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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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를 막 기르고 있는 대학 신입생의 모습으로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이름을 안 것은 신입생 환영회 자리였던 것 같다.

머리가 짧아 얼굴이 네모로 보였다.

무언가가 안에 꽉꽉 차서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모습······.

호기심에 빛나는 눈이 눈부셨다." (5p)


첫 장에 적힌 이 글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첫만남이 눈부신 여름 햇살 같아서 미소를 지었어요.

제 기억에는 연로한 모습만 남아 있어서 푸릇한 청춘 시절이 존재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번뜩, 청춘 드라마 같은 한 장면이 그려졌고, 슬그머니 그러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기대했는데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어찌나 솔직담백한지...

《만남》은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저자인 강인숙님은 이어령 선생과 가장 가까이에서 산 사람으로서 그에 대한 증언을 남겨야 할 것 같은 채무감으로 남편과의 70년 역사를 정리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하네요. 그래서 남편과 자신에 대해서 되도록 객관적이 되려고 노력했다는데, 이러한 면모가 보통의 부부와는 다르게 느껴졌어요. 특히 남편이라는 호칭 대신 이어령 선생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배우자를 향한 존중과 존경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어령 선생님의 책들이 머릿속 창조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면 이 책은 이어령 선생님의 가슴속에 새겨진 희로애락을 아내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어령 선생님의 모습뿐 아니라 가족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밀한 부분들,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는 기록이 될 것 같아요. 타인이던 두 사람이 만나 한가정을 이루어 평생을 살아온 이야기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만난다는 점에서 '만남'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세상 모든 것들은 만나고 헤어지며, 크고 작은 인연으로 이어져 있어요. 성격은 완전 반대되는 면이 많지만 동갑내기 동창이라 공감대가 넓어서 이색 조화를 이루는 부부였던 두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평화롭게 공존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생애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생각하며 배울 수 있었네요. 요근래 알게 된 노래가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건 바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80년에 나온 유시형과 유의형으로 구성된 형제 듀엣 '유심초'의 노래예요. 이 노래는 김광섭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3년이 지난 뒤, 그의 시 「저녁에」 를 노랫말로 하여 만들어졌다는데, 김광섭 시인과 각별한 관계였던 김환기 화백이 오보로 뜬 시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동명의 제목으로 1970년에 그린 유화라고 하네요. 수많은 인연의 고리들이 무수히 많은 점들이 되어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찬 우주와도 같은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 거예요.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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