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성숙은 단순히 누군가가 더 오래 살았기 때문이나

더 많은 걸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받아들이고 그 약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여러 의미를

찬찬히 살피는 일이 아닐까.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박홍규 × 박지원 대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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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마고도茶馬古道 - 김종제

 

 

당신에게로 수천 년

말을 타고 가는 길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황홀하여

절대적으로 험하고 위험한 길이다

은밀한 하늘까지 닿아있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열어놓은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다

과거의 당신과

현재의 나를 잇는 시간이

벼랑으로 낭떠러지로 불쑥 출몰하여

함부로 들어설 수 없는 금지구역을

허가도 받지 않고 가는 것은

무릎 꿇고 밤낮으로 기도했던

신전이 있었기 때문이고

무덤속까지 같이 살자고 약속했던

궁전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하늘 아래

당신과 내가 걸어갔었기 때문이었으리

차마고도, 그 길 문득 끊기고

인적 끊어진 지 한 천 년 지났을까

당신을 등에 태우고

내가 말이 되어 걸어간다

속으로부터 벗어나 있어

그곳에 사랑의 유물 같은

뼈만 오롯이 남겨놓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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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첩보기관 고위직 간부으로 부터 작가라는 이유로

 요원 제의를 받는데

 위험한 일이 발생해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나라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을 해도 보상 같은 것

 없다고 그런다.

 뭐 그래도 매력적인 일이니까

 일 이란 게 뭐 거창하지도 않다.

 일상처럼 아는 사람 만나면 안부인사 하듯이

 목표대상에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근황을 파악하는 게 다다.

 단막 단막으로 이루어져 있고 때로는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 삶의 세세한 단면들이 잘 그려져 있다.

 사랑에 대한 증명은 늘 파멸을 예고한다. 

 

 

 

  카툰 에세이

 책덕후 이야기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니까

즐겁고 행복하니끼.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으니까. 36쪽

 

 모든 날이 책 읽기 좋은 날이다. 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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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슨베이

 

 

읽는 행위에는 쓰기가 교차되어 있고 듣는 행위에는

말하기가 교차되어 있으며 배우는 행위에는 가르치기가

교차되어 있습니다.

배우는 것은 아름다운 일지만 배우는 것이 습관이 되면

자기표현에 장애를 갖게 됩니다.

우리가 배우는 대상은 다른 사람의 표현일 뿐입니다.

표현의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배움은 경계를 품는 것이

아니라 이념의 한쪽에 서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누구인가”(강신주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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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심보선

 

 

이곳은 오늘도 변함이 없어

태양이 치부처럼 벌겋게 뜨고 집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넋 놓고 살고 있습니다

탕진한 청춘의 기억이

간혹 머릿속에서 텅텅 울기도 합니다만

나는 씨익,

웃을 운명을 타고났기에 씨익,

한번 웃으면

사나운 과거도 양처럼 순해지곤 합니다

 

요새는 많은 말들이 떠오릅니다, 어젯밤엔

연속되는 실수는 치명적인 과오를

여러 번으로 나눠서 저지르는 것일 뿐,

이라고 일기장에 적었습니다

적고 나서 씨익,

웃었습니다

언어의 형식은 평화로워

그 어떤 끔찍한 고백도 행복한 꿈을 빚어냅니다

어젯밤엔 어떤 꿈을 꾸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행복한 꿈이었다 굳게 믿습니다

 

내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지만

이제 삶의 고통 또한 장르화하여

그 기승전결이 참으로 명백합니다

다만 어두움을 즐겨하기에

눈에 거슬리는 빛들에겐

좀 어두워질래? 타이르며

눈꺼풀을 닫고 하루하루 지낸답니다

 

지금 이 순간 창밖에서

행복은 철 지난 플래카드처럼

사소하게 나부끼고 있습니다

그 아래 길들이 길의 본질을 망각하고

저렇게 복잡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의 페이지들이 구겨지면서

아이구야, 아픈 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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