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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를 바꾼다는 것 - 트랜스젠더 모델 먼로 버그도프의 목소리
먼로 버그도프 지음, 송섬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5월
평점 :
종종 "그러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건 언제예요?"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하지만 유레카의 순간, 즉각 알아차릴 수 있는 자각의 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춘기가 되자 내 몸이 내게 맞지 않는다고 느꼈고, 내가 살면서 행한 모든 변화가 맹목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일어났다.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깨닫는 결정적 순간을 겪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아주 오랫동안 하나씩 떠오른 단서들이 전부 합쳐져서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식이다. 나는 그저 내게 가깝고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방향을 향해 중력처럼 이끌렸을 뿐이다. (95p)
트랜스젠더라는 단어 대신에 '나'를 넣어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태어나서 언제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나'라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을까요. 그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존재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데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건 그 자체로 끔찍한 폭력이에요.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어요. 저 역시 과거에는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을 몰랐기 때문에 처음엔 충격적이었지만 조금씩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변화된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법제도는 여전히 더디게 변화하고 있어요. 트랜지션, 다른 상태나 조건으로의 이행이나 전환이라는 의미인데 성소수자와 연관되어 사용될 때에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는 성별로 살아가기 위해 지정성별로 젠더화된 기존의 외모, 신체 특징, 성역할 등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뜻한다고 하네요.
《젠더를 바꾼다는 것》은 먼로 버그도프의 책이에요. 저자는 흑인 여성 트랜스젠더 모델이자 인권 운동가이며, 2022년 영국 코스모폴리탄 50주년의 커버를 장식했는데, 커버에는 활짝 웃는 먼로의 사진과 함께 '먼로 버그도프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보여준다'는 글이 적혀 있어요.
이 책에서는 먼로의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 대학 시절 이후 사회생활까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을 만날 수 있어요. 주변에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부모조차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먼로는 외로웠고 스스로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갔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힘들게 버텨내야 했어요. 젠더 디스포리아는 자신의 진정한 젠더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신체에 대한 불쾌감이라면, 보디 디스모피아는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자신의 신체가 '결함이 있다'거나 '추하다'고 인식하는 증상이며, 두 가지는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젠더 정체성과 신체적 특성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연결되어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는 경우가 흔한데, 먼로가 그랬던 것 같아요.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것이 기적이 아닐까 싶어요. 먼로가 스스로를 트랜스젠더로 정체성을 확인했을 때, "수치심 없이, 모두가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내 감정을 온몸에 두르고 다니기라도 하는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100p)라고 표현한 부분이 뭉클했어요. 그냥 '나'라는 존재로 산다는 것이 트랜스젠더에겐 이토록 힘겨운 도전이라니, 나였다면 너무 억울해서 못 견뎌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먼로가 한 발 한 발, 변화하며 성장해온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네요. "분명한 게 있다면 그건 모든 건 변한다는 것이다. 영영 변치 않는 사람은 없다. 어떤 방식으로건, 우리는 모두 트랜지션한다." (247p)라는 먼로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바뀌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