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위로해줘
송정연 지음, 최유진 그림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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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무엇을 하나요?  이 책을 읽어보세요.

<소녀를 위로해줘>는 송정연 라디오작가님의 에세이집이에요.

어느 밤늦은 시각, 라디오를 듣다가 어떤 멘트에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다면 그러한 감성이 바로 당신 내면에 살고 있는 소녀라는 것.

'왠지 너한테는 솔직해도 될 것 같아서~'라고 속삭이는 느낌이랄까... 특별히 라디오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은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어요.

무엇보다도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영화 이야기가 곁들여져서 뭔가에 묶여 있던 생각들이 좀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혼자만의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는 효과랄까. 영화는 인생을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기 때문에 매력적이에요. 우리는 대부분 현실에서 자기 중심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서, 그게 전부라고 착각하곤 해요. 현실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늘 염두해야 할 건 '내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니야'라는 거예요. 재미있는 건 영화가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똑같은 영화를 보고도 전혀 다른 감상평이 나오듯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나와 다른 느낌과 생각을 그 어떤 편견 없이 바라보는 태도인 것 같아요. 위로와 공감은 열린 마음끼리 오고가는 것이니까요.


"내 인생에 한 방은 언제일까"라는 주제로 영화 <해리포터>가 등장해서 무척 신선했어요.

부모를 잃고 이모네 집 계단 밑 벽장에 살던 해리가 놀라운 마법사였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마에 남겨진 보기 싫은 흉터가 해리의 숨은 능력을 확인하는 증표였다는 것도 반전이죠. 그야말로 해리는 타고날 때부터 큰 한 방을 가진 아이였고, 그 사실을 본인도 알게 되어 기쁘지만 행복하지는 않아요. 로또처럼 한순간에 찾아온 부와 명예를 갖게 된 해리가 그 모든 걸 온전히 행복하게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매일 소망의 거울 앞을 서성이는 해리에게 이렇게 말해주죠.


"소망의 거울이 우리 모두에게 무얼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소망의 거울을 보통 거울처럼 사용할 수 있단다.

그것을 들여다보면 정확히 자신의 현재 모습이 보이니까 말이다.

이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소망, 바로 그것을 보여준단다.

...(중략)...

꿈에 사로잡혀 살다가 현실을 잃어버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47p)


신기하죠?  마법 세계를 다룬 이야기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듣게 되다니.

우리는 행복한 순간을 마법 같다고 표현하지만, 마법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어요. 만약 마법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해리포터>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볼드모트였겠죠. 하지만 볼드모트는 해리를 괴롭히는 대상일 뿐이에요. 어쩌면 매순간 우리는 해리처럼 볼드모트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요.

현실의 볼드모트는 남과 비교하는 마음일 수도, 혼자뿐이라는 외로움일 수도, 타인의 비난이나 욕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삶 그 자체일 수도 있지요.그럴 때 잊지 말아야 할 건 '산다는 건 누구나 힘들다'라는 사실이에요. 반대로 볼드모트 입장에서 보면 해리 때문에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겠어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교훈이랄까. 


요즘처럼 빛의 속도로 빠름빠름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빨라진 건 소통의 도구뿐인 것 같아요. 정작 소통해야 할 내용들은 겉만 핥은 듯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에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도 문득 가슴 한켠이 헛헛했다면 그때문일 거예요. 그럴 때 <소녀를 위로해줘>를 읽는다면 빈 가슴을 채울 수는 없어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는 있을 거예요. 상처에 바르는 연고는 아니어도 그 위를 덮어주는 반창고는 될 거예요.


"그 순간, 멈추어라.

너는 매 순간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답다."

괴테의 <파우스트> 제1부에 써 있는 말이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인 괴테가 전 생애를 바쳐 60년 동안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탐구하며 쓴 대표작 <파우스트>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만족을 못하던 파우스트가 결국 깨닫게 된 말.

"너는 매 순간 아름답다!"

그렇다. 우리도 매 순간 아름답다.   (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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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냥반 이토리 - 개정판
마르스 지음 / 라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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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식 웃음이 나요.

귀한냥반 이토리와 그의 집사 마르스.

만약 냥이들이 말할 수 있다면 이러지 않을까라는 상상들을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아요.

책 날개에 토리의 옆모습 사진이 나와 있는데 덩치가 엄청나서 놀랐어요.

토리를 어깨에 걸쳐 든 사람이 마르스님이라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12년째 토리의 집사로서 수시로 안아줬다면 팔 근육은 절로 생겼을 듯.

요즘 냥이 집사들의 모습을 보면 육아 못지 않은 지극정성이라서 감탄하고 있어요.

마르스님이 수컷 냥이 토리의 집사로 살아온 지 12년이 되었다고 해요. 네 살 암컷 모리는 노숙묘였는데 얼렁뚱땅 함께 살게 되었대요.

일단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어요.

토리와 모리 두 마리의 냥이를 모시고 살고 있는 힘없고 불쌍한 만화가.

글쎄, 하나는 맞고 다른 하나는 틀린 것 같네요.

매일 토리를 안아주고 보살피느라 힘이 쪽쪽 빠졌을 것 같은데, 마르스님의 표정은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아요.

어쩐지 집사의 삶을 운명처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잘 적응해서 행복한 것 같은데...

누군가를 사랑하면 세상이 온통 그 사람으로 보인다더니, 마르스님의 눈에는 냥이뿐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책은 귀한냥반 이토리뿐 아니라 이웃의 친구들 냥이까지 등장하는 고양이 카툰집이에요.

일상의 유쾌한 모습과 함께 명화 패러디는 압권이에요.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뭉크의 <절규>, 강희안의 <고산관수도>, 최북의 <기우귀가도>, 이중섭의 <춤>, 김홍도의 <무동>, 에드가 드가의 <공연의 끝, 무용수 인사하다> 등등 명화 속 주인공이 냥이로 바뀌는 순간, 고양이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가 된 것 같아서 멋졌어요.

<달마도> 패러디 작품인 <달마냥>과 온화한 부처님을 빼닮은 <금동미륵보살냥반가사유상>은 애묘인들을 위한 명작으로 꼽고 싶어요. 그밖에 다양한 작품들이 많아서 개인의 취향따라 명작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요. 딱 하나만 고르기 어렵다면 그냥 이 책 한 권을 잘 간직하는 걸로 ㅋㅋㅋ

진심으로 몇몇 작품들은 커다란 그림으로 그려서 벽에 걸어놓고 싶어요.

마지막 작품 <봄날>은 활짝 웃고 있는 일곱 마리의 냥이들 덕분에 행복해지네요.

"따뜻한 봄날에 다시 만자자옹~"

"~~ 그리움들이 얼마나 눈처럼 내려야 그 봄날이 올까 Friend~~ ♪♬"

깜짝 선물마냥 마지막 장을 넘기면 아기자기 귀여운 토리의 일상이 담긴 스티커 2장이 있어요. 냥이 명화 대신에 스티커로 장식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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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뼈와 살 - 영어의 기본 뼈대와 수식어인 살이 어떻게 붙고 작동하는지 배우는 책 영어의 뼈와 살
라임 지음 / 라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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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점점 짧은 동영상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빠르게 흘러가는 영상들 속에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들이 있어요.

일부러 기억하지 않아도 찰칵, 사진 찍듯 머릿속에 남는 거죠.

그만큼 영상이나 이미지는 짧은 시간 노출되어도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공부는?

<영어의 뼈와 살>은 기초 문법책이에요.

우선 이 책을 읽은 소감은 한 마디로 "세상에나~~"였어요.

제목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영어의 기본 뼈대와 수식어인 살이 어떻게 붙고 작동하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개요도(스키마 schema)로 그려져 있어요.

컴퓨터 배울 때 그리는 순서도처럼 영어 문장을 깔끔하게 도식으로 보여줘요.

영어 문장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는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인데, 우리말과 영어를 나란히 비교하면서 그 차이점을 확인해줘요.

구구절절 설명보다는 문장 개요도라는 이미지가 단순하면서 더 확실하게 인식되는 효과가 있네요.

처음 영어 문법을 배우는 사람에게 너무 구체적인 내용부터 설명하면 금세 질려 버리고 머릿속에 남는 건 그저 '어렵다'일 거예요.

그런데 이 책은 영어의 기본 골격에 집중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한 권을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물론 이 책은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할 수 있어서 최소 3번 읽는 것을 추천한다고 해요. 대신 공부하지 말고 가볍게 읽으면 돼요.

'아하, 영어 문장은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알아차리는 정도로 술술 읽어가면서 개념 요약과 개념 확인 문제를 부담 없이 풀 수 있어요.

정말이지, 이토록 간단하게 문법 설명을 했다는 점에서 놀랐어요.

사실 기존의 문법책들은 굉장히 꼼꼼하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서 많은 설명들을 해주고 있어요. 당연히 이런 문법책은 영어 공부를 위한 필수 교재예요.

중요한 건 자신의 수준에 맞는 단계별 교재를 찾아서 공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얘기해도 나와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영어의 뼈와 살>은 스스로 영어의 기초가 약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 교재인 것 같아요.

영어 단어를 아무리 많이 외워도 문법의 기본기가 없으면 제대로 문장을 만들 수가 없어요. 단어만 나열하는 것으로는 충분한 의사소통이 되질 않죠.

책의 마지막 단원은 자주 쓰이는 표현을 패턴으로 익히는 <주요 표현 & 형태 변화>가 나와 있어요.

유명한 영어 강사님이 패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설명해주신 게 떠오르네요.

<영어의 뼈와 살>은 영어의 전반적인 맥을 잡는 기초편이므로, 이 책 한 권으로 문법을 끝내겠다는 욕심은 NO ! NO !

가장 기초적인 내용들을 가볍게 혹은 즐겁게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 될 것 같아요. 산뜻하게 영문법의 기초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아요.

시작이 좋아야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 생기겠죠?   영어라는 마라톤 경기를 완주하려면 기본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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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기도
산티아고 감보아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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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있는 나를 뒤에서 잡는 느낌.

'뭐지?'라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 마주한...

멈춰 선 나는, 나를 멈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밤 기도>를 읽으면서 꼭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방콕에 도착한 '나'는 샹그릴라 빌딩의 오리엔탈 호텔 4층 방에 있습니다. 창문 밖으로 비가 억수처럼 퍼붓고 있습니다.

샹그릴라 Shangri - La 라는 이름은 '천국'을 의미한다는데, 소설 속 '나'는 전혀 다른 기분입니다.

지금 여기 '나'는 기억하기 위해서 방콕에 온 것이고, 몇 년 전에 이 도시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을 글로 쓰려고 합니다.

처음에 '나'를 방콕으로 오게 했던 사건,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내 목표입니다.

소설은 이렇듯 '나'라는 인물의 설명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당연히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나'라고 착각했습니다.


"가장 나빴던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영사님.

무엇보다 최악은 내 어린 시절이었어요.

지금 이 순간,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무엇이 최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8p)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 채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꽤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자꾸만 그의 말을 끊고, 질문을 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야 하니까.

어쩌면 이런 설정은 작가의 치밀한 계획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방콕에 다시 온 '나'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지만 철저하게 청자의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밤 기도>는 마누엘 만리케의 인생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는 '나'의 글을 통해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살짝 털어놓자면, '나'는 콜롬비아인이며, 인도에 주재하는 대사관의 영사가 되어 파견됩니다.

인도 델리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갑자기 콜롬비아 외교부의 영사과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습니다. 곧장 방콕으로 가라는 것.

긴급 용무는 방콕의 어느 호텔에서 아편 알약이 든 조그만 꾸러미를 소지한 콜롬비아인이 체포되었으므로 도움을 주라는 것.

태국의 법은 상당히 엄중해서, 이런 종류의 중범죄는 30년 형이 일반적이며 경우에 따라 검사가 사형을 구형할 수도 있어서 외교적으로 힘들고 미묘한 문제라는 것.

태국에는 콜롬비아 대사관이 없고, 일반적으로 말레이시아 대사관에서 담당하는데, 마침 그곳 영사가 공석이라는 것.

'나'는 마누엘 만리케라는 스물일곱 살 청년의 처절한 밤 기도를 들어야만 하는 인물로 정해진 것입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를 운명의 힘으로.


"정말입니다, 영사님. 영혼의 악은 육체에 달라붙어 육체를 변형시키며, 사마귀와 굳은살이나 혹을 만들거든요.

악은 눈에 보이고 냄새도 풍기지요. 나는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에 매일매일 그것들을 경험했고,

바로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학급 친구들은 그 체제, 그러니까 증오와 원한 속에서 사는 방법에 편입되었습니다.

하기야 매일 보았던 것이 바로 그건데,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 단지 공상하면서 내 마음이 그 끔찍한 감방에서 도망치게 하면 되었습니다.

영사님, 이곳보다 훨씬 더 열악한 곳이었지요.

... 그 시기에 나는 텔레비전에서 <환상특급>이라는 미니시리즈 2회분을 보았습니다.

처음 본 것은 투명인간 이야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마법 시계를 찾는 어느 젊은이의 이야기였는데,

타인의 시간은 멈출 수 있지만 자기 시간을 멈출 수는 없었고,

따라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 사이로 마음껏 다닐 수 있었습니다.

투명인간은 내가 원하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고 있어짐나,

타인들의 시간을 동결하는 시계라는 발상은 내게 한 번의 클릭으로 현실을 멈출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했습니다."  (31-32p)


타인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처음엔 어렵지만 어느 순간 푹 빠져드는 지점이 생깁니다.

마누엘 만리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지금의 끔찍한 감방만큼, 아니 그보다 더 열악했다고 말합니다.

그건 물리적인 열악함이 아니라 '영혼의 악'으로 설명합니다. 소년은 자신의 내면에서 오염시키고 싶지 않은 순수한 뭔가를 지키고자 공상을 합니다.

그때 도움을 준  TV 프로그램이 <환상특급>이었다는 것이 저한테는 스위치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낯선 콜롬비아 소년이 옆집 살던 아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랄까. 아마 이 지점이 없었다면 콜롬비아에 관한 내용들이 물 위 기름처럼 둥둥 떠다녔을 듯.


"... 사르트르가 썼던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삶을 간주했어요.

나중에 나는 『닫힌 방』을 읽었고, 그 책이 제안하는 바를 완벽하게 이해했어요.

마치 그토록 갈망했으면서 빠져 있던 한 조각이 내 세포와 정확하게 맞춰지는 것 같았지요.

그것은 사상의 강도 높은 이해, 즉 무언가가 사실이라는 확실성이었어요.

그래서 사르트르의 문구 중의 하나인 "지옥은 타인들이다"가 수년 동안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지요.

영사님, 그 시기에 내가 느꼈던 것을 느끼고 경험하지 못했다면,

결코 그토록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110-111p)


마누엘 만리케의 인생은 타인들이라는 지옥이었지만 그 지옥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오직 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하나 뿐인 누나 후아나.

그러니 후아나의 실종은 엄청난 충격과 비극일 수밖에. 사랑하는 후아나를 찾는 것이 마누엘의 인생 최대의 과제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문득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마누엘과 후아나에게 조국 콜롬비아는 왜 지옥이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묵묵히 경청하다보면 예기치 않았던 교훈을 얻게 됩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낯설고 머나먼 남아메리카 대륙의 북서쪽 콜롬비아라는 나라에서 '민주 안보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일들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과 겹쳐진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는데도 한 사람의 고백, 즉 밤 기도와 같은 인생을 보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밤 기도>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외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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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운동능력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사이먼 레일보 지음, 김지원 옮김, 이정모 감수 / 이케이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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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을 쓰는 이유는 뭘까요.

당연히 자신의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지식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겠죠.

굳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자세하게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어요.

생물학과 관련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태도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해요.

도대체 어떤 태도였길래...

"... 도마뱀이 경주트랙을 달리는 걸 추적하는 게 어떻게 직업이 될 수 있지?

딱정벌레를 서로 싸우게 만들어서는 뭘 배우겠다는 거야?

별을 관측하고, 화산을 연구하고, 아원자입자들을 서로 충돌시키는 건

일반 대중에게 순수하게 과학적 연구 분야로 여겨지지만,

벼룩이 얼마나 높이 점프할 수 있는지, 거미가 얼마나 멀리까지 뛸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것은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동물 운동능력 연구가 경망스럽게 보인다 해도

이것은 유기체 생물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과 의문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 실제로 운동능력은 대단히 중요해서 '적응'이라는 진화 연구의 초석 중 하나가 되었다."  (9-10p)


현대인들의 삶은 자연 속 동물의 세계와는 격리된 듯 느껴져요.

자연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거나 동물원을 통해 접하는 동물들조차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인간도 동물이면서, 다른 종의 동물과는 차별을 둔 채 살기 때문에 환경파괴와 같은 문제들이 생기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동물들에 대해서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관심조차 없었다는 걸 자각하게 된 거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것.

그래서 <동물의 운동능력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건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예요.

평소 관심을 갖던 분야는 아니지만 호기심이 생긴 거죠.

동물의 운동능력에 관한 연구를 들여다보니 꽤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신기했어요. 동물의 운동능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측정할 만한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 같아요. 물론 인간처럼 스톱워치와 줄자, 고속카메라와 같은 디지털 기기 이외에도 특별한 기구가 필요하는 게 다른점이죠.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은 무엇일까요?

치타! 땡!

정답은 송골매예요. 자연계에서 이 동물은 날아서 먹이를 잡는데, 먹이 위로 수백 미터 높이부터 고속으로 다이빙을 해서 최고 속력으로 공격해요.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다이빙하는 송골매의 최고속도가 389 km/h로 기록되어 있어요. 이것은 F4 토네이도의 풍속과 거의 같아요.

가장 빠르게 수영하는 동물은 새치 billfish 라고 해요. 돛새치와 황새치를 포함하는 커다란 포식어류 집단으로 최대 3미터 크기에 90킬로그램까지 자란다고 해요.

자연계에서 동물은 아니지만 몇 종의 버섯류는 25m/s (90km/h)의 속도로 포자를 뿜어낸다니 굉장하죠. 더 놀라운 건 중력의 최대 18만 배의 가속도라는 거예요. 즉 버섯의 포자들이 1초 동안 그 길이의 100만 배가 넘는 거리를 갈 수 있다는 뜻이에요.

또한 신기한 동물 중에는 동남아시아에서 드라코 Draco 속의 나무에 사는 도마뱀인 드라코 스필로노투스가 있어요. 몸통 옆으로 비막을 지지하는 몹시 기다란 갈비뼈를 갖고 있어요. 드라코의 비막은 종종 색깔이 다양하고 부채처럼 몸 옆쪽으로 접거나 펼칠 수 있는데, 펼쳤을 때에는 최대 27.4km/h의 속도로 나무에서 나무로 활동할 수 있어요.

놀랍고 독특한 동물의 목록은 상당히 길어요. 자연선택과 진화는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증거들이에요.

진화가 만들어내는 특정 생태학적 문제에 대한 기능적 해결책은 종종 비슷하지만 항상 똑같지는 않아요. 특히 운동능력은 대개 비슷하지만 그 운동능력을 어떻게 달성하느냐 같은 세부적인 부분은 다리 길이, 근육의 크기, 근육의 부착점처럼 다양한 조합을 통해 달라질 수 있어요.

진화는 궁극적인 실용주의자라서 모든 수렴적 특성이 공통적으로 가진 한 가지 특징이 최종 목적지라고 해요. 자연선택은 여러 가능성 중에서 특정 환경에 가장 잘 작동하는 특정 표현형을 고르도록 작동해요. 우리는 멘델의 연구를 통해서 표현형이 유전되도록 만드는 요소가 유전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유전자형과 환경인자는 거의 항상 상호작용해요. 이렇듯 동물 운동능력의 진화적 궤적을 살펴보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어요. 실제로 인간과 비인간의 운동능력에 관한 연구는 서로 완전히 독립적으로 연구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동물의 운동 연구는 과학의 세계에서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분야라는 것. 고로 이 책은 꽤 진지하면서 재미있는 과학책이라는 것이 결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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