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는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독서량이 많은 20,30대 여성 독자층들의 호응도도 높은 것 같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이런 유형의 책이겠거니 아니면 요즘 트렌드라고 하는 LGBTQ 이야기인가 하고 별 기대없이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 그런데 웬걸.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는 책 중 한 권에 오를 수 있는 책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자신의 행복을 오롯이 추구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니 여성들도 있구나 싶었다. 20,30대 들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더군다나 그랬다. 보통 40대라면 이혼했거나, 이혼을 고민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육아에 찌들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독박육아를 거쳐 질풍 노도의 사춘기 아이를 키우면서 갱년기 초기 증상을 느끼거나 아니면 적어도 남편이 숨만 쉬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일 텐데 이 책의 저자들은 전혀 아니었다. 나 대신 즐겁게 인생을 살아주는 것이 고마웠다.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는 얘네들은 젊으니까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싶었는데 이 이야기는 40대 여성들이 함께 집도 사고 함께 생활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쓴 것이었다. 저자는 혹은 저자들은 혼자 정말 즐겁게 살았지만 충만한 자취력? 독신력?도 (자취와 독신에 대한 차이를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자취는 왠지 임시적인 느낌이고 독신은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한 선택의 느낌이라는 그녀들의 말에 동감한다.) 20년을 넘어가자 어떤 임계점에 도달해서 독신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삶을 꿈꾸게 되었고 운 좋게도 잘 맞는 또 다른 독신 여성을 만나 함께 삶을 꾸려나가는 이야기를 이 책은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공동체 생활이 꼭 신혼부부의 그것과 닮았다는 것. 어찌도 저렇게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살아내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했다. 서로의 부모에 대해 어떤 의무감도 없이 진심으로 대하면서도 예쁨은 고스란히 받는 그녀들이 정말 부럽기도 했다. 결혼하면 며느리의 지위는 몇 단계 떨어진다는 그녀들의 지적, 아이를 키우고 직장에 다니면서 아내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이는 남편들을 보면서 느끼는 그녀들의 불편함에 공감한다. 대부분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살짝 살짝 가부장제, 결혼제도에 대한 굳건한 입장을 피력하는 데 그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강한 의지를 표명할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이 느껴졌다.
황인가 김인가 암튼 둘 중 하나가 ( 이 글은 황과 김이 번갈아 쓰는 형태의 글이 모여있다) 충만한 독신력도 20년이면 임계점에 달한다는데..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신미경의 책들이 떠올랐다. 특히 최근에 출간한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는 홀로 어떻게 우아하게 살아가는지 정말 말 그대로 충만한 독신력에 대한 나만의 추구 방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자주 글이 삼천포로 빠져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도 이렇게 살 걸 하는 후회 아닌 어떤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하고 지금 신미경의 모습이 '여자 둘이...' 저자들의 십여년 전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혼자의 고단함을 피하기 위해 결혼 제도와 시월드와 가부장제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고단함의 토네이도로 돌진하는 바보짓이었다.'는 그녀의 언급이 정말 와닿으면서 나는 다 가질 수 있고 나는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과거가 떠올라 그녀들이 부럽기도 하고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이 책에서는 다양한 동네 커플들과의 공동체 이야기도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어느 가정도 - 그 가정이 여자 둘이든, 남녀 둘이든, 강아지가 있든, 고양이가 있든, 한 마리이든, 네 마리이든 - 공통되게도 어느 가정에도 아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이런 생활은 아이가 없어야 가능한 것이었지. 기승전 비출산이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한 번 '시녀이야기'에 나오는 디스토피아가 결코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새삼 마거릿 애트우드의 선견지명에 무릎을 치는 걸로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인간이라는 존재를 낳아 키우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것이 엄마의 전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면, 엄마의 인생을 다 바쳐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일까라는 회의가 마구마구 드는 요즘(이런 회의는 애저녁에 들었었지만)..그녀들이여, 나 대신 행복하게 살아주어 고맙다.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다오. 그렇지 못한 우리들이 온 마음으로 응원해 줄테니 부디 우리들의 몫까지 더 행복하게 당신들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다오 라고 붙잡고 부탁하는 심정이 된다.
멋지다. 그녀들..진심으로 그녀들을 응원한다. You are doing really well. Keep g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