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마음에 없는 소리‘도 제목과 광고 카피에 혹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번 책도 ‘조금 망한 사랑‘이라는 제목과 ‘빚이 있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신경림의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의 2024년식 버전으로 느껴졌다.) 와 같은 광고 카피에 빵 터져서 바로 전자책으로 구매해 읽게 되었다. 전에도 전자책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요즘 젊은 작가들의 책은 종이책 전자책이 거의 동시에 출간되어 너무나 반갑다. 결이 다른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으나 결국은 김지연으로 묶여지는 이야기들. ‘유자차를 마시며 나는 쓰네‘가 가장 인상깊었다. 김지연 특유의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들을 음미해보면 다 뼈가 있다. 개성 넘치고 특이한 그러면서도 시대를 드러내는 솜씨가 뛰어난 작가. 단순히 퀴어 작가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에게는 성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뿐이다. 아니 성별보다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보통은 소설집의 제목이 수록된 단편들 중 하나의 제목이기 마련인데 이 작품집은 그렇지 않다. 속표지에도 김지연 소설이라고 되어있지 소설집이라고 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 ++ ‘이생망‘이라는 말도 있지만 ‘망했다‘라는 말을 많이 쓰는 젊은 세대들의 세태를 해설자도 해설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조금‘ ‘망했다‘는 소설의 이름이 절묘했다. 망하긴 망했는데 조금이니 괜찮겠지 하하하 하는 자기 일이 아닌 듯 무심해하는 주인공의 말투가 들리는 듯하다.
정동길을 지나 덕수궁을 우연히 지나다가 우리 나라 궁궐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된 책. 이 시리즈 1권부터 나올 때마다 읽었었는데 타국 생활이 오래 되어 맥이 끊겼다가 귀국 후 몇 년이 흘러서야 다 못 읽은 이 시리즈를 찾아보게 되었다.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이렇게 술술술 읽히게 쓴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다. 그의 박식함과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내는 솜씨에 흠뻑 빠져 읽었다. 차분리 서울편 2,3,4를 이어 읽어야겠다. 그리고 고궁박물관도 들러봐야지. 우리 고궁의 아름다움은 세계인도 감동하는 것인데 우리만(나만?) 늘 근처에 있어서 그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유홍준 교수 덕분에 그 중요성이 재인식된 것 같아 뒤늦게 혼자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유네스코에도 ‘5대 궁궐‘로 기록될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큰 규모의 궁이 다섯 개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날도 좋은데 야간 개장에도 가보고 싶구나.
클레어 키건의 가장 유명한 책을 가장 나중에 보았다. 우연히도 키건의 작품은 다 원서로 읽었는데(아마도 그의 간결한 문체와 짧은 분량 때문이겠지 ㅎ)이 책도 원서로 읽다가 다 못 읽고 있던 차에 밀리의 서재에서 오디오북을 발견하고 듣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해서 원서는 커녕 번역본도 읽어낼 수 없는 상황이어서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키건 작품이 더 새롭게 느껴졌다. 원문으로 읽는 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분명하고. 번역본을 듣고 있으려니 귀를 쫑긋하고 귀기울여 듣게 되었다. 남주의 심리를 어찌 그리 잘 묘사했을까. 말하기 어려운, 모두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이렇게나 완곡하게 말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자신의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풀리지 않은 자신의 뿌리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너무나 묘사가 잘 되어 감동스러웠다. 역시 믿고 보는 클레어 키건!!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속편 격인 2005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 반점‘을 읽었다.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는 괴기한 느낌이 들었고 채식을 고집하는 딸의 뺨을 때리고 억지로 고기를 먹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혐오스러워 이 작품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겠구나 싶었었다. 하지만 속편은 훨씬 더 아름답고 몽환적이고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화려한 다큐멘터리 혹은 컬러풀한 안무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한강이 정말 모던한 작품을 썼구나 싶었다. 이번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그의 이러한 모던하고 글로벌한 감수성이 세계를 움직인 것일 수도. 멋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