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에서 오디오북으로 듣다. 연중 무휴는 정말 흔하고 극도의 신속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단어. 하지만 그것과 사랑의 결합이라니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당차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씩씩한 그의 모습을 느끼며 들었다. 대견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김민섭의 ‘지방시‘ 때부터 팬이었고 그가 지향하는 ‘선한 영향력‘에 감동받은 일인이라 신간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부랴부랴 전자책으로 구매해본 신간.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대체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인간의 공감능력, 다정함만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김민섭. 격하게 동의한다. ‘대리사회‘부터 그가 시도하는 프로젝트들은 어찌나 그리 참신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지 실로 대단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어영부영 하던 사이에 내가 모르던 그의 여러 프로젝트들이 결실을 맺어 책으로 많이 나온 것 같았다. 캐치업할 것들이 많아 신난다. 캐치업 캐치업!!
커티스 작품 읽기 두번째. 번역본은 두 권 뿐이라 다른 책을 읽으려면 원서를 읽어야할 듯. 원제는 ‘어메리칸 와이프‘인데 여주가 결국 영부인이 되는 내용이므로 퍼스트 레이디로 번역을 한 것 같지만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그런데 원제도 그렇게 읽고 싶게 만들지는 못 하는 것 같다. 인디애나 시골에서 외동딸로 곱게 자란 엘리스가 우여곡절 끝에 영부인까지 되는 이야기인데 정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엄청난 숫자의 인물이 등장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어떤 부분은 성장 소설이고 어떤 부분은 연애 소설이고 어떤 부분은 가정 소설이고 어떤 부분은 정치 소설이다. 원서는 350페이지 분량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번역본은 사립학교 아이들처럼 아니 더 두꺼워져 600페이지가 넘는다. 요즘 이렇게 긴 소설이 잘 나오지 않아(하긴 이 작품도 2008년 작이긴 하다.) 다 읽고 나면 뭔가 미국 현대사를 꿰뚫고 온 느낌이 들기도 한다. 로라 부시의 삶을 참고로 많이 했다는 번역자의 소설 뒷이야기를 읽고 그렇구나 싶었다. 앨리스라는 캐릭터가 아쉬운 면이 많이 있었지만 이틀 동안 푹 빠져서 재미있게 읽었다.커티스의 다른 작품들도 재미있어 보이는데 번역은 안 된 것 같다. 궁금하다. 인상깊은 구절-절대 잊지 마라. 남자들이 아주 불안정한 존재라는 걸. -나에게도 이런 조언을 해주는 할머니가 있었다면. 역시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 형제자매도 없는 그 아이한테 너희가 줄 수 있는 건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 말고 뭐가 있겠니? -ㅠㅠ 외동 부모는 이혼도 못 하겠군. -모든 결혼에는 배신이 존재한다. 그러나 결혼을 깨트릴 만큼 큰 배신을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결혼의 목표가 아닐까? - 큰 배신 작은 배신은 누가 판단하나?
너무나도 미국적인 작가. 출간 직후부터 원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늘 앞부분을 읽다가 포기하게 되어 드디어 힌글책으로 읽었다. 인종차별적이라는 언급을 본 것 같은데 중산층 백인 여성의 입장에서 썼고 배경이 기숙학교라 어쩔 수 없었을 것 같긴 하지만 세간의 평처럼 인종차별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는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소설이라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본 것 같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인종 문제는 우리의 피부색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한 것이기에. 우리 나라 기숙 고등학교에 대한 궁금증에서 읽게 된 책이었는데 역시나 너무나 미국적인 책이라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않았다. 2005년 작이라 너무 고풍스러운 이야기로 읽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섬세한 성장소설임에는 틀림없고 콜필드가 시간이 흘러 여자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시튼펠드의 작품들은 번역이 두 작품밖에 되지 않았고 다 구간들이었다. 신간은 원서로 읽어야 하는 걸까. 그다지 잘 읽히지 않는 작가인데 문체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너무나 고학력 중산층 백인 여성의 목소리를 내세워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간만에 미국소설을 읽어 미국에 다시 간 느낌이 들어 기분 전환이 되었다.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면 되지.‘이다. 세상이 나에게 레몬을 주면 나는 그걸 최대한 좋은 쪽으로 활용해야한다는 것.
예소연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586세대를 부모로 둔 딸의 목소리로 내용이 전개된다. 90년대생일까. 00년대생일까.여성들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도 인상적이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분재‘였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직전의 모습이 정말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고 70대 할머니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달까. 젊은 사람이 노인의 감성에 여기까지 다가갈 수 있다니 놀라웠다. 물론 작가나 나나 70대의 삶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둘다 예상치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할머니와 엄마와 손녀로 이어지는 그 미토콘드리아적 관계가 아름다웠다. 이래서 힘들어도 자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 한국소설 중에 장르소설 말고는 읽을 소설이 드문데 이렇게 정통(?) 소설을 만나면 난 정말 반갑게 전자책으로 구매해 직진해서 다 읽어버리고 만다. 읽고나면 요즘 젊은이들 정말 살아남기 힘들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도 그 와중에 자신의 목소리를 잘 찾아서 잘 살아남는다 싶기도 하고. 매우 미진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아지고 있는 사회의 일면들이 보여서 부럽기도 하고.. 복잡한 심경이 든다. 그래도 변화된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이런 트렌디한 소설 마음에 든다. 또 한국소설 찾으러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