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무시무시한 살인사건을 내걸고 있어서 추리소설의 정수라 할 것이라 할 누가 범인인가를 찾는 데 초점이 맞춰 뭔가 복잡한 퍼즐을 풀게 되라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고 전혀 새로운 탐정 소설을 만났다. 바로 코지 미스테리라는 장르다. 추리소설의 긴장감을 늦춰주는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곁들인 새로운 스타일의 탐정소설이다. 벌써 탐정 글래디골드 4번째 이야기인 <내 남편 살인사건>(2011.6 좋은생각)은 이전의 소설과 주인공은 달라지지 않으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전작을 전혀 읽지 않는 이도 집어들어 읽기에 부담없다. 또하나 주인공들이 모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라는 사실도 한층 새롭다라는 느낌을 준다. 75세이하는 믿지 마라는 신념으로 서로를 가족이상 걱정해준다라든가 한편으로 (어르신 택배기사님을 연상케 하는) 할머니 탐정들의 이야기는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왠지 더 귀엽게 느껴진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 의욕이 넘쳐 보이기도 한다. 이번 이야기의 중심에는 주인공 글래디의 아픈 과거를 알게 해준다. 하루아침에 남편 잭을 잃고 딸과 함께 살아 묻어 두어야했던 것을 지금 사랑하는 또하나의 잭이 40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범인을 찾아간다. 글래디에게는 비밀로 해 두었기에 조심 또 조심을 한다. 하지만 뉴욕에서 만난 글래디의 가족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비밀작전을 탄로나기 일보직전이다. 한편 여전히 의뢰인들의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할머니탐정들의 화려한 활약상을 풀어나가는 모습도 재밌다. 실수연발하는 모습마저도 감동적이다. 모든 일들이 결국 가족의 사랑만이 해결책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범인을 알아내고 유일한 목격자를 만나게 되면서 남편을 죽인 살인자를 알아내지만, 그녀 역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자신과 가족의 신변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음을 알려주면서 이야기는 끝이난다. 물론 글래디와 잭은 다시 사이가 좋아지게 되고 자신의 아픈 상처를 어떻게든 보듬어 주고 치료해 주려 했던 잭의 마음에 감동하기에 이른다. 연인과의 사랑뿐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이야기가 탐정소설이라기 보다 가족영화를 읽은 느낌이다.
영화 <나인 하프 위크>의 두 주인공이 표현해 내는 여러 장면들은 지금도 충격적이다. 눈을 가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아무 음식이나 먹여주던 미키 루크와 관능적인 금발의 킴 베이싱어는 이후에 나온 영화보다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영화로 표현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 설명도 없고 이유도 없이 남자는 여자를 대하는 모든 방식도 포함해서 그저 장면 하나 하나가 끊겨서 그저 만나고 뭔가 색다른 것이 나오다가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반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작을 읽는다는 것은 시나리오를 보지 못하는 관객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한다. 영화보다도 더 세밀하게 그리고 그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선택하게 된<나인 하프 위크>(2011.7 그책)이다. 역시나 영화보다는 그녀의 시각으로 회고하는 남자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축제가 열리는 복잡한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친구와의 대화에 불쑥 끼어든 그와 첫만남이다. 이어지는 그와 나눈 사랑이야기는 다른 소설에 비해 굉장히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농밀하기에 읽는 중간 중간 혹시 옆에서 누군가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감추게 할만큼이다. 낮에는 어른으로 밤에는 아기가 되는 그녀에게 남자는 할 수 있는 환타지적인 이벤트(?) 적이면서 전혀 예측불가능한 일들을 선물한다. 어느순간 여자는 가학적인 남자의 행위에 만족을 하게 되면서 점점 그 강도는 심해진다. 매춘부 의상을 입힌다거나 남자옷으로 갈아입히고 강도행위를 하게 되기도 하면서 여자는 안돼 안돼를 외치지만 그가 하라는 대로 한다. 마치 판단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혼나면 안되니까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상태가 된다. 중간 중간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도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 매개체가 된다. 결말이 조금 허무하게 끝나버리니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려 애쓰고 만족하게 하는데 이름도 직업적 특성도 배체된 채 소설이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한 권을 후딱 읽을 만큼 몰입도 하나 만큼은 높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큰 아이가 3살 때 등에 업힌 아이와 힘겹게 차에서 내려 다른 차로 갈아타려고 하는 나에게 시댁에 가냐고 묻는 어떤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니오. 집에 가는 길이라는 말에 다소 의아한 모양이다. 결혼을 하고 지방에 직장을 가지게 된 남편을 따라 생전 처음 키워준 부모와 뚝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된 뒤 한동안 적응하기도 벅찻다. 그렇잖아도 적응하기 어려운데 첫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얼굴에 그려져 있었던가 보다. 지금 사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정이 들면 고향이야. 태어나 살았던 곳에서 거의 살았던 나 같은 이에게 낯선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이에게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된 일에 무조건 따를 수 밖에 없는 경우에 누구에게 원망아닌 원망을 하고 있던 터라 처음 보는 아주머니의 그 말한마디가 어찌나 위안이 되었던지 모른다. 예술가 21명의 도시에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의 궤적을 따라 가는 길을 보여준 <내 인생의 도시>(2011.6 푸르메)는 이름만 들어도 아 거기라고 할 만한 곳뿐아니라 그곳이 어디든 지금 사는 곳, 바로 그곳이 고향이랄 수 있는 삶과 추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영화감독 곽경택에게 부산은 영화의 배경에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숙명과도 같았으며 그 안에서만이 자신의 영화가 완성된다는 운명의 도시였다.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광장시장이의 맛있는 냄새가 느껴지는 전골목에서 생생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자라 살아 움직이는 그림을 그려낸 사석원, 굿을 보고 싶어 강릉을 제집 드나들듯 하다가 결국 터를 옮기기까지 하면서 강릉을 사랑하게 된 민속학자 황루시교수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진솔함을 엿볼 수 있다. 시인 유홍준(잠시 다른분과 착각을 했던)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시인이라기 보다 인간극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온갖 직업을 거치고 시를 쓰는 작가의 삶의 애환이 담긴 시를 찾아 읽어보고 싶게 한다. 죽어서 뼈가루로 도자기를 빚어 달라고 할만큼 말하는 화가 이원종의 제주사랑까지 느끼게 한다. 작가의 사는 곳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구석 구석을 돌아보고 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낯선 시인들의 시골생활과 시로 탄생되는 일화와 좋아하는 조경란작가와 봉천동, 은희경작가의 일산까지 시골 ,도시를 넘나들면서도 자연스럽게 작가들의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펼쳐져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까지 정겹다. 소개된 분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시인들의 시한편 한편을 읽다보니 나 같은 시에 문외한인 이도 노곤한 여름밤을 풍요롭게 한다.
현재는 가장 가까운 미래다 처음 <시간 밖으로 달리다>는 표지 그림과 제목만을 보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미래에서 온 여자이야기겠구나 하고 읽기도 전에 내마음대로 매듭지어 버렸다. 하지만 현재도 불과 10분이라는 시간 전에는 미래였구나 , "현재는 가장 가까운 미래다"라는 라디오에서 들은 문구가 새삼 시간이라는 의미가 그동안 느껴왔던 것과 전혀 다를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지구가 멸망해 먼 미래로 갔던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지구에 불시착하는 이야기는 공상과학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라 이제는 식상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1840년대에서 1996년으로 온다는 이 책의 배경을 들여다 보니 과연 미래에서 온 것 이상으로 낯설고 (물론 현재 시점에서 1996년도 과거지만) 서툴러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상상하게 만든다. 주인공 13살 제시는 1840년대에 살고 있다. 클리스턴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일종의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유리벽안에 큰 집이 있고 그안에서 직접 생활을 하는 일상을 보여주는 곳이지만 실은 영화 <투르먼쇼>의 짐캐리처럼 자신이 사는 공간이 어떤지 잘 모르고 살아왔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 갑자기 디프테리아가 유행하면서 결석하기 시작하자 어떤 위기감을 느낀 엄마의 말에 도무지 이해가 가지 못하는 말을 듣는다. 사실 지금은 1996년이고 얼른 여기 나가 닐리씨라는 이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알려야한다고 한시라도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렵게 밖으로 나오게 된 제시는 모든 게 제시에게 156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실수 투성이가 혹시라도 발각되어 탄로날까봐 제시와 한마음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닐리씨와 만나게 되지만 문틈으로 들어 본 닐리씨는 못믿을 사람인데다 자신에게 먹으라고 준 물에는 약까지 탄 사람이었다. 도망을 나와 보건국에 연락을 취해 기자회견을 하게 된 제시는 쓰러지고, 눈을 떳을 때 밝혀진 그동안 자신은 물론 클리스턴사람들을 속였던 그래서 감옥처럼 만들었던 사람들의 음모와 이기주의를 알게 된다. 스릴러와 같은 미스테리 소설보다 술술 넘어가게 가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인류의 미래가 사실은 가장 가까운 데 있고 결코 오지 올 것 같지 않은 미래가 사실 바로 눈 앞에 있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소재를 무리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청소년소설이다.
길에서 도를 믿느냐는 분들의 권유가 한참 유행처럼 번졌을 때 모험처럼 관심이 있다며 내가 먼저 고민상담하듯 유도해 한 여자분을 데리고 커피숍에 간 적이 있다. 잘 듣고 보니까 결론은 굿을 해야하는데 학생신분이라 성의껏 해주면 된다며 내 연락처를 물었는데 엉뚱한 번호를 알려주고 그 자리를 나왔다. 엉성하게 불러준 내 전화번호를 다시 물어 왔을 때 얼마나 당황했던지 모른다. 방금 얘기한 번호가 생각이 안났기 때문이다. 이사를 자주 다녀서 가는 곳마다 먼저 손을 내밀며 반갑게 인사하면서 먼저 물어오는 이들과의 첫대화는 교회다니세요? 이다. 그때마다 아니오라고 대답했을 때 상황 뒤에 올 대답을 알기에 얼른 다닌다고 말한다. 그럼 십중 팔구 어느교회냐고 꼬치꼬치 물어온다. 아.. 그때 또 난감하다. 이런 나는 어려서 세례를 받은 카톨릭 신자다. 종교에 관한한 소극적인 관계로 어디가서 자신있게 말을 못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유년시절 워낙 질문세례에 지쳐있는 내가 떠오른다. 반성해야 하는 신자다. 주위에 일명 잘 나가는 교회에 다니는 분이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한 적도 있다. 같이 다니고 싶다며 자주 집으로 초대해 부담스러 한 번 같이 가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잠깐 착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 나는 오랜 냉담을 끝으로 다시 성당에 나가고 있다. 마치 긴 미로를 거쳐 다시 제자리로 온 것 같다. 결국 돌아간 데는 나를 키워준 8할이 신앙이 아니였나(열심히 신앙생활을 한게 아님에도)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음을 알았기에 두 아이도 그런 작은 신앙이란 씨앗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성공을 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사실 타종교에 관한 무지에 가깝다. 아니 일부러 알고 싶어도 혹 내가 믿는 종교에 관한 배신행위가 아닐까 생각에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요즘처럼 종교가 한 생활에 일부가 되어버린 다종교시대에 종교로 인한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만났다.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2011.5 북성재)는 종교학이라 불리는 지극히 개인적이라 불릴 종교가 어느새 본말전도된 현재를 어떻게 볼 것이냐하는 기본문제에 대안을 제시한다. 제목 자체처럼 이제는 깨달음이라 정의내린다. 생소한 단어들 문자주의, 표층종교, 심층종교등 평소 들어보지 못했던 거라 낯설어 처음에 이해하는 데 어려웠지만 차츰 그 윤곽이 잡혀가는 것을 읽으면서 알게 된다. 각 종교에서 볼 수 있는 교리가 표층종교에 해당한다면 신비주의 즉 심층종교는 교리에서 국한하지 않은 깨달음을 통한 자신 안에서 천국을 찾는 완전한 신앙을 말한다. p179 심층종교는 종교를 신나는 종교로 되살리는 겁니다. 상벌에 관계없이 자기의 수행이 나날이 깊어져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발견하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그리고 그 여정 끝에서 자연스럽게 참나를 발견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면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까요? 마치 언제 정상에 오를까 싶은 만큼 길을 잃은 산행길에서 하행길에 있는 이로부터 이제 곧 정상이라는 말을 들었을때, 목덜미에 시원한 바람이 스치는 기분이 들게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