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출한 작가를 알아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공저자 김하나 작가. 그의 직함이 여러 개라 이렇게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주로 그의 책을 읽었으므로 작가로 명명하겠다. 그의 팟캐스트는 아주 조금 들어보기만 했다. (나는 심한 문자중독자여서 다른 수단의 매체와는 거의 안 친하다. 그나마 듣기가 읽기 다음이긴 하다. 영화나 드라마도 보긴 보는구나. 하지만 정말 읽을 책이 궁할 때 하는 외유 정도. 그런데 팟캐스트는 역주행해봐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김하나 작가의 찐팬이 된 것 같아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뒤늦게 인상깊게(과장 조금 보태서 뒤통수를 맞은 느낌) 읽고 나서 (나는 늘 한 발 늦는다.) 그 책에서 언급되었던 '힘빼기의 기술'을 읽고 또 재미있어서 우선은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그의 책은 최대한 빌려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것인 '말하기를 말하기'와 '15도'였다. 코로나 와중에 도서관 대출도 쉽지 않아 상호대차 무인예약 등등의 서비스를 풀가동해서 얻게 된 책들이다.
저자가 책을 낸 순서와는 상관없이 지그재그로 책을 읽은 셈인데 내가 읽은 세 권을 집필 순으로 해 보자면 그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말하기를 말하기'가 '힘 빼기의 기술'보다 훨씬 좋았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힘 빼기의 기술'은 뒷부분에 남미 여행기가 담겨있어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제목과도 크게 거스르지 않고 본인의 인생을 크게 전환시켜준 여행이었기에 여행기를 실었겠지만 나에게는 좀 생뚱맞고 난데없고 게다가 공감도 어려운 부분이어서 좀 아쉬웠다. 남미는 너무 멀다. 그런 아쉬움이 '말하기를 말하기'에서는 좀 해소된 느낌이다. 특히나 페미니즘 성향의 작가들은 그 어조가 너무 강해서 남자가 아닌 여자도 쉽게 동조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은데 김하나의 어법은 그렇지 않아서 좋다. 특히나 여자들이 겸손할 권리가 없다는 대목이 정말 와 닿았다. 그것은 권리인 것이었다. 메이저들이나 누리는 미덕이 아니라. 또 여성작가들이 대거 모였다(단군 이래 가장 큰 여성 작가 모임)는 대목에서도 꼭 내가 초대되었던 것처럼 감개무량했다. 그는 정말 소리 없이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정말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도 같았다. 정말 이렇게 살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싶었다. 물론 늘 여한은 있겠지만 말이다.
'15도'는 작가의 말로는 초기작이라서 경직되어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무슨 의도의 언급인지는 알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책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많은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노력했을까 싶기도 하고, 색다른 형태의 책이라 소장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가볍게 중고등학생이 읽어도 좋겠다 싶다. 카피라이터 출신다운 책이기도 하다. 불현듯 박웅현과 어떤 면에서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광고업계에 종사했다는 것 말고도 말이다. 다른 초기작품도 올해 재출간이 된다는데 그것도 재출간이 되면 바로 읽어 보고 싶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걸출한 작가다. 멋지다. 그의 모토도 마음에 든다. '하면 는다' 정말 옳은 말이다. 나는 한 작가에 꽂히면 작품을 죄다 찾아서 읽는데 요즘은 그런 작가 만나기가 쉽지 않았었다. 오랜만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기뻤다. 오랜만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해 준 작가 김하나 씨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