨 올림픽경기를 보는 것도 아닌데 손에 땀이 날 정도. 이렇게 세상은 젊은 여자가 자립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가키야 미우 작품 중에서 가장 읽고 싶었던 작품. 고령화가 우리보다 빨랐다지만 일본에서 이 책이 2012년에 나왔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그로부터 12년 후에 영화 ‘플랜 75‘가 나온 것이 오히려 늦은 것일 수도. 요즘의 사회 문제는 다 나와있는 것 같은 글(그런데 12년 전에 나온 이야기라니)을 읽노라니 자꾸 우리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sf나 판타지 이런 거 말고 노인 문제와 얽힌 구체적이고도 현실에 기반한 문제를 다룬 한국 소설을 접하기 어려운 면이 너무나도 아쉽다. 대부분 주인공들도 젊은이들이고 우리 노작가들이 분발해서 써주면 좋은데 한국 현역 노작가들은 대부분 남자여서 여성 노년에 대해 다룬 이야기들을 접하기 어렵다. (나만 그런 건가 ㅠㅠ) 에세이부분에서는 있는 것 같은데 소설은 만나보기 힘들다. 가키야 미우는 다작인가보다. 읽을 거리가 무궁무진해 좋네.
가키야 미우에 빠져서 집 앞 도서관에서 빠르게 빌려볼 수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가 그대로 다 읽었다. 드라마화되었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일드를 보는 것 같았다. ‘불편한 편의점‘류의 작품들처럼 마음 따스해지는 소설. 제목과 드라마화되었다는 정보를 보고 그렇고 그런 불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알고보니 너무 바람직한 남편이었다. 접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39세 여자와 20대 초반 여자의 몸이 바뀌면 실제로는 수습 불가능하게 엄청난 일이 벌어질 테지만 (하긴 바뀌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니 뭐.) 이 소설은 판타지이므로, 영화같은 이야기므로 결말은 모두 너무나 해피엔딩. 문제들이 술술 풀리고 모든 이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이야기라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지만 가독성 하나는 끝내준다. 다른 가키야 미우 작품으로 고고!
‘부모들의 대리 맞선 서바이벌‘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처음에는 너무 올드한데 괜히 읽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진전이 느렸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있어졌다.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한 발 빠른 일본에 부모가 나서서 자녀의 배우자감 후보를 고르는 맞선 자리에 나가는 이야기라니 호기심이 일었다.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 이들이 많아지는 반면 외동도 많은 젊은 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편치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어느 한쪽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평등지수 면에서 꼴찌가 일본이고 그 바로 위가 한국이라는 통계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 소설에 나타난 일본 남자나 남자 부모들의 보수성은 우리의 그것보다 비슷하거나 더 한 듯 했다. 57세의 주인공이 부모 맞선에 일년 정도 열심히 참여한 끝에 딸이 원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기로 하는 결론으로 끝을 맺지만 오랫동안 노력해도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듯 하다. 변화된 세태를 빠르게 분석하면서도 자신의 속물적이거나 감추고 싶은 속마음을 솔직하게 터놓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대표작이라는 ‘70세 사망 법안, 가결‘이라는 책도 읽어보고 싶다. +가키야 미우 작가를 검색해 보니 웬걸 내가 이미 읽은 책이 두 권이나 되었다. ‘시어머니의 유품 정리‘와 ‘이제 이혼합니다‘를 읽었었다. 그러고 보니 문체가 낯익었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도 읽어봐야지. 꼬고무 독서 고고!!
‘미스 플라이트‘, ‘서독 이모‘로 기억되는 박민정 작가의 최신작. 뒤늦게 출간 소식을 접하고 게다가 ‘외전‘에 솔깃해서 보게 되었다. 늘 바깥 이야기가 더 재미있지 않은가. ‘백년해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이고 너무나 어마어마한 약속(그러므로 필연코 후회를 낳는) 인데다가,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 때 여성의 큰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고. (물론 남성도. 결국 결혼제도는 서로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관계?) 이런 생각들이 제목을 보고 끌렸던 이유다. 이 이야기에는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된 인물은 다 여자들이다. 나 엄마 큰 고모 작은 고모 사촌언니 사촌동생 입양간 고모 등등 인텔리지만 국제결혼을 해 외국인 며느리가 된 바닷가 사촌 새언니, 프랑스로 입양보냈던 큰아버지의 딸 야엘, 어찌저찌 알게된 프랑스에 사는 알제리 계열의 부모에게 입양된 한국 입양인 아지가 제일 독특한 인물로 볼 수 있다. 그 외에 사촌 동생이나 언니, 직장동료, 고모들이나 아버지들, 할머니, 엄마 등은 익히 우리가 봐왔던 옛날 그 시절의 캐릭터이고. 나의 직장 이야기와 소설 이야기 집안 이야기가 엮여 돌아가서 그런지 의식의 흐름처럼 이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내용을 따라잡으려면 정신을 차리고 읽어야했다. 내용도 유쾌하기는 커녕 매우 무거운 주제들이었고. 박민정 작가의 작품은 보통 내 기대와 다르게 전개되었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 박민정 작가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여러 상황들을 제시해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작품을 주로 쓰는 것 같다. 한국인 아버지와 동남아로 추정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카 수아에게 엄마가 했다는 말- 이 외모로 영어도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영어유치원에 보냈다는 말, 아지가 알제리 양부모 아래에서 자랐지만 한국인의 외모라 불법체류자로 여겨져 자주 검문을 당한다는 점 등은 너무 날카롭다 못해 뼈아픈 내용들이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아내들의 학교‘를 읽어보려고 한다. 막 재미있거나 나와 코드가 딱 맞는 건 아니지만 찾아읽으려는 마음이 늘 드는 이유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작품을 써서 그런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