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독해줘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7
김하율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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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이 책을 고르게 된 것은 책 뒤편의 소개때문이었다.

이건 사랑일까, 우정일까? 밥도 먹을만큼 먹었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지만 여태 덜 자란 것 같은 서툰 청춘.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밥도 먹을만큼 먹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는데, 왜 이렇게 세상은 냉혹하고, 뭘 모르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책을 폈는데, 20페이지도 지나지 않아서 90년대 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좀 전에 90년대 생에 관해 설명해놓은 책에서 보니까 우리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집단문화를 싫어하며 물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대."

"개소리네."

"개소리지."

워라벨 따위 개나 줘버리고 집단문화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물질이 제일 중요하다. 집도 절도 없이 쫒겨나보니 그렇다. 마치 우리를 외계인처럼 묘사해놓은 것은 본인들 편하자고 그러는 것 같다. 지구인들이 외계인은 이렇게 생겼을 거야. 아무렴 우리와 다르게 생기고말고 스스로 안도하는 것처럼.-16

격하게 공감되는 이 문구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보게되었다. 그러게, 워라벨따위가 어떻게 물질보다 중요하다는 말인가. 일단 목구멍에 들어가는 게 있고, 추위에서 벗어나 이 한 몸 누윌 곳이 있어야 생기는게 워라벨 아닌가. 뭣도 없는데 워라벨은 무슨. 거기에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인 정소민과 같은 공시생이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이 책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청춘'들의 성장스토리같은 느낌이었다.

10대 20대만 청춘이냐! 10대 20대만 성장하냐! 마, 30대도 성장한다! 같은 느낌이었달까... 아니면 점차 나이들이 늦어지면서 전에는 10대에 성장했어야 했던 걸 지금은 20대, 30대에 겪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나답다'라는 건 뭘까.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제일 많이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에 대한 거였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정말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은 늘 남아 있었다. 지금도 그 질문은 진행 중이다.-75

이 이야기는 외국인 상권의 한 화장품 판매지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아니, 공시생 정소민이 고시원에서 쫒겨나서 화장품가게 알바로 들어가서 겪는 고난과 성장의 스토리랄까. 그 가운데 가족간의 갈등이라던가, 오지랖 친구들이 있다던가, 그 중 오지랖 친구 중 한 명이 남자고, 비밀이 있었고, 실은 오랫동안 여주를 좋아했다는 건 조금은 뻔한 클리셰인듯하면서도 사건들과 엮여 재미를 주었다.

그런 뻔한 것도 있었지만, 보다 색다르고 현실적인 요소들도 많았다. 일단 성장물이 30대로 올라왔다는 것과 외국인 상권(명동이라고 나는 읽혔다)에서 외국인 손님들 및 같이 일하는 외국인 직원들과의 스토리라든가, 그 안에서도 경쟁을 붙인다는 것. 그리고 드러그퀸과 성적소수자들. 그리고 그들을 보는 사회적 편협함 등등. 뻔한 소재를 뻔하게 다룬 것도 있지만, 뻔하지 않은 현실의 소재를 잘 녹여서 현실감이 없으면서도 현실감이 있었다고나 할까.

유튜브를 안 보거나 구독을 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유튜브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내용이 좋으셨으면 알람설정, 구독, 좋아요까지!"이런 대사는 유튜브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을 들어봤을 것 같다.

남주는 여느 때처럼 여주를 대한다. 장난을 치고 놀리고 그러면서도 챙기는 것을 잊지않고 여전히, 다정하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구독 중이다. 이 소설은 아주 길어질 것 같다. 어쩌면 평생 연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으니까.-288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는 열린 결말이고 어떤 면에서는 꽉 막힌 닫힌 결말처럼 느껴진다. 읽는 독자가 판단하기에 따라 열린 결말일수도 있고, 닫힌 결말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거 같달까. 그 부분은 읽어보시고 각자 판단하시기 바란다.

누군가를 구독한다는 건 구독당하는 사람에는, 구독하는 사람에게는 또 어떤 의미일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보여준다는 충족감과 함께 명성과 돈이, 그리고 구독하는 사람에게는 재미와 어떠함이 남겠지. 어쩌면 이 책의 두 주인공처럼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서로를 구독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요를 누르고 알림설정을 누르고 구독을 눌렀을지도.

'구독한다'라는 단어로 인간관계의 그런 것들이 표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덮고 나서 책 제목을 참 잘지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자기표현의 세대에 너무 작은 직장에 목 메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곧 접었다. 이 서평의 처음에서도 썼지만, 목구멍에 넘어갈 것이 있고, 이 한 몸 누윌 곳이 있어야 생기는 게 여유고 힐링이고, 워라밸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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