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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평점 :
미국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되면서 함께 뜬 뉴스가 있어요.
부인 질 바이든이 본업인 교수직을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
231년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직업을 가진 퍼스트레이디가 탄생했다는 내용은 의외였어요.
변호사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 생활을 하며 일을 그만뒀는데, 질 여사는 자신의 본업을 유지하겠다고 공식발표한 거예요.
어찌보면 당연한 건 아닌가요. 남편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부인이 반드시 내조해야 하는 법은 없잖아요.
도대체 왜 영부인으로서 내조하는 게 당연시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21세기 미국에서 말이에요.
호기심에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검색해보니 남편은 화학자인데 공개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른바 조용한 외조. 오히려 메르켈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도 남편의 아침 식탁을 차려주는 일은 손수 하고 있대요. 처음엔 '엄마(Mutti)'라는 별명이 동독의 촌스러운 아줌마를 비꼬는 뜻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실용주의 리더십을 인정받으면서 국민을 어머니처럼 포용하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대요. 여자는 총리직을 수행해도 '엄마'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네요.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 다시 로크먼의 두 번째 책이에요.
"왜 남자들은 일을 더 하지 않는가?" , "평등주의자인 남녀는 왜 가정에서 불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가?"의 근원을 추적하기 위해 100명의 엄마들을 인터뷰했다고 해요.
그 인터뷰 결과는 놀라웠어요. 나이, 인종,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엄마들이 털어놓는 얘기가 똑같았대요.
우선 이 책은 자녀를 둔 기혼여성들이라면 200% 공감하게 될 거예요. '앗,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중요한 건 자신이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을 당하고 있었다는 현실 자각이라고 생각해요.
끝나지 않은 성차별.
성평등을 외치면서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순간 200년 전으로 돌아가버리는 현실.
왜 그럴까요. 그건 '개인 영역'이었기 때문이에요.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바뀌지 않았던 거에요.
이렇게 말하면 발끈하는 남자들이 있을 거예요. 요즘 세상은 남자들도 집안일 하느라 힘들다고.
'아이가 아프면 누가 휴가를 내는가?' 미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력 변화에 대한 전국 연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여자의 77.7퍼센트, 남자의 26.5퍼센트가 자신들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보고했다.
(부부가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조사했기 때문에 총합이 100퍼센트보다 크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몸은 1980년대 후반에 가족 연구자들이 남자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육아의 책임을 "받아들이지만",
여자는 남편의 일정과 아이들의 필요에 맞춰 일을 "조정"한다고 밝힌 이래로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181p)
내가 인터뷰한 엄마들은 대개 배우자가 뜨뜻미지근한 부모임을 자각하는 태도를 보이며
도우미형, 나누미형, 태만형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분노하고,
인터뷰에 응한 남자들은 대부분 아내의 불만에 영문을 몰라 한다.
오바마가 미셸의 불만에, 조지가 나의 불만에 대해 느끼는 것처럼.
저는 아내를 사랑해요. 도와준다고요. 뭘 어쩌라고요? (219p)
저자는 엄마들의 인터뷰뿐 아니라 생물학,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사례를 통해 성차별주의를 지속시킨 편견과 과학적 오류를 짚어내고 있어요.
왜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할까? 왜 여자들은 이런 행동을 봐주는 걸까?
성별에 따른 사회화, 즉 사회화는 성별 행동 차이를 낳는 데 영향을 줘요. 한 가지 예로 평등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똑같이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반면,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란 남자아이는 아기에게 관심을 덜 보인다고 해요. 타고난 생물학적 성향과 문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분석하기란 불가능하며 결국 이 둘은 상호작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현대적이고 가정적인 아빠 시대에도 생계비를 버는 일과 돌보는 일에 균형을 찾기 위해 벌이는 공적 토론은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집중되어 있어요. 콕 집어서 여자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어요. 현대 엄마 역할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여자는 본능적으로 즐겁게 양육해야 하고, 모든 개인성을 버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어요. 여성 희생 숭배는 문화적 하위 집단마다 다양한 형태를 띠지만 그 속내에는 가부장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어요. 여자들이 처한 위치는 정확히 여자들의 책임이 아닌데, 성 불평등이 내재된 역할을 강요받고 있어요. 사회규범은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고정관념은 역으로 사회규범을 강화하고 있어요.
사회학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성 고정관념의 변화를 추적해왔어요. 연구에 따르면 가정 일로 직장에서 휴가를 내는 남자들은 덜 좋게 보고, 연봉을 더 적게 받는 사람으로 인식된다고 해요. 즉 남자는 여자처럼 되어서 득볼 게 하나도 없다는 식의 편견이 문제라는 거예요.
온정적 차별은 남성 지배를 애정이 담긴 기사도 정신으로 표현하면서 여자는 성공한 남자 뒤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조장해요. 공동체적 특성의 규범을 어기는 여자, 마땅히 여자답게 행동하지 않는 여자는 벌을 받는다는 인식인 거예요. 뉴욕대학교에서 실시한 2005년 연구를 보면, 남을 돕는 행위를 하겠다고 응답할 때 남자의 호감도는 올라가는 반면, 여자의 호감도는 변화가 없었어요. 이는 온정적 성차별의 적대적인 면모예요. 여자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피하기 위해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일제히 틀에 박힌 행동을 하면서 모순을 느끼는 거죠. 적대적 성차별에 대해서는 싸울 수 있지만 애정 넘치는 다정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엄마는 여기에 저항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온정적 성차별이 훨씬 더 교활한 거예요. 불평등에 익숙해지면 불평등도 마치 평등처럼 보인다고 해요.
이제는 적응을 멈출 때가 왔어요. 우리가 모든 성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고 저항해야 불평등한 가정을 정당화하는 일을 종식시킬 수 있어요. 평등의 과정에 대한 책임은 똑같이 분담해야 하되 엄마 혼자 주도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포함하고 있어요. 불평등을 끝내는 것은 우리 남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엄마 역할과 아빠 역할을 구분할 수 없게, 다같이 부모 역할을 하자는 거예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