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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정원
닷 허치슨 지음, 김옥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나비 정원>은 섬뜩하게 아름다운 정원에서 벌어진 이야기예요.
아.름.다.운.지.옥.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저택에 유리 지붕이 덮인 아름다운 정원이 폭발했어요.
그 안에 13명의 소녀들과 남자 3명이 구출되었어요. 소녀들의 등에는 저마다 다른 나비 문신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요.
13명의 소녀들의 신원을 확인해보니 전부 행방불명된 16살에서 20살 사이의 여자아이들이에요.
FBI 특별수사 팀장 빅터 하노베리언과 특별수사관 브랜던 에디슨이 살아남은 소녀들 중 마야와의 인터뷰를 맡게 되었어요.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나니, 처음 나온 이 장면의 대화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마야는 충격에 빠진 피해자들과는 달리, 유독 침착하고 냉정했기 때문에 FBI 의 의심을 받고 있어요.
과연 마야는 진짜 범인을 도운 공범일까요.
"건진 게 있나?"
"여자애 두세 명이 최근 자료에 맞아떨어져서 부모들이 오는 중이에요.
지금까지는 모두 동부 연안이에요."
"저 여자애에 관한 건 없어?"
"저 여자애를 여기로 데려올 때, 아이들 일부가 저 애를 '마야'라고 부르더군요. 성은 없고요."
"진짜 이름인가?"
"설마요."
에디슨이 콧방귀 뀌더니, 윗도리 지퍼를 올려서 럭비팀 티셔츠를 가리려 애쓴다.
구조팀이 생존자를 찾자마자 급히 연락해, 빅터 팀원들은 휴일을 즐기다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
"본관 건물에 한 팀을 보내서 샅샅이 뒤지게 했어요. 범인 새끼가 개인적으로 보관한 게 있는지 찾아보도록."
"범인이 피해자들을 극히 개인적으로 보관했다는 건 자네도 나도 동의하겠지."
"왜 저 여자애죠? 라미레즈 말이 저렇게 심하게 다치지 않은 여자애도 여럿이라는데,
겁에 질린 사람일수록 많은 걸 털어놓을 거고요. 저 애는 고집불통 같아요."
"다른 애들이 저 애를 쳐다보더군. 이유를 알고 싶어.
하나같이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을 텐데, 저 애를 쳐다보고 대답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저 애도 범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우리가 찾아내야 하겠지." (16-17p)
...
"집이 어딘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장난치자는 게 아니라고."
에디슨이 날카롭게 끼어들자, 마야가 차갑게 바라보며 대답한다.
"네, 당연히 아니죠. 사람들은 죽고 삶은 무너지고, 그런데 아저씨는 미식축구 경기가 한창일 때 빠져나온 게 정말 못마땅해 보이니까요."
에디슨이 얼굴을 붉히며 셔츠를 숨기려고 지퍼를 올린다.
"마야는 불안한 기색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아."
빅터가 지적하자, 마야는 어깨를 으쓱하곤 붕대 감은 양손으로 물병을 조심스레 집어서 한 모금 들이켜더니, 묻는다.
"불안해야 하나요?"
"FBI에 들어오면 대부분 불안해하지."
"그 사람이랑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진 않네요."
"그 사람?"
빅터는 재빨리 다정하게 묻고, 마야는 대답한다.
"정원사."
"너를 가둔 사람...... 그 사람이 고용한 정원사랑 얘기했니?"
마야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그 사람이 정원사예요." (19-20p)
성질만 부리고 버럭대는 에디슨이 빠지고, 빅터 혼자서 마야와 인터뷰를 계속 진행하게 돼요.
마야의 입을 통해서 나비 정원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는데...
왜 마야는 침묵을 지키다가 빅터 팀장에게는 순순히 모든 질문에 답했을까요. 그건 한눈에 알아봤던 거예요. 빅터 팀장은 세 명의 딸을 둔 아빠라서, 이 끔찍한 사건에서 구출된 소녀들을 수사관이 아닌 아빠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내 딸들이 피해자가 되어 조그만 방에 갇혔더라면... 그래서 아직 혐의를 둔 마야조차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어요. 반면 에디슨은 자신의 휴일을 뺏아간 상황이 몹시 짜증난 것 같아요. 그를 탓할 순 없겠죠. 아무리 끔찍한 범죄 사건이라도 그와는 무관하니까.
마야가 들려주는 정원사의 이야기는 수많은 공포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요.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정원사는 인간이 아니라 악마였어요. 그에겐 충실한 하인이 있었고, 또 다른 악마도 곁에 있었어요. 모든 게 완벽하게 은폐된 비밀의 정원에서 납치된 소녀들이 한 명씩 죽어갔던 거예요. 단지 악마의 쾌락을 위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야가 함께 갇혀 있던 시모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부분이에요. 시모네는 도서실에서 같이 읽던 책을 읽어달라고 했어요. 마야는 시모네의 손을 맞잡은 채,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어요.
"끔찍하게 추운 날씨였어요. 눈은 가득 내리고 주변은 완전히 깜깜한 저녁이었어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저녁. 이렇게 춥고 깜깜한데, 불쌍한 여자애는 맨머리에 맨발로 거리를 걸어갔어요." (268p)
그 책은 안데르센이 쓴 「성냥팔이 소녀」였어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안데르센의 동화가 <나비 정원>의 상황을 완벽하게 설명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마야뿐 아니라 나비 정원에 갇힌 소녀들은 성냥팔이 소녀와 다를 게 없었어요. 성냥개비로 약간의 온기를 느끼며, 환상적인 꿈을 꾸었지만 현실은 죽음뿐이었어요. 후우~ 불면 사라지는 성냥개비의 불꽃처럼 사라진 소녀의 생명. 사람들은 얼어죽은 소녀가 왜 미소를 짓고 있는지, 그 소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해요. 아무도 거리를 헤매는 성냥팔이 소녀에겐 관심이 없었으니까. 아무도 추위에 떨고 있는 불쌍한 소녀에게 손 내밀지 않았어요. 아무도... 소녀의 죽음으로 이 동화는 끝이 났지만, 우리의 현실은 끝나지 않았어요.
<나비 정원>의 결말은 놀라운 반전이 있어요. 처음에 빅터 팀장이 마야를 선택했던 그 이유가 밝혀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