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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유 어게인 in 평양 - 나는 북한 최초의 미국인 유학생입니다
트래비스 제퍼슨 지음, 최은경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5월
평점 :
북한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러갑니다.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0주년이 된 2015년 8월 15일자로 자체 표준시를 도입해 공식적으로 시간을 30분 늦게 설정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점령 이전 대한제국이 도입한 표준시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연도를 표시하는 대신,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삼아 주체 1년이라고 표시합니다.
그러므로 2019년의 북한은 주체 108년으로, 전 세계 다른 나라들보다 1911년 느린 것이며, 오후 6시 46분이라는 북한 시간은 한국보다 30분 느리고, 중국보다 30분 빠릅니다.
<시 - 유 어게인 in 평양>은 북한 최초의 미국인 유학생이 된 트래비스 제퍼슨의 책입니다.
2016년 초, 북한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에 통일투어라는 새로운 여행사에 관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호주 출신의 동아시아학 전공 대학생인 알렉 시글리의 아이디어로, 통일투어는 여름방학 동안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평양의 명문 대학 중 한 곳인 김형직사범대학에서 1개월간 집중 조선말 어학연수를 받을 외국인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자마자 지원했다는 트레비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북한으로 출발하기 몇 달 전, 버지니아대학교 학생인 오토 웜비어가 평양에서 체제 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선택은 북한 여행의 포기가 아닌, 북한 여행자라면 지켜야 할 규칙을 모두 꿰고 있을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방문한 것입니다.
평양에서 보낸 한 달 동안, 미국인이라는 이질성이 그를 관찰자 시점으로 만들었으며, 동시에 진정한 이해를 가로막는 것이 그 거리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뭔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서로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벽부터 허물어뜨려야 한다는 것.
이 책은 '우리'와 '그들'로 분리된 세계인 북한을 직접 경험한 트래비스의 기억들을 새롭게 조합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북한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겪었던 사건과 만났던 사람들, 방문했던 장소들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다만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실제 겪은 일을 각색하여 책의 등장인물들은 여러 사람을 섞어 만든 가상의 인물이며 이름도 가명을 썼습니다. 글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사건의 순서를 바꾸거나 여기저기서 나온 대화를 합쳤다고 합니다.
어찌됐든 유일하게 남한 사람에게만 허락되지 않은 그곳이기에, 이 책의 이야기는 알라딘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고 신기한 북한 이야기... 그건 마치 전설이나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도깨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같은 하늘 아래 너무나 다른 세계.
그동안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중요한 건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인 것 같습니다.
그는 외부세계에서 온 외국인과 처음으로 대화하는 북한 사람이 지금껏 믿도록 가르침 받아온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는 장면을 목격했으며, 자신 또한 북한에 오지 않았다면 결고 이해하지 못했을 사실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북한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진실.
북한 사람들과의 교류는 대부분 감시받는 상황에서 이뤄졌지만 그 와중에도 쉽게 통제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을 여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양측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상당히 체제 전복적 활동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외부 세계의 '우리'들이 북한을 대할 때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오래된 전략으로만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선 그들의 방식을 이해해야 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것이 좋든 싫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배웠습니다. 인내와 생존을.
"... 돈주들이 체제에 변화를 가져올 거란 생각은 안들어?
민이나 김 동무 같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깨어 있는 사람들이잖아.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아니까 말이야."
"이 체제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알렉상드르가 말했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이 체제를 만든 사람들이 다 죽었거든요." (29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