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들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노년으로서의 공통된 모습과 대가로서의 남다른 모습을 함께 지니는 그 무엇일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일까하는 궁금증에 이 책들을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첫번째 책은 윌리엄 스타이런의 '보이는 어둠-우울증에 대한 회고'이다. 로맹 가리, 어니스트 헤밍웨이, 실비아 플라스 등등 우울증으로 인해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한 작가들은 정말로 무수히 많다. 이 책은 정서장애에 대한 심포지엄에서 강연한 강연록을 조금 수정해서 출간한 것이라는데, 그의 우울증에 대한 여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격 유형 분석이 흔해진 요즘이라 대부분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고들 있는 듯 한데 '예술가 유형(특히 시인들)'이 특히 우울증에 취약하다는 언급이 있었다. 알베르 까뮈는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스타이런은 속도광으로 유명했던 사람과 동승한 알베르 까뮈를 의심하고 있었다. 순전한 자동차 사고이기만 했을까 하고 말이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대작을 집필해 재기를 꿈꾸던 정황상 자동차 사고로 분류되었지만 누구나 다 아는 속도광의 차를 그 중요한 시기에 굳이 얻어타야할 만한 중차대한 이유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로맹 가리도 허무하게 잃고 까뮈도 허무하게 갔으니 말이다.
우울증의 다양한 증상과 치료 과정, 회복 이후의 이야기 등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생각할 거리들이 있다. 작가들의 우울증의 양상이라든가(특히나 같은 시대를 살았던 대가들의), 우울증 및 그 치료에 관한 의사 및 일반인들의 편견 등등.
두번째 책은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 특히 자신의 부모 이야기는 하지 않던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책. 아주 얇은 소품인데 '이렇게 개인적인 문장이 일반 독자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지 모른다'는 본인의 언급처럼 하루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전혀 주목받지 못했을 이야기다. 절연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아버지에 대한 회고를 책으로 펴낸 하루키. 늘 20대 감성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였던 하루키도 이제 70대의 노인이 되어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고 자신의 유년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여러 모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만년 청춘의 작가 한 명을 잃은 느낌이랄까.
다 읽고 나니 전혀 접점이 없어보였던 두 책이 뭔가 비슷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어쩌면 여러 스펙트럼을 지닌 노년의 모습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년이란 무릇 자신의 과거를, 경험을, 지나온 젊음을 들여다보는 시기이다. 모든 것이 꿈인 것 같기도 하고 이 모든 것들을 뒤돌아보고 있는 내가 꿈인 것 같기도 한, 일장춘몽을 다 겪은 노작가들의 이야기.
동서를 막론하고 뭔가 노년의 처연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신록이 푸르른 계절에 처연한 책들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