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어두울 수록 빛은 더욱 밝게 빛나는 법이고, 그 빛은 절실하다.
셀리, 네티, 슈그..그들이 처한 어렵고 힘든 99% 삶보다 찰나같고 계속 되지 않을 것 같은 1% 의 사랑과 우정의 모습들이 더욱 아름다워보이고 귀해보인다. 다행이다. 이처럼...우리의 삶이 기계적이고 산술적으로 명확하게 크고 작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어서..
셀리는 부끄러워서 자신의 삶조차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셀리는 한탄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교통함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슈그가 나타나면서 셀리는 자신이 의지하는 하나님를 사랑을 알아가는 순례(^^)의 길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건 신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나누기 위한 거야"- 256p
하나님의 사랑은 신을 기꺼이 나누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며 존귀하게
대하는 인간들을 통해서 신의 존재와 신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며칠 전 필립얀시 책에서 읽었던 게 생각이 났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가 한 것이니라" (마 25:40)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는 굶주린 사람들입니다. 음식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입니다. 목마른 사람들입니다. 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지식, 평화, 진리, 정의, 사랑에 대해서입니다. 헐벗은 사람들입니다. 옷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귀함에 대해서입니다.
필요를 채워주고, 앨버트로부터 셀리를 보호해주는 슈그....그리고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네티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고, 앨버트가 숨겨왔던 네티의 편지도 슈그가 찾아준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고, 미워하는 것도 함께 미워해준다. 자기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했던 삶을 사랑해주고 지켜봐준다. 앨버트의 눈으로만 자신을 평가했던 셀리의 눈에서 "그 남자를 떼어내어준다". 그리고 비로서 무엇이든 볼수 있게 되고 (p261) 자신의 삶의 이야기들을 하나님이 아닌 네티에게 직접 나누기 시작했다.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심지어 슈그는 00 으로만 불려졌던 앨버트를 이름을 사용해 지명하고 그와의 관계의 회복의 모습까지도 보여주기도 한다. 보잘 것 없고 지극히 하찮아 보이는 셀리의 어두운 인생을 그대로 두지 않고 곁에서 보듬어주고 그녀의 인생을 돌보아 주었던 슈그와 네티의 다정함과 사랑으로 인해 셀리는 마침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고 그녀의 삶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어둠 가운데 빛으로 오신 그분의 사랑이 슈그와 네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 셀리의 삶을 일으켜 세워주신 것 같다.
다름과 차이로 파생되는 여러가지 불행의 모습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사회적 법과 제도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인간됨의 회복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함을 앨리스님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