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댈러스의 중산층 4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나, 아폴로 프로젝트에 엔지니어로 참여했던 아버지를 두었고, 듀크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MBA 과정까지 마친, 마이크로소프트 1세대 여성 엔지니어. 그녀는 바로 멜린다 게이츠. 아이비엠에서도 오퍼를 받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발전가능성에 반해 마이크로 소프트 1세대 여성 엔지니어가 되었고 마이크로 소프트 직원들을 위한 저녁 파티에서 만난 빌 게이츠와 결혼해 세 자녀를 두고, 십년 간 다니던 마이크로 소프트를 그만두고 게이츠 재단을 만들어 자선 사업에 뛰어든 사람.
이렇게 알려진 그녀의 이력만으로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이건 너무 전형적이지 않은가. 이 책에서 저자 자신도, 사람들이 그녀가 밟아온 빌과의 결혼 이후의 삶이 전형적이라고 너무나 쉽게 판단한다며 놀라워한다. 본인은 모든 면에서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왔다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사적으로 아무리 부부간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 매사에 노력했다 하더라도,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인 빌이 결혼 후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십 년을 매진해 온 회사를 그만두고 자선사업에 몰두한다고 하면 정말 칭송하겠지만, 그 반대라면 당연히 그것은 너무나 전형적이다. 그래도 그나마 높이 살 만한 것은 그녀의 자선사업이 전 세계의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재단의 사업을 홍보하고, 자신들의 과업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실책을 변호하는 책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좋은 의도로 정말 거대한 자선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중간중간 언뜻언뜻 비춰지는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슬프게도 우리들 대부분이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글들이 많았다. 물론 자세한 세부 사항들을 알 수 있게 되고, 팩트풀니스의 한스 고슬링, 노벨 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등 유명 인사들도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은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이 책은 그렇지 못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250페이지 미만의 이 책은 "How Empowering Women Changes the World"라는 부제에 걸맞지 못하게 여성들에게 힘을 불어넣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회고록인 듯, 에세이인 듯, 아니면 보고서인 듯..이도저도 아닌 듯한 포지셔닝 때문인지 내용에 비해 설득력은 그리 높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여성을 위한 자선 사업 보고서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 끝까지 읽긴 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옮겨 본다.
We can look at each of these issues as a wall or a door. I
think I already know which way we see it. In the hearts and minds of empowered
women today, “ every wall is a door.” P.28
I have been surprised when I have sometimes found friends
assuming that Bill’s and my marriage would have traditional gender roles
because of Bill’s role at Microsoft, but he and I have worked hard to shed any
hierarchy except for a natural, flexible, alternating hierarchy based on
talent, interest, and experience. We have agreed that our various roles in
life, past or present, should have no effect on an equal partnership in our
marriage, or at the foundation. P.148
American billionaires giving away money will mess everything
up! By Hans Gosling p.171
세계에서 가장 큰 재단을 이끄는 빌 앤 멜린다 게이츠. 그 재단의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리려는 듯 해 보일 수도 있는, 재단 활동 보고서격인 이 책을 읽어내려가며 아이러니하게도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며 눈물짓게 된 것도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좋은 집안에서 잘 자라 좋은 교육을 받아 회사를 차리고 크게 성공해 결국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 전 세계를 상대로 자선 사업을 펼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스티브 잡스의 굴곡진 삶, 그것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그의 독창성, 그의 찬란함을 떠올리며 혼자 감상에 젖었었다. 그렇지. 이렇게 잘 자란 사람들이 자선 사업으로 세계를 향해 자신이 받은 것을 환원해야지. 위대한 혁신은 잡스 같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말이다.
왠지 잡스가 더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아래의 대목은 마음에 든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아프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 정도의 댓가는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일 수 있다.
The lesson I have learned from women in social movements all over the world is that to bring about a revolution of the heart, you have to let your heart break. Letting your heart break means sinking into the pain that is underneath the anger. This is how I make sense of the scriptural instruction “Resist not evil.” I don’t take this to mean “Make way for evil in the world.” I think it means “Don’t resist the feeling; accept the suffering.” If you don’t accept the suffering, hurt can turn to hatred. P.258
The power of letting your heart break is not just something to admire in others. All of us have to let our hearts break; it is the price of being present to someone who is suffering. P.259
Earn an income. Work outside the home. Walk outside the home. Spend their own money. Shape their budget. Start a business. Get a loan. Own a property. Divorce a husband. See a doctor. Run for office. Ride a bike. Drive a car. Go to college. Study computers. Find investors. All these rights are denied to women in some parts of the world. Sometimes these rights are denied under law, but even when they are allowed by law, they are still often denied by cultural bias against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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