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하지 못한 말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해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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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 책이 나온 줄도 몰랐다. 더이상 그가 문단의 왕따가 아니길 바란다. 일인출판사도 내고 활발히 작품활동하며 강연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최영미 시인 작품을 다시 찾아 읽어봐야할 것 같다. 멋지다. 그의 일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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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류의 글들"이라는 말이 있다. 불행은 다양하지만 행복은 뻔하다는 말처럼 '좋은 생각' 은 뻔한 이야기만 담겨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마니아들도 있지만 아예 쳐다도 안 보는 부류가 있다. 나도 두번째 부류였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뭔가 매우 바쁜데 의미있는 일은 하지 못 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지쳐, 종이책을 들고다닐 힘도 시간도 없어 밀리의 서재에서 전자책을 뒤적이고 있다가 흘러흘러 '좋은 생각' 2021.1월호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3,4월호 밖에 안 나와서 어쩔 수 없이 3월호로.ㅠ)

 

거기서 벼락같은 시를 봤다. 바로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을 가졌는가'

 

첫마음을 가졌는가

 

박노해

 

첫인상을 남길 기회는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첫사랑의 떨림은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첫마음을 새길 시기는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좌우되지 않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무력한 일상 속에서도 나 살아있게 하는

그 첫마음을 가졌는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때나

화려한 빛에 휘청거릴 때나

눈물과 실패로 쓰러졌을 때나

나를 다시 서게 하고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힘

 

나의 시작이자 목적지인 첫마음의 빛

일생 동안 나를 이끌어가는 내 안의 별의 지도

떨리는 가슴에 새겨지는 그 첫마음을 가졌는가

 

  

 무력한 일상 속에서도 나 살아있게 하는 그 첫마음을 가졌는가는 부분이 특히나 내 마음을 두드렸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첫마음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던 차에 박노해 시인의 '첫마음을 가졌는가'는 읽으면 읽을수록 큰 울림을 주었다. 점점 더 울림이 크게 시를 써내려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나를 다시 서게 하고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힘' 그 힘의 원천이 '첫마음'이라니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이다. 오뚝이처럼 우리는 일곱번 쓰려져도 여덟번 일어날 수 있는 그 힘을 '첫마음'에서 찾아야 한다.  일신우일신. 우리는 늘 똑같은 하루를 매일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누구나 갖고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첫마음'. '떨리는 가슴에 새겨지는 그 첫마음'을 늘 되새겨 볼 일이다.

 

어느 시집에 수록되었던 것인가 궁금해 다시 '좋은 생각'을 뒤져 보아도 그저 '박노해' 세 글자 뿐이다. 하긴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라. 그 이름 석자의 상징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쫓길수록 더 단비같이 느껴지는 것이 '시'인 것 같다. 바쁠수록 돌아가라. 바쁠수록 짧은 시 한 편으로 차 한 잔의 여유를 느끼며 다가오는 이 봄의 순간순간을 붙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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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펼쳐 낼 수도 있구나 싶었다. 플롯을 골머리를 써서 짜내지 않고 이렇게 '경진'이 산책하듯이 여행하듯이 나다닐 때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이 '경진'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아서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마지막 김혼비의 추천의 글의 서두와 말미에 '산책이 책이라면 은모든의 소설 같을 것'이다라는 언급과 '꿈결 같은 산책'이었다는 언급이 내 마음과 같았다. 덕분에 전주 여행을 다녀온 것 같기도 하다. 엄마와 '경진'의 대화가 특히 '경진'이 엄마에게 하는 말투가 전혀 모녀 지간 같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며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을 떠올렸는데 정세랑 작가가 추천의 글을 써서 신기했다. 김혼비, 정세랑 작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기에 추천이 더 빛났다. 


그러고 보면 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나본데 오랜만에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대체 이 소설에는 몇 명의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행복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아무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려 하지 않게 된 이 시대에, 특히나 대면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린 이 시대에 '모두 너와 (너를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어 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부럽기도 하고. 나도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거나 누군가에게 붙잡혀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런 소망 때문에 요즘 클럽하우스가 인기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역시나 대화는 대면으로 하는 것이 제 맛이지 하는 생각으로 돌아온다. 여행도, 대면 대화(대화라는 것이 대면을 포함하는 것인데 어쩌다 우리는 대면 대화라는 말을 써야하는 무서운 세상에 살게 되었단 말인가!) 도 불가능해져 버린 이 시점에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보기 드문 책이었다. 참으로 '꿈결 같은 산책'이었다. 굿굿굿. 더 말이 필요없다. 


+ 요즘 일이 벅차서 사적으로 읽는 글의 글자 자체가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나는야 문자중독자) 은모든 작가 덕분에 잡념없이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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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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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임경선 작가가 일인출판으로 냈던 책도 평이 좋지 않았는데 이 책도 같은 평을 들을 듯하다. 두세페이지에 해당하는 50꼭지 정도의 분량. 내용도 특별할 것이 없고.
임경선 수필을 좋아해서 바로 읽고 싶었으나 먼저 입고되는 독립서점까지 찾아갈 시간은 없어서 대형서점에서 예약주문해서 보았다. 초판 오천부가 다 나가서 재판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결혼 20주년이 되는 결혼기념일날 출간되도록 하고 모든 수익금은 남편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정말 이 사실들만으로도 구매욕구 자극이다. 솔직히 마케팅이 다 했다.
남편이 이 책을 읽고도 이혼하자는 말을 안 한게 신기하다고도 했지만 이 책을 처음 읽은 남편의 소감은 바로 이런 책을 사 볼 사람이 있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다 읽고 나니 남편분의 소감이 가장 정확하고 솔직한 평이 아니었나 싶다. 주례사비평은 아니더라도 책 만들기에 공이 많이 들어가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 책은 그렇지가 않다. 아마 저자 남편분은 이해하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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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의 마니아라면 이번 신간이 반가울 것이다. 특히 '우아하고 호쾌한 축구'를 정말 재미나게 본 나로서는 김혼비의 신간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부랴부랴 구매해 읽어 보았다. 


읽어보니 과연 김혼비 마니아라면 예상했을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비판적 시각, 그러면서도 따뜻한 마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애둘러 이야기하는 자세 등등..거기에 박태하까지 가세했으니 그들이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며 혹독한 재교삼교 그 이상의 퇴고를 거쳤다니 원고의 질은 의심할 필요가 없겠다. 다만 잡지의 한 꼭지로 연재되었을 때가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왠지 비스무레한 K 축제가 비스무레한 논조로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느낌이라 집중이 잘 안 되는 면이 있었고(이건 순전히 K 축제 탓일 수도.) 어느 정도는 예상되는 전개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훈훈한 마무리로 급마무리한 느낌도 조금 들었다. 박연준은 그들을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고 했지만 적어도 아직은 나에게는 빌 브라이슨에 대적할 만한 한국 작가는 없다. 하지만 그의 유머, 시니컬함 등등을 떠올려 볼 때 박연준이 왜 그 말을 했는지는 십분 이해했다. 더이상 축제를 열 수 없게 되어버린 하지만 간신히 축제를 만들며 버티던 중소도시 관계자들의 안부를 저자들과 함께 걱정하면서도, 코로나 시국에도 팔도 유람을 톡톡히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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