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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 - 대만에서 미국까지, 수관층 생태학자의 일곱 나무 이야기
란융샹 지음, 강영희 옮김 / 사계절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렇게 5분쯤 지나 마침내 나무에 매달렸다. 지상에서 겨우 5~6미터 높이에 불과했지만 갑자기 시야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땅 위에 서서 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평면이던 세상이 돌연 입체가 되어 솟아오른 듯했다. 마치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 말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이 휘몰아쳤다. 그날 밤 내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내가 계속 올라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p.44
가지와 잎이 모여 형성하는 나무의 꼭대기층을 수관층이라고 한다. 나무는 100미터 이상 자라기도 하고,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내기도 한다. 그러한 나무에 직접 오르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등반 기술과 인력, 예산이 필요하고, 수관층의 고유한 생태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지식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 수관층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이 책의 저자 란융샹은 지난 20년간 대만과 미국을 오가며 오래된 숲의 거목들에 올라 각 나무의 고유한 생태와 숲 건강에 대해 연구해온 수관층 생태학자이다.
저자는 20년간의 연구 여정을 기록한 이 책으로 2025 대만 문학상 금전장 본상과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경이롭고 역동적인 수관층 생태학의 세계를 근사하게 펼쳐 보이는 책이었다.

지상 5미터 높이만 해도 건물 2층 높이에 달하는데, 10미터부터 60미터가 넘는 나무에도 로프에 매달린 채 오르내리는 사진들을 보며 그 생생한 현장감에 감탄했다. 이 책은 치란산의 대만편백나무 숲에서 시작해 타타자의 대만 가문비나무 숲을 거쳐 미국 오리건주의 울창항 개솔송나무 숲과 캘리포니아주의 장엄한 자이언트세쿼이아에 이르기까지 경이로운 나무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나무 위에 머무는 매 순간 경탄과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지만, 사실 현장 작업은 그리 낭만적이지도 느긋하지도 않다는 저자는 과학자의 호기심과 모험가의 용기로 오늘도 거침없이 나무를 오르고 있다.
물론 탐구의 과정이 항상 예상한 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고,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조사구 안을 걷는 일은 일반적인 숲길을 산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뒤엉킨 식물들과 발을 붙잡는 진흙탕, 가로막고 선 작은 개울은 물론이고 제각각으로 쓰러진 고사목들이 끊임없이 길을 막아서는 원시림을 걷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탐구와 모험은 어딘가 낭만적인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진심을 다해 도달한 삶의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풍부한 사진들 덕분에 저자의 연구와 탐험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나서야 나는 훈련된 두 눈으로 숲의 풍부한 세부와 그 사이의 촘촘한 연결을 선연히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꽃 한송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세계다. 꽃의 안과 밖은 모두 세계의 일부인 동시에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가을날의 따스한 햇살 속에서 이 태곳적 숲은 기꺼이 자신을 열어 나의 탐험을 허락해주었다. 숲은 과묵한 노인 같기도 하고, 두껍고 묵직한 한 권의 책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이토록 기나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p.253~254
새벽녘, 하늘이 희붐하게 밝아올 무렵, 높이 60미터가 넘는 상공에 앉아 있는 기분이란 어떤 걸까. 양치식물과 이끼로 뒤덮인 굵은 가지 아랫부분에 걸터앉아 우뚝 솟은 시트카가문비나무 너머 저 멀리 태평양을 바라보는 느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전날 내리 비로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는 이끼, 서서히 주변 세상을 비추기 시작한 황금빛 따스함,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안개, 나무 위에 한 층 한 층 그럴듯하게 자리 잡은 작디작은 숲들의 풍경에 대한 묘사를 읽고 있자니 저자에게 나무란 '온몸으로 교감한 동반자이자 삶의 고비마다 자신을 껴안아준 생명의 그물망'이라는 설명이 고스란히 와 닿았다. 인간의 언어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생태계가 바로 숲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수관층 연구의 선구자인 마거릿 로먼은 미지의 영역이라는 뜻을 담아 수관층을 ‘세계의 여덟 번째 대륙’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그만큼 미지의 세계이자 수많은 생태적 비밀을 갖고 있는 신비스러운 곳인 것 같다. 저자는 수십 미터 높이의 나무에 오르는 일에 매혹되어 수관층 연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대만에서 수목 등반과 산림학의 기초를 익힌 뒤, 전 세계 산림학 연구의 중심인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로 옮겨 가 오리건주와 캘리포니아주, 알래스카의 거목에 두루 오르며 수관층 생태학자로 성장해온 과정이 이 책에 모두 담겨 있어 매우 흥미진진했다. 대만에서 미국까지, 대만편백나무에서 시작해 개솔송나무, 귀족전나무, 자이언트세쿼이아 등을 거쳐 다시 대만삼나무까지 일곱 나무의 이야기를 토대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나무에게서 친밀함과 위안을 느낀다는 저자처럼,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도 아마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서평단으로 미니 테라리움을 함께 받았다. 나만의 작은 숲이 생긴 듯한 느낌이라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함께 수목 등반이라는 모험을 즐기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종이 위에 박제된 파리한 지식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맞닥뜨리며 경험하게 되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나무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놀라운 책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