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뽀로 여인숙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살면서 누구나 그 무엇인가를 잃게된다. 그것이 사물일 때도 있고, 좋은 기회일 때도 있고, 사람일 때도 있다. 물론 그 중 가장 가슴 아픈 건 사람을 잃는 것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이 크면 클수록 기억 속에서 쉽사리 잊혀지지가 않는다. 세포 하나 하나까지도 기억하고 아파 떨고 있는 듯...

피와 살을 함께 나눈 일란성 쌍둥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 얼마전 모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잃어버린 쌍둥이 동생을 찾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 언니가 나와서 동생을 찾으며 걱정을 했다. 자신의 몸이 많이 아프다고 그래서 혹 동생이 아픈 것이 아닌지 걱정이라고. 정말 걱정대로 미국에서 살고 있던 동생은 똑 같은 곳이 아팠다. 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일란성 쌍둥이인데 얼굴은 세월의 흔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두 쌍둥이는 몸이 아프고 안 좋은 일이 있을 적마다 서로를 걱정했었단다. 하긴, 꼭 쌍둥이가 아니어도 내안에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 역시 확신한다.

이야기는 일란성 쌍둥이인 선명이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죽음이라는 잃음과 함께 선명이를 기억하는 사람들(부모님, 진명이, 미래..)의 잊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부모님은 시골로 내려감으로, 미래는 산악인이 되는 방식으로 선명이를 잊으려 한다.

자신의 그림자 같은 선명이를 잃은 진명이는 선명이를 잊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고, 문제집을 풀지만, 그 어떤 식으로도 잊혀지지 않는다. 김정인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신던 운동화를 벗어 버리고 구두를 신는다. 그리고,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단지 잊음에 대한 또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이지 갈등의 해결은 아니었다. 김정인도 김동휘도 윤미래도 그 무엇도 갈등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것이 잃는다는 거겠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거.

아쉬운 건 김정인이나 김동휘라는 인물로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는 나의 소망을 작가는 깨버렸다는 것이다. 대신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주어진 네번째 종을 찾아 삿뽀르로 간다. 하지마, 난 솔직히 속 시원히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가 않다. 어쩜 잃음. 특히나 죽음으로 인한 잃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이 될 수 없듯이 말이다.

장면 장면의 묘사는 내 마음을 아리게 할 정도로 놀라웠다. 하지만, 스토리상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들은 다소 필연성이 결여된것 같아 아쉬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 필연성을 의도적으로 결여시켜 독자에게 상상력이라는 독자들의 이야기상의 몫을 남겨 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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