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끝났다”를 읽는 순간 작가의 죽음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 누운 채로이다.
........
내 앞 바위 위엔 수천 마리 새들이 있다”
위 문장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가 연상된다.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이 책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꽤나 관심 있는 작가였는데
알수없는 일이다.
“빅서 해안은 텅 비어 있고, .... 이것이 전부다. 이제 곧 해안을 떠나야만 한다.
.... 오늘 밤엔 빅서에 약간 안개가 낄 것이고 쌀쌀해질 것이다”.
빅서 해안으로 시작해서 빅서 해안으로 끝난다.
마지막 문장은 “나는 살아냈다.”다.
끝났다와 살아냈다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미혼모와 아들 기댈 곳없는 두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는 게 환상의 복식조다.
한사람이 무너지면 둘 다 끝장이다. 그 걸 잘아는 엄마는
죽으면서 친구에게 편지를 부탁한다.
편지가 이상하다걸 느끼지만 원래 엄마에게 그런 점이
있으니까 별 의심없이 넘어간다.
엄마와 아들간의 근친상간을 생각하는 정신분석가에게
경고한다.
내게 성을 준 남자가 사람들이 내게 말해준 가스실에서 죽은 게
아니라 형을 받으러 가는 길에 입구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공포에 질려 죽었다는 편지를 읽고
오랫동안 그 편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 다음에
N.R.F.출판사의 층계로 나와 난간에 기대고 얼마나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운이 좋았다.
바로 그때 알베르 카뮈가 지나가다가 내가 몸이 불편한 것을
보고는 자기 사무실로 데려갔던 것이다.
알베르 카뮈와 나눈 이야기가 궁금한데 없다.
그렇게 죽은 그 남자는 나에게 한 사람의 타인이었지만,
그 날 그는 영원히 나의 아버지가 되었다.
자전적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