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6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강한빛 외 지음 / 마카롱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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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단편소설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처럼 수상작품들을 보면 새로운 자극을 받습니다.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2019』에는 모두 5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루왁 인간>은 소재 자체가 엽기적이라서 놀랐습니다.

주인공 정차식은 파란만장 이십 대를 거쳐 생존을 위해 종합 상사에 늦깎이 입사를 했으나 새벽 야근과 종합 상사 특유의 지독한 군대 문화, 날마다 느끼는 모멸감과 만성 장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근래 본인의 실수로 회사에 큰 손실을 입힌 탓에 한껏 주눅들었는데, 오늘 회식 자리에서 사장이 가공되지 않은 커피 체리를 한가득 쏟아놓고 모조리 씹어 먹을 것을 명했습니다. 치욕적인 명령 앞에 차식은 남은 대출금과 처자식을 떠올리며 기어이 다 씹어 삼켰습니다. 씹을수록 역겨운 비린 맛에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참고 있는데, 그걸 본 사장은 껄껄대며 부하의 충성을 확인한 듯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다 슬그머니 잠든 차식은 다시 깼을 때 변기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큰일을 본 후 당연히 지독한 냄새를 예상했던 차식은 달콤한 향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커피 체리가 뱃속에서 어떻게 발효된 것인지 구운 곡물의 은은하고 달콤항 향이 차식의 배설물에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차식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 원석을 건져 올렸습니다.

다음날 차식은 고교 동창인 동석의 가게 '에스프리 커피 공방'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것을, 새로 구한 원두라고 속이고 감정을 부탁했습니다.

동석은 어디에서 구한 코피 루왁이냐면서 자신에게 독점으로 팔라고 제안했습니다. 

코피 루왁, 일명 고양이똥 커피로 불리는데,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뜻하는 코피와 긴꼬리 사향고양이를 의미하는 루왁이 결합한 이름입니다.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난 뒤 배설한 씨앗을 햇빛에 말려 볶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커피를 말합니다.

저도 커피를 좋아해서 지인에게 선물받았는데, 아무리 맛이 좋아도 비위가 약한 탓에 마시질 못했습니다. 모르고 마실 수는 있지만 알고는 도저히...

암튼 차식은 공교롭게도 사향고양이가 되어 코피 루왁을 생산하게 되었고, 그걸 구입한 동석의 커피 공방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다음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소설 내용도 놀랍지만 <루왁 인간>이 JTBC 드라마 방영 예정이라는 소식에 더욱 놀랐습니다.

차식의 삶은 노예처럼 모멸감의 연속이었는데, 그의 뱃속을 거쳐간 커피 체리는 코피 루왁으로 재탄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받았으니... 참으로 기막힌 똥 복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코의 무게>는 조선을 점령하기 위해 간파쿠(천황을 보좌하며 정무를 총괄하는 일본 최고위 관직)의 명령으로 떠난 원정군의 이야기입니다. 남원성에 도착한 원정군 중에는 종군 승려 묘겐 明元 과  나오야  直哉 가 있었습니다. 그 중 나오야는 어린 아시가루(평시에는 잡역에 종사하고 전시에는 보졸로 뛰던 일본 전국시대의 졸병)였습니다. 두 사람은 부산포 법회에서 처음 만났고, 당시 나오야는 노승의 설범에 큰 감동을 받았고, 묘겐은 어린 아시가루의 단단한 신앙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노릇입니다. 일본은 종군 승려를 전쟁에 보내어 사무라이들에게 전투의지를 불태우는 역할을 맡긴 것입니다. 지난번 법회에서 묘겐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만이 전쟁터의 유일한 진실이오."라고 말했습니다. 묘겐의 그 말이 나오야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오야는 할머니의 불심을 새긴 터라 살생을 하지 않고, 시체를 찔러대거나 죽은척 숨으면서 자신의 불심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과 맹신은 한끗 차이였으니...

당시 일본군들의 끔찍한 만행 중 죽인 조선인의 시체에서 코만 베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간파쿠의 명령으로 각 부대마다 살해해야 할 적의 수가 명시되어 있었는데, 그 수를 세기 위해 코만 잘라 담은 상자가 태산처럼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간파쿠는 코 상자를 헤아리며 코의 냄새를 맡고, 매만지며 심지어 맛보기까지 했는데, 이는 전쟁의 치열함을 느끼는 그만의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길 없는 악마의 만행.

나오야의 순수하지만 맹목적인 신앙과 승려 묘겐의 인간적 고뇌가 잘 드러난 이야기였습니다.


<쿠오바디스>, <먼지를 먹어드립니다>, <강남 파출부>까지 소재와 전개와 신선하고 독특하다는 점에서 모두 인상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그리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단편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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