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스케치 수업 - 차근차근 따라 하면 작품이 되는
김도이 지음 / 라온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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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따라하면 작품이 되는 어반 스케치 수업" 제목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주위에서 알아주는 악필이자 그.알.못이다. 일단 펜으로 하는 거의 모든 걸 잘 못한다. 글을 예쁘게 쓰고 싶어서 산 캘리그라피 책이 몇 권이고, 색이나 그림 그리는 것에 관한 책이 몇 권인지... 이 책도 그저 그런 책 중 하나가 될까봐 좀 겁이 났으나... 차근차근 따라하면 작품이 된다는 말에 홀려 책을 펴게 되었다.

이 책은 어반스케치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도시의 경관이나 거리, 건물을 그리는 것이 어반스케치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넓은 의미로 현장에서 그리는 그림뿐이나라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도 인정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좋았던 것은 작가가 제목에서 이야기했던 '차근차근 따라하면'이라는 말을 이행했다는 것이다. 선을 그리는 것부터 나무를 그리는 법, 간단한 사물들을 그리는 법, 그리고 거창한 것이 아닌 차근차근 매일매일 일기쓰듯 그림을 그려야 한단다는 것. 읽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초반에는 열심히 하지만, 곧 언제나 그렇듯 그만둬버리고 원상복귀했다는 것이다. 딴 책은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림은 아무나, 사소한 재료로, 매일의 순간을 그릴 수 있으며, 매일 매일 그리다보면 느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 그리고 못 그리고도 있지만, 내가 많은 때 그저 단발적인 시도로 끝났다는 것도 내 그림실력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작심삼일로 끝나지 말고, 그림일기 쓰듯 매일을 그려봐야겠다. 사진으로 순간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나만의 감성이 담긴 그림으로 남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차근차근, 그리고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리라는 말이 참 좋았다.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미니 전시회는 너무나 먼 꿈이지만, 먼저 그림 일기부터 매일 쓰다보면 언젠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음. 먼저 실행을 해야 겠다. 차근차근 따라하다보면, 포기하지 않는다면, 보상을 주어진다고 작가님이 말하셨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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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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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작품 중 은근 흔한 소재가 자신의 본 신분을 속이고 다른 사람의 생을 사는 것이다. 이 소설은 신빙성이 꽤나 있었고, 서문부터 시작해서 이게 실제 있는 사건으로 소설을 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적인 면이 있었다. 일본에서 딴 작품들 읽다보면 신분세탁이 이렇게 쉬운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작품과는 궤도가 달라서 좋았다.


이 소설의 핵심 스토리는 두께에 비해서 꽤나 간단하다. 우여곡절이 많은 재혼녀 리에 씨의 현남편이 죽었는데, 연락이 닿은 남편의 친족이 영정사진을 보고 자신의 형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름도 모를 남편은,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런 스토리에 리에씨만큼이나 가족의 죽음을 겪은 리에의 아들 유토, 이름 모를 남자와의 딸인 하나, 그리고 이 스토리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인 '차별' 이런 것들이 묘하게 버무려져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차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혼녀의 자식이 겪는 차별, 재일동포가 겪는 차별, 살인자의 아들이 겪는 차별...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혹시 작가가 재일동포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적나라하게 나왔다. 직업을 얻는데서 오는 차별, 결혼을 하는 데서 오는 차별, 사회에서 겪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 소설에서는 간동대학살에 대한 내용도 나오고, 혐한 시위에 대한 내용도 나왔는데, 아직도 일본 내에 이런 차별이 만연하다는 건 정말 어이없는 일인 것 같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죄를 전가하는 것만큼 어이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어이없고도 슬펐다.

누구나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한 번 쯤은 해 봤을 법하다. 차별까지 당했다면... 내가 만약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소설은 두 번, 세 번 읽었을 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것 같다. 전 남편의 정체도 정말 궁금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 남편의 정체보다는 사회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글이 무겁지 않았고 술술 읽혔다.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문득 내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다시 한 번 정주행해도 참 좋을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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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이트 오브 유
홀리 밀러 지음, 이성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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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옳은 일이었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문제가 하나 있는데, 어릴때부터 예지몽을 꾼다는 것이다. 실제인 듯 너무나 생생한 꿈에 놀라 잠에서 깨곤 한다. 정확히 몇 월 며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런 꿈을 거의 매주 한 번씩 꾼다. 좋은 꿈도 있고, 나쁜 꿈도 있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꿈도 있다. 사고, 병, 고통 같은 불행한 사건을 암시하는 꿈을 꾸었을 때가 가장 두렵다. 그래서 나는 늘 초조해하고 바싹 김장해 있다. 누군가 멋지게 짜놓은 계획에 뛰어들어서 운명의 방향을 돌려놓아야 할지도 모르니까.-14

남자주인공인 조엘은 ​7살 때 처음으로 사랑하는 친구가 개에게 물리는 꿈을 꾼 이후로 계속 주기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래를 본다. 보통은 일상적인 것들이 많지만, 가끔 사고나 죽음을 보기도 한다. 조엘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는데, 엄마의 죽음이다. 사고 같은 것은 안 일어나게 막을 수 있지만, 암과 같은 질병은 미래를 알아도 바꾸기 쉽지 않다. 조엘은 엄마의 죽음을 알았지만 비밀을 알고 있는 엄마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고, 그 사실을 안 엄마의 눈빛은 그에게 그대로 트라우마로 남는다.

여주인공인 캘리에게도 죽음의 트라우마가 있다. 절친한 친구 그레이스가 죽고 그의 가게에서 일하고 그녀의 개를 키우면서 본인이 죽었을 때 주위에서 뭐라할지 걱정하며 불안증이 온다.

이 소설을 간략히 말하자면, 이 상처받은 두 사람이 어떻게 회복하고 사랑하느냐이다. 상처를 받을대로 받아서 더이상 상처입기 싫어서 마음을 닫아버린 이들이 서로 반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다듬고 오해도 살짝 하긴하지만 곧 풀고, 결국 사랑에 이르는...

이 책의 소개글에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애절함,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순애보, <미 비포 유>의 발랄함을 모두 지닌 완벽한 로맨스라고 써 있었는데, 어느 정도 동감했다. 판타지적인 요소와 현실적인 요소들이 잘 버무러져 가슴아프고도 사랑스러운 그런 로맨스인 것 같다.

아직 가제본인데 얼른 정식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정식본도, 영화도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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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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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같은 소설이 나타났다. 처음엔 이 책이 영화화 됐다는 소리에 책을 펴보게 되었다. 영화화된 소설은 대부분 원작이 훌륭하기에 기대를 가지고 소설을 읽었다.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소설의 묘사나 스토리 흐름이 영화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 소설을 읽고 있는데 마치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소설은 책 제목처럼 '우연 제작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연은 정말 우연일까. 연인을 맺어주는 우연, 천직을 얻게 하는 우연....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우연들이 진짜 우연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우연은 많은 우연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우연제작자들이 하는 일은 작은 날갯짓을 일으키는 것. 작가가 나비효과를 거대한 상상력으로 펼쳐낸 세계다. 작은 우연들을 일으켜 인연을 맺게하고, 연인으로 발전시키고, 직업을 바꾸며, 인생이 바뀐다. 이 우연제작자들이 만든 우연은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또 실패하기도 한다. 우연에 기한이 있다니... 신선한 설정이었다.

이 소설에는 세 명의 우연제작자들이 나온다. 가이와 에밀리와 에릭. 셋은 삼각관계인듯 친구인듯 삼각관계다. 이 셋은 우연제작자 수련 과정에서 만나게 된다. 가이는 전생의 여자를 생각하고, 에밀리는 그런 가이를 좋아하고, 에릭은 그런 에밀리를 안쓰럽게 여기고. 우연제작자들도 삼각관계는 피해갈 수 없나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여기가 시작점이야." -1, 407

"우연제작자에게도 우연 제작자가 있나요?" -261

이 두 문장이었다. 시간의 선을 보고 알맞은 지점을 찾아 짚고, 그냥 시작점이라 결정하는 것이라는 것. 이것이 우연을 제작하기 전에 하는 아주 간단한 연습이라고 우연학 개론은 말하고 있다. 책의 초반과 마지막에 같은 발췌가 있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나는 이 두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두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짚고 시작점을 결정하는 것. 그리고 우연 제작자들에게도 우연 제작자가 있을까하는 이 두 내용이 소설 전반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두 문장에 대한 것은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하여 호기심으로 남겨놓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재밌는 책이었다. 설정도, 문체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로맨스를 중간중간 숨겨 놓고, 현대사회에 빼먹을 수 없는 취업에 관한 문제라는가 여러 장치들을 넣어 꽤 두꺼운 책이 금방 읽혔다. 이 소설이 어떤 그림으로 영화화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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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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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처음엔 호기심이 강했다. 납치를 당했던 소녀와 납치범이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난다? 납치범과 납치피해자라니... 어감만으로도 그리 긍정적인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상식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나는 취향이 아닌가 보네. 아무 일 없이 며칠을 보낸 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가 란셀보다 카터블을 좋아하듯 로리콘에게도 취향이 있으리라. 그렇게 납득하고부터는 독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책만 읽을 거라면 카페로 가주면 좋겠다. 아이와 달리 어른은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로 갈 수 있다. 나는 아이라서 네 자리는 여기다, 라고 정해진 곳밖에 갈 수가 없다. 아아, 어쩌면 저 남자도 갈 데가 없나.-28

나는 엄마에게 있어 살아남는 데 필요한 밥도 아니었고, 슬픔을 덜어줄 과자도 아니었다. 엄마가 그토록 싫어하는 '무거운 짐'이었다. 엄마는 무거운 짐을 듣지 않았다. 엄마는 참지 않는 사람이었다. -65


자유로운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란 소녀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엄마에게 방치되고 결국 버려져 이모네에서 살게 되지만, 그 일반적인 삶이 평탄치 않다. 어려서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 모든 것이 다 힘들었던 청년. 소녀는 그를 로리콘이라 생각했고, 청년을 소녀를 보며 일탈을 배웠다. 그 둘의 일탈은 소녀를 피해자로 청년을 범죄자로 만들었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나게 된다.


책 소개를 읽고,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범죄를 미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범죄에 뒷이야기가 있는 경우도 분명 있겠구나. 나에게는 그저 뉴스 한 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짐이고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겠구나 반성하게되었다.


읽으면서 뻔한 이야기로 전개될 거라 생각했지만 반전은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반전은 아니고, 결말은 예상한 대로 흘러갔지만.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배운 것 같다. 이 책은 언뜻 로리콘과 스톡홀롬증후군을 다루고, 범죄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이 실은 그렇지 않듯, 책을 덮은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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