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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속에 끼어 놓은 말린 낙엽처럼 흰 색 바탕에 붉은 색 잎이 그려진 표지가 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표지에 적혀진 문장'사랑은 천국보다 더 아름다운 지옥이었다.' 우.. 순간 감동의 물결이... 나로하여금 책을 집어 들게했다.
인생의 여러 가지 일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나를 만나기 전부터 그의 내면을 좀먹고 있던 피로감을 나는 전혀 걷어 내 줄 수가 없었다. 그의 인격 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내게는 매력적으로만 여겨졌던 암울한 것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미 필라멘트가 끊어지기 시작한 전구 같은 그의 마음으로 뛰어든 나방이엇다. 위로가 되었을는지는 모르나, 낮의 반짝반짝하는 잔상을 어둠으로 끌고 들어가 그의 혼란을 가중시켰을 뿐이었다.-본문 37P
이렇게 한 페이지를 읽어보고는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내가 읽었던 그 페이지가 가장 좋았다. 소설 부분 부분 이런 요시모토의 놀라운 상황적, 심리적 설명이 되긴 하지만, 난 이 페이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처음엔 카자미와 쇼지의 러브 스토리 인 줄 알았다. 하지만, 카자미는 단지 근친상간인 스이, 다카세, 오토히코와의 사랑을 이야기 하기 위해 등장시킨 제 3자 아닌 3자 였다. 설정 자체가 너무 극적이다. 아버지와 딸의 사랑, 또 그 딸과 이복형제와의 사랑, 나인 카자미와 쇼지와의 사랑, 다시 그 딸인 스이와 쇼지와의 사랑. 물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은 아니나 내 관념에서 이는 거부감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축복받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 사랑을 단지 순수한 그 마음 그 하나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없는 건 나와 너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 또 다른 너와 나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너와 나의 사랑을 위해 난 그 질서에 위배된 사랑을 해선 안된다. 그 질서에 위배된 사랑을 시작한다는 건 예고된 불행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허나, 눈에 보이는 불행을 보고도 걸어들어감은 인간이 어리석어서라기 보다는 그게 사랑의 위력이고 힘일 것이다. 제발 내게 허락된 사랑이 타인으로 인해 내 사랑이 제한되는 사랑이 아니길 바래볼 뿐.
스이는 이복형제인 오토히코의 아이를 임신하고 오토히코와 헤어진다. 오토히코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그 사랑의 아이는 낳는다? 좀 모순이긴 하다. 스이가 떠난 후 카자미와 오토히코는 어느날 여행을 떠나 어느 바닷가에서 그들을 운명으로 연결시켰던 다케세의 아흔여덟 번째 단편을 불에 태운다. 이로써 그들을 묶었던 인연의 끈이 끊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과거 속의 인연 마저는 끊을 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