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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속에 청어가 산다 -  이 혜 미 

 

달빛에 프리즘을 대면 푸른 비늘 자라나와 명치끝에서 일렁이네요 달에서 흘러나온 비린내가 도로 가득 퍼덕거리고 창 너머 저만치 아직 생존하는 그림자의 반짝이는 비늘, 그 비린 내음 한 동이 엎질러놓고 청어를 굽는 달밤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액셀을 밟았다더군요 과속으로 달려온 시간이 초침 끝에서 환하게 부서져요 생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는 초침에 붙은 시간의 살점, 껍질만 남은 그림자는 그 날카로운 끝에서 자라나죠

 

 왜 모르겠어요 내가 바로 그림자인걸요 도로 위에 쓰러져 온몸을 퍼덕이던 한 마리 청어인걸요 가시와 가시 사이 가장 맛있는 살을 남김없이 발라내는 법을 알고 있어요. 푸른 비늘을 감추려 눈두덩에 짙은 화장을 하고 춤추는 법도

 

 글쎄, 왜 모르겠어요

 방금 훑어내린

 

 한 점의 살도 남아 있지 않았다니까요

 

 소매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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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신나게 웃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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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세탁선  - 박정대 
 
 
 내가 사는 세탁선 아파트에 가을이 왔어요
가늘고 긴 목조 건물의 복도를 따라 걸으면
삐걱삐걱 가을이 소리나요
세상이 온통 출렁이는 물결 같아서
나는 세탁선 아파트에서 추억을 세탁하며 한 시절을 보내요
내가 사는 낡은 세탁선 아파트에 가을이 왔어요
당신을 잊기 위해 지난 여름 무작정 나는 이곳으로 왔지요
테르트르 광장을 지나 구릉을 한참 걸어 올라가면
내가 사는 낡은 세탁선 아파트가 있어요

세탁선 아파트,
걸으면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는 가늘고 긴 목조 건물 세탁선
그 모양이 마치 세느강 위에 떠 있던 세탁선 같아서
시인 막스 자콥이 붙인 이름이라지요
피카소가 연인 올리비에와 4년간 살았던 목조 아파트 세탁선
원래 세탁선 아파트는 에밀 구도 광장 쪽에 있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목조 아파트 세탁선은
테르트르 광장에서 라펭 아질 쪽으로 올라가는 구릉에 있어요
나는 그냥 내가 사는 목조 건물을 세탁선이라고 부른답니다
내가 걸어온 길들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기 때문이지요

나의 아름다운 세탁선에 가을이 왔어요
세탁물들이 베란다에 걸려 돛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요
턴테이블에 음악을 걸어놓지 않아도 유리창들은 음악 소리를 내요
한 무리의 새들이 나의 아름다운 세탁선을 물고 바람 속을 항해해요
추억이 없으니 미래가 없어요, 미래가 없는 곳에도 밤이 오고
별들이 떠요, 나의 아름다운 세탁선에 가을의 별들이 떴어요
나의 세탁선 아래로는 긴 망각의 운하를 따라 추억이 물고기처럼 흘러가요
흘러가는 한 세월의 강물 위에서 나의 낡고 아름다운 세탁선은
그냥 그렇게 홀로 흘러갑니다, 가을처럼 깊게
겨울보다 더 깊은 곳으로, 안녕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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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경을 다시 읽는게 낫겠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역시나 제목에 혹하면 안되는구나

 

 

 

 

 

 

 

 

 

 

 

 

 알맹이도 없는 편지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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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 기 형 도

1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을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둠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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