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이빨 소녀
케리 버넬 지음, 김래경 옮김 / 위니더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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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가장 깊은 곳에서는 말이다, 미노 네가 빛이 되어야 해."  ​(89p)

아리엘카 할머니는 미노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 말을 해주셨어요. 시커먼 바다 괴물이 나오는 악몽을 꿀 때마다 할머니가 유일하게 해준 말이었어요.

열두 살 소녀 미노는 지금 악몽 같은 현실에 처해 있어요.

미노의 집은 시페어(The Seafare) 호예요. 배에서 엄마 머시와 개 미유키와 함께 살아요. 머시의 외모는 붉은 머리카락과 창백하고 푸른 눈동자, 번쩍이는 은니 그리고 오른팔에는 초승달처럼 날렵한 은빛 갈고리가 달려 있어요. 뾰족한 갈고리 끝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어요. 딱히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어도 그 갈고리는 정말 날카로워요. 갈고리는 진짜지만 머시 의상의 일부예요. 머시는 완벽한 해적의 모습을 하고, 휴가객들이 오면 시페어호가 진짜 해적선인 것처럼 기부금을 받고 태워줘요. 미노와 머시는 그렇게 생계를 유지해요. 

어느 날 머시는 미노에게 물속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당장 숨어야 한다고 했어요. 엄마는 배에서 내릴 거고, 주위가 완전히 캄캄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곧장 배를 몰고 외할머니한테 가라고 했어요. 할머니가 계신 곳은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예요. 엄마는 미노에게 두꺼운 회색 두루마리 하나와 매일 목에 걸고 다니는 은 사진 갑을 주었어요. 그리고 "아가, 엄마가 사랑해."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잠시 뒤, 세 명의 남자가 배를 향해 다가왔고 엄마 머시를 데려갔어요. 그들은 엄마를 협박했어요. 자신들을 인어한테 데려다 달라고. 

정신을 차린 미노는 엄마가 했던 말 대로 배를 몰아서 할머니를 찾아갔어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아리엘카 할머니는 미노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바로 상어 이빨 소녀의 이야기.

엄마를 납치해 간 남자들은 와일드 딥에 가기 위해 엄마가 필요했던 거예요. 와일드 딥은 바닷속 바다, 바닷속 아주 깊은 곳에 존재해요. 그곳은 수많은 경이로운 존재의 고향이자 신비로운 마법의 세계라는 것. 인어는 진짜 존재한다고, 신화 혹은 동화로 전해져 온 인어의 이름은 메로우, 온딘, 셀키, 사이렌 등 여러 개이지만 와일드 딥에 사는 인어는 언제나 머핀이라고 부른대요. 상어 이빨 소녀가 와일드 딥으로 가는 문을 지키는 수호자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미노의 엄마 머시가 전설 속 상어 이빨 소녀였어요.

우와,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신비한 이야기예요. 

그저 바다를 좋아하는 엄마와 딸인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은 아주아주 특별한 존재였어요. 엄마 머시는 아주 오래 전 소녀일 때, 어린 형제의 목숨을 구하려다가 '고대 바다의 마법' 규칙을 어겼어요. 모든 건 그 실수로부터 시작된 거예요. 와일드 딥을 목격한 두 소년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받았어요. 한 명은 경이로움에 감격하며 비밀을 지켰고, 다른 한 명은 인어를 또 만나겠다고, 와일드 딥을 차지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거예요. 에휴, 어리석고 미숙한 인간이란...

이제 미노가 할 일은 나쁜 악당들로부터 엄마를 구출하는 거예요. 엄마가 준 회색 두루마리는 와일드 딥 지도였어요. 아리엘카 할머니와 레이캬비크에서 만난 소년 라이프의 도움으로 미노는 와일드 딥으로 가는 길을, 엄마한테 갈 방법을 찾았어요. 그러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바닷속에는 무시무시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두근두근 떨리는 모험이 펼쳐지네요. 과연 미노는 무사히 엄마를 구해낼 수 있을까요. 



나는 물의 영혼, 물의 노래

나는 별의 지느러미, 별의 뼈

나는 파도와 달빛이 꾸는 꿈이라네

내 심장은 멀리까지 헤엄쳐 왔구나


그대 어렸을 적 바다가 부르기 시작했지

그대 이름 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네

그렇다오, 그대 어렸을 적 바다의 부름이 시작됐다네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

    (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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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의상 다양하게 그리기 - 동작과 주름 표현법
라비마루 지음, 문성호 옮김, 운세츠 감수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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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나 일러스트의 캐릭터 그리기를 즐긴다면 한 번쯤 고민했을 것 같네요.

캐릭터에게 무엇을 입힐까.

이 책은 캐릭터에게 알맞은 여러 가지 의상을 그릴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교재예요.

크게 세 가지 의상 스타일이 나와 있어요. 기본 캐주얼웨어, 비즈니스 웨어, 스쿨 웨어.

원래 패션은 유행에 민감하기 마련인데, 캐릭터를 위한 패션 스타일링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가장 베이직한 의상 그리는 법을 설명하고 있어요.

우와, 신기했어요. 캐릭터 의상이라 옷의 디자인만 생각했는데 옷이 문제가 아니라 옷을 입은 캐릭터의 움직임이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단순히 보이는대로 그리는 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해요. 우선 그리려는 옷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파악해야 그리기 쉬워진대요. 구조를 안다는 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이미지와 형태를 파악하는 거예요. 옷의 주름이 생기는 구조를 알면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최소한의 주름만 그려도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어요. 

캐주얼 패션의 기본 아이템 티셔츠로 기본 형태와 주름 표현이 나와 있어요. 팔을 들거나 앞으로 숙이는 동작에 따라 곡선을 중심으로 한 주름 묘사가 달라져요. 기본 형태의 주름을 연습한 후에 단계별로 다양한 의상을 그려보면 같은 포즈라도 세부 디테일과 주름이 어떻게 다른 소재처럼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의상뿐 아니라 스니커와 비즈니스 슈즈와 같은 패션 아이템도 나와 있어서 재미있네요. 기본적인 그리기 방법은 신발의 형태를 그리는 것이지만 그 신발 내부에 발 모양까지 고려해서 티테일을 추가하는 과정은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것 같아요. 또한 다리 움직임에 따라 신발의 정면, 뒷면, 측면이 보이는 형태를 묘사하는 것이 진짜 디테일인 것 같아요. 움직임이 있는 포즈가 살아나려면 의상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다양한 각도로 파악할 수 있게 알려주네요.

그리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는 단순화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해요. 무턱대로 따라 그린다고 해서 실력이 느는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에 왜 옷의 구조를 파악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제대로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책에서 알려주는 기본 그리기를 바탕으로 부단한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구조를 파악하고, 모양을 단순화시켜 그린 다음에 주름을 그려 넣는 작업을 단계별로 차근차근 해보면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드는 의상 그리기를 완성할 수 있어요.

계속 옷에 집중하면서 그려보니 패션에 대한 흥미도 생기는 것 같아요. 책에 다양한 캐릭터 의상 그리는 방법이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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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이지혜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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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어오는 이 계절에, 문득 떠오르는 클래식 음악이 있어요.

비발디 '사계'중 겨울 2악장.

사실 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에 클래식 원곡 멜로디가 쓰였기 때문이에요.

어딘지 익숙한 멜로디에 빠져들다가 '아하, 비발디 사계!'라고 알게 된 거죠.

근래에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덕분에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제7번 곡 '트로이메라이(꿈)' 선율에 빠져들었네요.


클래식 문외한에게는 영화, 대중가요, 드라마 속 클래식 음악이 클래식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사실 클래식 음악을 싫어했던 적은 없는데, 쉽게 친해질 만한 계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가을은 뭔가 특별하게 클래식 음악이 제 마음 속에 들어왔어요.

가을을 탄다? 계절이 주는 감성과 클래식 음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느낌이었어요.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은 클래식 음악 해설가 이지혜님의 책이에요.

KBS 라디오 《김선근의 럭키세븐》에서 맡았던 '누구나의 클래식 (2018.6~ 2019.12)'에서 유쾌한 클래식 음악 해설로 청중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네요.

직접 라디오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왜 사랑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아요.

대중들에게 클래식 음악이란 참 좋은데 좋은 줄 모르는 숨은 보물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저자는 클래식 음악이 낯선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운 매력을 소개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이 책은 가을, 겨울, 봄, 여름 사계절마다 듣기 좋은 클래식 음악을 알려주는 클래식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 덕분에 아름답고 감동적인 클래식 음악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각자 끌리는 음악을 찾아 들어야 한다는 점이 살짝 아쉬웠어요. 

어찌됐든 알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는 법.

우리는 클래식 음악을 잘 몰랐을 뿐이지, 들을 귀가 없는 게 아니니까. 예전에는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지 않고 흘려들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귀기울여 들어보니 정말 좋아서, 왜 그동안 몰랐던가 싶더라고요. 음악가의 생애와 어떻게 음악이 탄생했는지를 알게 되니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들어보니 좋았어요. 책에 수록된 음악 중에서 제 감성을 자극했던 건 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였어요. 저자는 막강한 기교로 밀어붙이는 막심 벤게로프의 화려한 라이브 연주에 홀딱 반했다는데, 저는 다른 연주자의 영상을 봤어요. 마음을 휘젓는 감정의 파도가 무엇인지, 바이올린이 내는 애절한 선율이 소름이 돋았어요. 시벨리우스가 나고 자란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아픔이 많은 나라였고, 시벨리우스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가 바로 핀란드의 독립 열망이 가득하던 시기였대요. 시벨리우스는 교향시 <핀란디아>를 작곡해, 안으로는 러시아의 압제를 물리친 독립 의지와 열망을 일깨우고, 전 세계인들에게는 핀란드의 독립 의지를 보여주었대요. 그리하여 <핀란디아>는 애국심의 결정판이라 불리며, 국민찬가가 되었대요.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아련하다가 격정적으로 바뀌는 과정이 마치 새가 자유롭게 비상하듯 등장한다고 해요. 저는 들으면서 가슴을 콕콕 찔러대는 느낌을 받았어요. 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 감성이 클래식의 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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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 - 대형 서점 부럽지 않은 경주의 동네 책방 ‘어서어서’ 이야기
양상규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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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동네 책방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어요.

근래에는 전국 맛집처럼 유명한 동네 책방은 직접 찾아가야 하는 희귀 명소가 된 것 같아요.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은 제목과 동일한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 주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어린 시절에는 책방 주인이 참 부러웠는데, 그래서 책방 주인을 잠시 꿈꿨던 적이 있어요. 스쳐간 낭만으로 끝났지만.

저자는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요. 사진기사, 새마을금고 직원, 댄스 강사, 현대차 협력업체 직원 그리고 은하수 식당 주인까지.


"놀고 있네. 인생이 재밌나? 니는 인생을 재미로 사나?"  (25p)


이직할 때마다 부모님이 특히 못마땅해하셨다고. 아마 당연한 반응일 거예요. 서른 넘은 아들이 한 번뿐인 인생을 재밌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겠다며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속 터질 일이지요. 그러나 스스로 척척 제 할 일을 해내는 아들이었으니 나름 믿음을 가지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저자도 이십 대 후반까지는 안정된 직장과 서울 라이프를 꿈꿨다고 해요. 경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뭔가 틀에 갇힌 느낌이 있었나봐요. 그러다가 문득 경주의 아름다움과 경주만의 특색이 눈에 들어왔고, 앞으로 뭘 하든 경주에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뚜렷해졌대요. 

멋지네요. 누가 뭐래도 인생은 재미있게, 나만의 방식으로 놀며 살아야 제맛인 거죠.

이 책은 동네 책방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경주의 매력을 새롭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경주는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보물 같은 공간인 것 같아요. 변함없는, 변하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네요.


#어서어서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


저자의 셸프 책방 인테리어의 핵심은 경주였대요. 책과 경주를 한 공간에 담고 싶어서, 오직 경주여야만 하는 책방이고 싶었대요.

어서어서에는 포스와 바코드 스캐너가 없대요. 서점 재고를 자동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뜻이에요. 아날로그 감성을 충분히 구현하고자, 벽 한 켠에 걸린 괘종시계의 댕, 댕 하고 울리는 종소리에 삑- 하는 바코드 스캐너 소리를 넣고 싶지 않았대요. 책을 팔고 나면 공책에 일일이 적어두고, 재고 역시 같은 방법으로 관리하고 있대요. 또한 어서어서의 책갈피는 책 한권에 한 장을 손님에게 주는데, 책방에 놓아둔 스탬프를 찍을 수 있대요. 책봉투는 어서어서의 마스코트래요. 읽는 약 책봉투는 약국에서 사용하는 약 봉투를 패러디한 아이디어로, 약을 먹어 몸을 낫게 하듯이 책을 읽고 나은 생각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거래요.

주인 혼자 운영하는 작은 책방이 경주의 명소가 된 건 우연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책방을 찾는 손님 중에는 <알뜰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찾았던 책방으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방송에 나간 적은 없대요. 김영하 작가님이 경주 황리단길의 어떤 펍에서 피자와 맥주를 즐기는 장면이 방송에 나간 건데, 당연히 서점도 나왔을 거라고 넘겨짚은 거죠. 이런 얼떨결에 얻은 유명세 말고도 진짜 '어서어서' 책방이 좋아서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꽤 많다고 해요. 

올해 2월 휴가 직전에 매출이 정점을 찍었을 때만 해도, '어서어서'를 이어주는 두 번째 공간으로 '이어서'를 기획 중이었대요.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주를 찾는 여행객의 발걸음이 뚝 끊어졌고, 황리단길에서 처음 맞는 낯선 고요를 견디면서 많은 생각을 했대요. 세상은, 전문가들은 우리 모두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 저자는 코로나 시대에 자영업자로서 책방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했대요.

황리단길이 멈춘 것이 한 달 정도이고, 어서어서에 다시 손님이 북적인 것이 거의 만 두 달이 지난 다음이었는데, 그때 감정이 북받치면서 생각에 변화가 생겼대요.

지금부터는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는 구조를 갖춘 두 번째 책방을 만들어야겠다고, 그것이 중고책 판매 및 대여 전문 서점 '이어서'의 초안이었대요. 그동안 어서어서를 운영하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경주 사람들에 대한 빚이 있었대요. 오래된 경주를 그 모습 그대로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방을 열었는데, 어쩐지 경주 사람들이 아닌 여행객을 위한 서점이 되어버렸다고. 그래서 '이어서'는 경주 사람들이 집에 있는 책을 처분하고, 중고책을 사서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래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상이 뒤집힌 것 같아요.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책을 읽고나니 경주와 어서어서의 매력이 다르게 보였어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라는... 경주는 그대로인데, 달라진 나였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자기 내면에서 변하지 않는 뭔가를 끄집어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 하면 할수록 끌리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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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정원
닷 허치슨 지음, 김옥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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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비 정원>은 섬뜩하게 아름다운 정원에서 벌어진 이야기예요.

아.름.다.운.지.옥.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저택에 유리 지붕이 덮인 아름다운 정원이 폭발했어요.

그 안에 13명의 소녀들과 남자 3명이 구출되었어요. 소녀들의 등에는 저마다 다른 나비 문신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요.

13명의 소녀들의 신원을 확인해보니 전부 행방불명된 16살에서 20살 사이의 여자아이들이에요. 


FBI 특별수사 팀장 빅터 하노베리언과 특별수사관 브랜던 에디슨이 살아남은 소녀들 중 마야와의 인터뷰를 맡게 되었어요.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나니, 처음 나온 이 장면의 대화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마야는 충격에 빠진 피해자들과는 달리, 유독 침착하고 냉정했기 때문에 FBI 의 의심을 받고 있어요. 

과연 마야는 진짜 범인을 도운 공범일까요.


"건진 게 있나?"

"여자애 두세 명이 최근 자료에 맞아떨어져서 부모들이 오는 중이에요.

지금까지는 모두 동부 연안이에요."

"저 여자애에 관한 건 없어?"

"저 여자애를 여기로 데려올 때, 아이들 일부가 저 애를 '마야'라고 부르더군요. 성은 없고요."

"진짜 이름인가?"

"설마요."

에디슨이 콧방귀 뀌더니, 윗도리 지퍼를 올려서 럭비팀 티셔츠를 가리려 애쓴다. 

구조팀이 생존자를 찾자마자 급히 연락해, 빅터 팀원들은 휴일을 즐기다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

"본관 건물에 한 팀을 보내서 샅샅이 뒤지게 했어요. 범인 새끼가 개인적으로 보관한 게 있는지 찾아보도록."

"범인이 피해자들을 극히 개인적으로 보관했다는 건 자네도 나도 동의하겠지."

"왜 저 여자애죠? 라미레즈 말이 저렇게 심하게 다치지 않은 여자애도 여럿이라는데, 

겁에 질린 사람일수록 많은 걸 털어놓을 거고요. 저 애는 고집불통 같아요."

"다른 애들이 저 애를 쳐다보더군. 이유를 알고 싶어. 

하나같이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을 텐데, 저 애를 쳐다보고 대답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저 애도 범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우리가 찾아내야 하겠지."  (16-17p)

...

"집이 어딘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장난치자는 게 아니라고."

에디슨이 날카롭게 끼어들자, 마야가 차갑게 바라보며 대답한다.

"네, 당연히 아니죠. 사람들은 죽고 삶은 무너지고, 그런데 아저씨는 미식축구 경기가 한창일 때 빠져나온 게 정말 못마땅해 보이니까요."

에디슨이 얼굴을 붉히며 셔츠를 숨기려고 지퍼를 올린다.

"마야는 불안한 기색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아."

빅터가 지적하자, 마야는 어깨를 으쓱하곤 붕대 감은 양손으로 물병을 조심스레 집어서 한 모금 들이켜더니, 묻는다.

"불안해야 하나요?"

"FBI에 들어오면 대부분 불안해하지."

"그 사람이랑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진 않네요."

"그 사람?"

빅터는 재빨리 다정하게 묻고, 마야는 대답한다.

"정원사."

"너를 가둔 사람...... 그 사람이 고용한 정원사랑 얘기했니?"

마야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그 사람이 정원사예요."   (19-20p)


성질만 부리고 버럭대는 에디슨이 빠지고, 빅터 혼자서 마야와 인터뷰를 계속 진행하게 돼요. 

마야의 입을 통해서 나비 정원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는데...

왜 마야는 침묵을 지키다가 빅터 팀장에게는 순순히 모든 질문에 답했을까요. 그건 한눈에 알아봤던 거예요. 빅터 팀장은 세 명의 딸을 둔 아빠라서, 이 끔찍한 사건에서 구출된 소녀들을 수사관이 아닌 아빠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내 딸들이 피해자가 되어 조그만 방에 갇혔더라면... 그래서 아직 혐의를 둔 마야조차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어요. 반면 에디슨은 자신의 휴일을 뺏아간 상황이 몹시 짜증난 것 같아요. 그를 탓할 순 없겠죠. 아무리 끔찍한 범죄 사건이라도 그와는 무관하니까. 


마야가 들려주는 정원사의 이야기는 수많은 공포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요.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정원사는 인간이 아니라 악마였어요. 그에겐 충실한 하인이 있었고, 또 다른 악마도 곁에 있었어요. 모든 게 완벽하게 은폐된 비밀의 정원에서 납치된 소녀들이 한 명씩 죽어갔던 거예요. 단지 악마의 쾌락을 위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야가 함께 갇혀 있던 시모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부분이에요. 시모네는 도서실에서 같이 읽던 책을 읽어달라고 했어요. 마야는 시모네의 손을 맞잡은 채,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어요.

"끔찍하게 추운 날씨였어요. 눈은 가득 내리고 주변은 완전히 깜깜한 저녁이었어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저녁. 이렇게 춥고 깜깜한데, 불쌍한 여자애는 맨머리에 맨발로 거리를 걸어갔어요."  (268p)

그 책은 안데르센이 쓴 「성냥팔이 소녀」였어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안데르센의 동화가 <나비 정원>의 상황을 완벽하게 설명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마야뿐 아니라 나비 정원에 갇힌 소녀들은 성냥팔이 소녀와 다를 게 없었어요. 성냥개비로 약간의 온기를 느끼며, 환상적인 꿈을 꾸었지만 현실은 죽음뿐이었어요. 후우~ 불면 사라지는 성냥개비의 불꽃처럼 사라진 소녀의 생명. 사람들은 얼어죽은 소녀가 왜 미소를 짓고 있는지, 그 소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해요. 아무도 거리를 헤매는 성냥팔이 소녀에겐 관심이 없었으니까. 아무도 추위에 떨고 있는 불쌍한 소녀에게 손 내밀지 않았어요. 아무도... 소녀의 죽음으로 이 동화는 끝이 났지만, 우리의 현실은 끝나지 않았어요. 

<나비 정원>의 결말은 놀라운 반전이 있어요. 처음에 빅터 팀장이 마야를 선택했던 그 이유가 밝혀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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