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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5월
평점 :
제법 가까워졌을 무렵에 그가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편지를 받고 싶다고 말했어요.
돈으로 살 수 있는 선물은 많지만 마음을 담은 선물은 드물잖아요. 편지는, 쓰기 전에 상대방을 떠올려야 하고 자신의 마음을 이리저리 들여다봐야 겨우 몇 줄을 적어낼 수 있기 때문에 쓰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은 그 소중한 편지를 너무 오랫동안 잊은 채 지내왔다는 걸, 편지 가게 '글월' 덕분에 알게 됐어요.
《편지 가게 글월》은 백승연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은 편지 가게 '글월'에서 일하게 된 효영이 다양한 사람들과 편지들을 만나면서 상처받았던 마음을 조금씩 치유하며 성장해가는 이야기예요.
우선 편지 가게 '글월'을 소개하자면 편지지를 판매하면서 손님들에게 매우 독특한 펜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나 모르는 사람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싶을 때 펜팔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데, 가게 안에 있는 원목 책상과 의자에 앉아 글월에서 마련한 편지지에 자신만의 문장을 쓰면 돼요. 편지봉투에 자기를 표현하는 형용사가 나열되어 있어서, 해당되는 항목에 동그라미를 치고 네모난 스티커 위에 자기만의 표식을 그려 우표처럼 붙이는 거예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편지, 다만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로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답장을 주고 받을 수 있고, 글월은 편지를 전달하는 집배원이자 우체국 역할을 하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가족의 전 재산을 사기 당한 언니 효민 때문에 쑥대밭이 된 집을 수습하느라 대학 졸업 영화 촬영을 포기하게 된 효영은 막막하기만 한데, 사라진 언니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효영 앞으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언니의 편지를 읽고 싶지 않은 효영은 편지를 피해 서울로 도망쳤어요. 스물여덟 나이에 가출한 효영은 편지 가게 '글월'의 점원이 되어 근처에 자취방을 구해 살고 있어요. 마음의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는 효영이지만 글월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펜팔 서비스를 권하면서 효영의 마음에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 받는 한 통의 편지가 이토록 깊은 감동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어요. 고인 물은 썩듯이, 마음도 그 안에 진심들을 표현하지 못하면 곪아서 아프게 되나봐요. 근데 펜팔, 편지를 통해 닫힌 마음이 열리면서 아픈 상처가 나아지고 있어요. 마지막에 가장 놀랐던 점은 편지 가게 '글월'이 서울 연희동과 성수동 두 곳에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공간이라는 거예요.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글월'을 찾았던 손님들로부터 편지를 응모 받아 작가님의 선별한 일곱 통의 펜팔 편지가 소설에 등장한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어요. 소설과 현실을 오가는 마법 같은 이야기라서 간만에 설레고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