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독해줘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7
김하율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이 책을 고르게 된 것은 책 뒤편의 소개때문이었다.

이건 사랑일까, 우정일까? 밥도 먹을만큼 먹었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지만 여태 덜 자란 것 같은 서툰 청춘.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밥도 먹을만큼 먹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는데, 왜 이렇게 세상은 냉혹하고, 뭘 모르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폈는데, 20페이지도 지나지 않아서 90년대 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좀 전에 90년대 생에 관해 설명해놓은 책에서 보니까 우리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집단문화를 싫어하며 물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대."

"개소리네."

"개소리지."

워라벨 따위 개나 줘버리고 집단문화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물질이 제일 중요하다. 집도 절도 없이 쫒겨나보니 그렇다. 마치 우리를 외계인처럼 묘사해놓은 것은 본인들 편하자고 그러는 것 같다. 지구인들이 외계인은 이렇게 생겼을 거야. 아무렴 우리와 다르게 생기고말고 스스로 안도하는 것처럼.-16

격하게 공감되는 이 문구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보게되었다. 그러게, 워라벨따위가 어떻게 물질보다 중요하다는 말인가. 일단 목구멍에 들어가는 게 있고, 추위에서 벗어나 이 한 몸 누윌 곳이 있어야 생기는게 워라벨 아닌가. 뭣도 없는데 워라벨은 무슨. 거기에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인 정소민과 같은 공시생이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이 책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청춘'들의 성장스토리같은 느낌이었다.

10대 20대만 청춘이냐! 10대 20대만 성장하냐! 마, 30대도 성장한다! 같은 느낌이었달까... 아니면 점차 나이들이 늦어지면서 전에는 10대에 성장했어야 했던 걸 지금은 20대, 30대에 겪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나답다'라는 건 뭘까.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제일 많이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에 대한 거였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정말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은 늘 남아 있었다. 지금도 그 질문은 진행 중이다.-75

이 이야기는 외국인 상권의 한 화장품 판매지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아니, 공시생 정소민이 고시원에서 쫒겨나서 화장품가게 알바로 들어가서 겪는 고난과 성장의 스토리랄까. 그 가운데 가족간의 갈등이라던가, 오지랖 친구들이 있다던가, 그 중 오지랖 친구 중 한 명이 남자고, 비밀이 있었고, 실은 오랫동안 여주를 좋아했다는 건 조금은 뻔한 클리셰인듯하면서도 사건들과 엮여 재미를 주었다.

그런 뻔한 것도 있었지만, 보다 색다르고 현실적인 요소들도 많았다. 일단 성장물이 30대로 올라왔다는 것과 외국인 상권(명동이라고 나는 읽혔다)에서 외국인 손님들 및 같이 일하는 외국인 직원들과의 스토리라든가, 그 안에서도 경쟁을 붙인다는 것. 그리고 드러그퀸과 성적소수자들. 그리고 그들을 보는 사회적 편협함 등등. 뻔한 소재를 뻔하게 다룬 것도 있지만, 뻔하지 않은 현실의 소재를 잘 녹여서 현실감이 없으면서도 현실감이 있었다고나 할까.

유튜브를 안 보거나 구독을 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유튜브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내용이 좋으셨으면 알람설정, 구독, 좋아요까지!"이런 대사는 유튜브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을 들어봤을 것 같다.

남주는 여느 때처럼 여주를 대한다. 장난을 치고 놀리고 그러면서도 챙기는 것을 잊지않고 여전히, 다정하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구독 중이다. 이 소설은 아주 길어질 것 같다. 어쩌면 평생 연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으니까.-288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는 열린 결말이고 어떤 면에서는 꽉 막힌 닫힌 결말처럼 느껴진다. 읽는 독자가 판단하기에 따라 열린 결말일수도 있고, 닫힌 결말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거 같달까. 그 부분은 읽어보시고 각자 판단하시기 바란다.

누군가를 구독한다는 건 구독당하는 사람에는, 구독하는 사람에게는 또 어떤 의미일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보여준다는 충족감과 함께 명성과 돈이, 그리고 구독하는 사람에게는 재미와 어떠함이 남겠지. 어쩌면 이 책의 두 주인공처럼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서로를 구독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요를 누르고 알림설정을 누르고 구독을 눌렀을지도.

'구독한다'라는 단어로 인간관계의 그런 것들이 표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덮고 나서 책 제목을 참 잘지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자기표현의 세대에 너무 작은 직장에 목 메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곧 접었다. 이 서평의 처음에서도 썼지만, 목구멍에 넘어갈 것이 있고, 이 한 몸 누윌 곳이 있어야 생기는 게 여유고 힐링이고, 워라밸이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풍당 수블아씨
오정은 지음 / 디아망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이야기는 귀양다녀온 '김서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나는 이 책을 덮을 때까지, 김서율과 주인공인 해준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책을 덮은 지금 모든 이야기가 각자의 시간선을 따라 적정한 곳에서 만나 정교한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 책을 보실 분들을 위해 스포는 하지 않겠다.

이 책은 제목대로 연풍당의 수블아씨, 술의 신과 어쩌다 그녀를 깨운(어쩌다 그녀의 노예가 된)불운한(?) 해준의 이야기이다. 어쩌다 연풍당에서 월세로 살게된 해준은 갑자기 그를 덮쳐오는 온갖종류의 불운에 시달리다 그게 업신과 여러 가신들이 연풍당에 부재함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된다. 그의 자의 혹은 타의로 여러 가신들이 모이고, 어쩌다 술신의 노예가 된 해준은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의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술을 빚는 게 기꺼워지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과함께가 많이 생각났다. 우리네 작은 신들. 성주신, 터주신, 조왕신, 해주신, 업신, 삼신할미 등등 많은 가신들과 토속 신들이 나온다. 누군가는 잠들어 있었고, 누군가는 현실에 적응하여 음식점에, 미용사에, 변호사에, 부동산업자에.... 다양한 직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다른 재미가 있었다.

주인공 해준은 신과함께에 나왔던 차태현이 역을 맡았던 의인 차홍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면이 있었다. 불운한 가정사와 불쌍한 이들을 못보고, 그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그런 면들이 그랬다. 다만 신과함께가 인간이 죽으면 가는 지옥들을 보여주며 권선징악의 메세지들이 강했다면, 이 책은 보다 우리네 가신들을 소개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들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보여줬달까.

이 책에서는 여러 가해자들이 나온다. 폭행범, 살인범, 가정폭력 아버지, 아이를 버린 어머니 등등.... 사연없는 사람 없다지만, 자신들의 어떠함은 쏙 빼놓고 핑계와 변명과 온갖 것들로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가해자들. 이 책에서는 그들에 대한 '사이다'는 솔직히 별로 없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위로가 있고, 예들을 보여주며 그런 이들에게 더이상 이용당하거나 억압당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지 말고 나오라고 말한다.

서로 상관 없어서보이던 것들이 하나하나 짜맞춰져 결국 수블아씨의 지팡이에 꽃이 계속 필 때 이 소설은 끝났다. 처음엔 작가의 이름과 수블아씨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생겨 보게 된 책이지만, 잊혀져가는 것들과 잊힐 것들과 그리고 피해자인척 하는 가해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 책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다 제하고도, 스토리가 재미있고, 필력이 좋아 한큐에 쉽게 읽힌 책이었다. 생각보다 재밌었고, 생각보다 짜임새가 좋은 글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도 어느새 삼십대줄에 접어들고, 점점 "요즘애들은...."이라는 말을 쓰게 되고, 내 주위 지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간혹 듣는다. 로마시대때부터 요즘애들은... 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그리 짧은 역사는 아니다.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이 책의 제목에 끌려서도 있지만, 소개글의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파서도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요즘 애들은 밀레니엄세대라 불리는 이들을 통칭한 단어로, 1981년생부터 1996년생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현재 이십대 중반에서 40대에 막 들어간 이들까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제목은 요즘애들이지만, 나는 이 책에 다른 이름을 줄 수 있다면,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으로 명명하고, 부제로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로 하고 싶다.

이 책은 저자를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들이 어떻게 번아웃에 빠지게되었는지를 말하고, 개인의 번아웃이 단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이며, 구조로 인한 문제임을 말한다.

교회부터 민주주의까지, 과거에 사람들을 지도하고 안정을 주었던 사회 제도 대부분이 우리를 실망시키는 현실마저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와 우리 가족의 삶을 질서정연하게 유지하기가, 안정적인 재정 능력을 갖추기가, 미래를 대비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다. 까다롭다 못해 종종 서로 모순되는 기대들을 고수하도록 요청받기 때문에 한층 더 힘들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워라밸'을 잘 잡고 있다는 분위기도 함께 풍겨야 한다.....숨 가쁘게 터져 나오는 뉴스들을 시시가가 알고 의견을 표해야 하지만, 뉴스에서 다루는 현실이 앞서 말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라도 저해하게끔 놔두어선 안 된다. 우리는 사회적 지원이나 안정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 일을 전부 해내려고 아등바등한다.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는 번아웃 세대가 된다.-26-7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누군가의 번아웃을 치료하지는 못했다. 하물며 나 자신의 번아웃조차도 그렇다. 그러나 명확해진 사실 하나가 있다. 번아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번아웃은 사회적 문제다. -34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을, 우리의 번아웃에 기여한 체제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어휘와 틀을 창조하는 것이다. 대단한 성과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꼭 필요한 시작이자, 인정이자, 선언이다.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34

이 책은 먼저 우리의 앞선 세대인 베이비부터세대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부모이자, 교사이자, 코치인 그들 말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라고 가르쳤지만, 이상이 현실에 다다르지 못한 현실에 힘들어라는 밀레니얼에게 징징대지말라고 하는.(물론 작가님 표현이다.) 그들에게도 똑같이 여러 압박들이 있었고, 경멸을 받았고, 분노했던 세대였으나 작가는 그들의 공감능력 없음을 이야기한다. 맨발로 일어났던 세대와 잘 일궈진 밭에서 작물을 키워내고 성과를 내야 하는 세대. 나는 솔직히 어느 게 더 힘든지 모르겠지만, 둘다 힘들다는 건 안다.

부머세대로 시작한 이야기는 양육방식, 자라면서의 사회의 이러한 저러한 면으로 왜 밀레니얼들이 번아웃에 빠지는 지를 이야기한다. 나도 밀레니얼 세대의 일원으로 읽으면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가장 공감이 되었던 것은 8장이었는데, 쉬면 죄스럽고 일하면 비참하고라는 주제로 쓰여진 장이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고, 취미가 어느새 돈 벌이가 된. 쉬는 게, 어느새 자기계발의 시간이 되어버린 세대.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어느새 번아웃에 빠지진 않았는지 말이다. 쉬는 시간에 쉬는 게 죄스럽지는 않았는지, 뭔가 하지 않고 쉰다는 게 남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 같아 억지로라도 뭘 하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밀레니엄 번아웃의 마지막은 육아의 이야기로 끝난다. 출산과 육아. 많은 전문가들이 중요하다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라고 하지만, 막상 엄두가 나지 않는 그것말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주위에 결혼 안 한 친구가 (나를 포함해서) 손에 꼽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둔 친구부터 아직 돌도 안 지난 갓난쟁이 엄마까지, 다양한 육아의 스펙트럼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대단하다'였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하는 친구도 있고, 육아만 하는 친구도 있지만, 둘 다 대단하다. 원래도 엄마는 대단했지만, 요즘의 엄마들은 만능이다. 인스타에서 보는 그런 모습들은 또 서로를 비교하면서 더 큰 번아웃의 길로 밀레니얼들을 이끈다.

실제 데이트 숫자가 줄어든 이유는 누군가의 주장처럼 사람들이 온라인 대화를 해석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실제 데이트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온종일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긴 일과를 보내고 나면 반려동물과 개인적으로 교감하는 것 외에 다른 누군가와 교류할 에너지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섹스를 덜 하는 건 우리가 섹스를 덜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피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를 늦게 낳거나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건 우리가 아기보다 커리어를 훨씬 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 사회에서 우리가 육아와 일을 둘 다 해낼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 확인하려 악전고투 한다.-375-6

어쩌면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도 그럴지 모른다. 당신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난 변화가 어떤 모습이든, 깨달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 이 말은 대단한 해방감을 준다. 세상은 원래 이렇다고 배웠지만, 사실은 이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 우리가 지금 현실에 순응하고 산다고 해서 그게 옳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이 진실이며, 사람들이 그 진실을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그 진실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일에서 성공하는 것과 개인으로서 잘 사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몸이 이제 쉬어야 한다고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알려줄 때, 몸이 시키는 대로 쉬면서 좋아지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 육아는 경쟁이어선 안 된다. 여가는 이렇게 부족하지 않아야 한다. 가사노동은 이만큼이나 불평등해선 안 된다. 그 근처에라도 가선 안 된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이렇게 걱정하고, 겁먹고, 불안해하지 않아야 한다.-380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것이다. 우리는 힘을 합하여 지금 이 상태에 저항할 수 있다. 우리는 폭넓은 사회적 실패에 대해 스스로를 탓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다.-383

작가는 번아웃이 탈진과 관련이 있긴하지만 실질적으로 다른 범주에 속하며, 탈진은 더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는 것이지만, 번아웃은 며칠 동안, 몇 주 동안, 또는 몇 년 동안 더 나아가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걸 의미한다고 썼다. 또한 번아웃이 단순한 일시적인 병증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상태라고 말한다.

작가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한 자여. 너의 그 번아웃은 네가 못나거나 모자라거나 모나서가 아니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이고 구조적 문제이니, 너를 탓함에서 벗어나 너와 같은 실패를 겪는 너의 세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투표해라! 인 것 같다.



머릿말은 심지어 잿더미에 불을 지르시오이다. 다 타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불을 질러라. 잿더미도 탈 수 있다. 오히려 재이기 때문에 잃을 게 별로 없기때문에 태울 수 있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요즘애들, 요즘 세대의 이야기만인 줄 알았다. 요즘에들이라는 제목이 주는 부정적 뉘앙스로 책을 열었다. 90년대생이 온다 같은 그런 이야기인가 싶었다. 그러나 요즘애들이건 아니건, 밀레니얼이건, 부머건 상관없이, 이 책은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다 타버려서 번아웃이 온 사람들이건, 번아웃으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건, 번아웃에 공감을 못하는 사람들이건 말이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고, 우리 세대에 대해, 시대에 대해,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90년대 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님이 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놀라운 책이었다. 책이 찢어질 정도로 밑줄을 그으면서 다시 볼 생각이다."라고 평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지금 책을 덮고 서평을 쓰고 있지만, 다시 한 번, 아니 여러번 봐야겠다. 책이 찢어질 정도로 볼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인들과 함께 다시 읽으며 이야기해볼 만한 내용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중록 외전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중록은 내 첫 중국로판이었다. 첫 대면은 카카오페이지에서였다. 처음엔 중국 소설인지도 모르고, 화려한 비녀를 꽂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의 표지에 기다무도 아닌 소설을 지르기 시작했다. 물론 평이 아주 좋다는 것과 댓글들이 다들 칭찬 일색인 것, 그리고 무료로 보게 해주는 초반의 편들에 힘 입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훌륭히 카카오페이지의 상술에 넘어갔으며 지금 외전을 보고 있다. 카카오페이지에는 4권 분량의 내용밖에 나와있지 않아 아쉬웠는데... 외전이라니! 외전이라니니니니니!!!! 잠중록 팬들이 지를 책이 여기 있었다..!!!

본편에서 황재하와 이서백이 결혼 할 것임을 말하고 장안은 평안하리라고 끝나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제발 결혼하고의 이야기와 그 뒤 이야기를 달라고 댓글로 애원도 많이 했다. 작가님이 중국분이라 그 반응들이 얼마나 번역되어 작가님께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외전이 나왔다. 그것도 황재하의 추리력과 이서백의 냉정하지만 달달한 모습하며, 결혼으로 가는 우여곡절과 결혼 후의 이야기까지!!!!

스포를 하고 싶어 미치겠지만, 이 책을 기다리는 많은 잠중록 팬들을 위하여, 스포는 최소한으로 하려고 한다. 먼저 이서백과 황재하의 결혼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황재하의 누명 전 정혼자이자 서브남주인 우리 왕온이 위기에 처한다. 살인 누명을 쓰고 실종된 왕온이를 구하기 위해 이서백은 마음 넓은 남주답게 국혼까지 미뤄가면서 여주가 서브남주를 구할 수 있게 해준다....

"어쨌든 나도 네가 마음에 걱정을 안은 채로 혼례를 올리게 하고 싶지는 않구나. 우리의 큰 경사날에 어찌 네가 다른 남자의 생사를 걱정하게 둘 수 있겠어."

"다녀오거라. 두 달의 시간을 주마. 두 달 안에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내 그대에게 아주 실망할 것이야, 기왕비 전하."-32

이서백이 말하는 기왕비 전하라니...ㅠㅠ 중드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볼까말까 너무 고민이 된다. 실물로 듣고 싶은데, 소설보다 재미가 없거나 내 상상과 너무 딴판일까 두렵다고나 할까. 어쨌든 황재하는 오랜만에 환관 '양숭고'로 문제 해결을 위해 최순잠을 조사단 수장으로, 주자진과 약 스무명의 조사단을 꾸려 함께 서쪽 돈황으로 떠난다.

---------------------------여기서부터 스포가 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스토리를 스포해보자면, 이서백이 누명을 쓰고 실종된 왕온을 구하고, 그의 결백을 증명하고, 사건을 해결하고, 그 뒤에 얽힌 이야기마저 풀어낸 뒤 이서백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잘 산다는 내용이다.

이 이상의 스포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리바이는 무엇인지, 왕온은 왜 실종되었는지, 왜 사신이 얽힌 건지, 두근두근하면서 봐야하기 때문에 그만하겠다.

다만 범인은 여자도 남자도 아닌(읍읍읍으븡브)

솔직히 황재하의 컴백도 두근두근했는데, 아이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설렜다. 외전 2권이 나와도 너무 환영입니다. 작가님. 외전을 보면서 잠중록1~4권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돌아오는 주말, 오랜만에 질렀던 구매내역을 돌아보며, 황재하 언니에게 가슴 뛰며, 이서백에게 설레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킬러스타그램
이갑수 지음 / 시월이일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훈인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대를 이어 사람을 죽이는 집안이 있다. #킬러스타그램은 마치 인스타하듯이 제목뿐 아니라 소챕터들도 해시태그를 달고 있다. 내용도 챕터마다 양이 대중없고, 내용도 약간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헤겔로 시작해서 헤겔로 끝난다. 책을 일으면서 자주 들어왔던 헤겔이란 사람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첫 장에서"합기도 입문"이라는 책과 함께 헤겔이 나오는데, 나는 처음에 이 헤겔이 과연 그 독일의 철학자 헤겔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헤겔이 정말 합기도 입문이라는 글을 쓴 걸까? 쨌든 헤겔과 변증법과 합기도 입문은 이 소설의 매우 큰 흐름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나는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모순'이 아닐까 싶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인을 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불가능한 걸 알지만, 불가능한 걸 알아도 계속 도전하고, 살인을 한다.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모순된 거야. 홍이 말했다. 그 말은 헤겔의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았다.-9

우리는 신라 시대 때부터 대대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한다.-13

-십계명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죽이는 거니까 괜찮아.-31

킬러는 표적이 없으면, 가상의 표적이라도 만들어서 죽여야 한다. 그래야 이 세계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176

더이상 살인이 없는 세상을 위해 살인을 한다니, 얼마나 모순적인지. 이 책은 이러한 인간사의 모순을 이 킬러집안을 통해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모순적으로, 때로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푼다.

독전문가인 할아버지와 폭발물 전문가인 할머니, 의사이사 총살전문인 누나와, 검사이자 사고전문가인 형, 자살전문가인 아빠. 근접살인전문인 삼촌, 그리고 의뢰를 받고 모든 걸 총괄하는 엄마. 그 가운데서 근육도 체력도 없는 주인공은 대를 이은 킬러집안에 막내도 킬러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님 아래서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 집안을 나온 삼촌을 대신해서 킬러가 되기위해 노력한다.

원하지 않아도 사람을 죽인다. 삼촌이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하고, 내가 하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한다. 킬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다.-26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이다. 킬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 이 집안 사람들은 많은 것을 노력했다. 더 나은 세상을 나라를 세우는 것을 돕고, 종교를 전파하고, 교육기관을 만들고, 강력한 법률을 제정하고, 은광을 채굴하고, 농사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을 죽이며,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이고도 슬픈 결론인지.

가족들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나오고, 그들의 개개인의 사연을 보면서 이야기는 외국의 반란군에도 갔다가, 아이를 납치하는 사람들에게도 갔다가, 외계인에게도 갔다가, 동네에 있는 할아버지에게도 간다. 특별해 보이는 사연들도, 근처에 쉽게 있는 사연들도, 그리고 주인공 집안의 이야기까지 흐름에 따라 이야기는 술술 잘 읽혔다.

모순으로 시작해서 모순이 가득한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는 이들을 위하여. 오늘도 파이팅이다.

P.S. 이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의 말을 대신한 소설 적성 검사가 있었다. 쉬운 것도 있었고, 어려운 것도 있었고, 이해가 아예 안 되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재미삼아 한 번 풀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그 결과까지도. 적성 검사 결과는 이 검사를 받으실 분들을 위해 비밀로 남겨 놓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