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달링
요한나 판 베인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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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흐네스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연못 같은 그녀의 홍채 속에서 호기심과 두려움과 무시무시한 공포 그리고 고통을 읽어내었다. 하지만 그 공포와 더불어 강하고 정제되지 않은 묘한 갈망이 보였다. 아흐네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잠 못 이루어 검게 변한 그녀의 눈이 말했다. 나 아파. 가혹하게 뒤틀린 입매가 말했다. 나 자랑스러워. 그러면 주먹을 꼭 쥔 채로 내 앞에서 애써 숨겼지만 어쩔 수 없이 떨리던 손가락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일부가 품었던, 날 잡고 놓아주지 않겠다는 바람이었나?               p.55~56


"혼령들이여, 여러분을 부릅니다. 이곳에 어서 오시지요.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혼령들을 환영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면, 곧 어린 소녀에게 빙의라는 기묘한 광경이 벌어진다. 스물한 살인 로스는 지나치게 말라서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강령회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어머니가 먹는 것을 제한시켰기 때문이다. 강령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아직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어린 소녀처럼 보여야 했다. 고객들이 바라는 대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혼령들을 불러 영혼이 빙의한 것처럼 연기하는 게 로스의 역할이었다. 어머니는 로스가 순진하고 무방비한 소녀처럼 보이기를 바래 날씨에 비해서 너무 얇은 하얀 여름용 원피스를 입혀 더 작고 말라 보이게 연출하곤 했다. 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다섯 살때부터 루트 같은 혼령을 알아본 것일 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강령회에서 죽은 자들과 대화하는 것은 전부 가짜였지만, 로스의 곁에 있는 혼령 '루트'는 진짜였다. 강령회에서 루트가 로스의 몸속으로 들어가 방문객들을 헷갈리게 하고, 교묘하게 속이고, 유혹했던 것이다. 피를 나누고 몸을 공유하며 둘은 서로에게 유일한 구원이자 사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찾아온 과부 아흐네스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다. 강령회가 끝나고 루트는 남자 혼령을 발견했다고, 아흐네스가 분명히 자신을 봤다고 흥분해서 말을 한다. 사실 아흐네스에게도 루트처럼 '동반자 혼령'이 있었다. 아흐네스는 다시 찾아와 로스의 어머니에게 돈을 지불하고, 로스를 데려가기로 한다. 어차피 로스가 친딸이 아니었던터라, 돈이 더 중요했던 어머니는 딸을 팔면서도 아무렇지 않다. 게다가 로스 역시 이제 더 이상 거짓말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황이 반가웠다. 그렇게 함께 지내며 로스는 아흐네스에게 강렬하게 매혹되고, 아흐네스 역시 로스에게 점점 깊이 빠져든다. 




당연히 안 보일 수밖에. 토마스가 혼령이 되어 돌아올 확률은 얼마나 되나? 루트와 피터는 수백 년이 걸렸다. 그들은 죽은 순간부터 시신이 적당한 상태로 묻혔다. 게다가 그들을 깨워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토마스를 울음소리로 깨워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가끔 나타나는 여우나 새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거짓말하지 마! 저기 있잖아!"

빌레민이 비명을 질렀다.                p.352


이야기는 로스의 시점과 정신과 의사의 시점에서 교차로 진행된다. 어머니와 강령회를 진행하다, 아흐네스와 함께 살게 된 로스의 이야기와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 과정이 보고서와 대화 형식으로 이어진다. 로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고딕 로맨스의 분위기라면, 의사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스토리는 미스터리에 가깝다. 읽다 보면 살인 사건이 벌어졌고, 환자가 살인자인지, 정신병자인지, 혹은 감형받고자 연기를 하는 중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의사는 로스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문제는 독자인 우리가 그녀와 반려 혼령을 빋을 수 있느냐이다. 


외롭고 폐쇄된 세계 안에 드리우는 불길한 그림자, 살아있는 여자들과 죽은 존재들이 서로를 갈망하고 집착하는 음산한 관계 속에서 사랑과 구원이 소유욕과 광기로 변해가는 과정이 매혹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고딕 퀴어 로맨스'라는 독특한 장르와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상담 사례를 미스터리처럼 결합시켜 기괴하면서도 관능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레베카>를 강하게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라는 문구 덕분에 궁금했던 작품인데, 고딕 호러 장르를 좋아한다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드라마틱한 서사로 풀어내는 작품은 아니기에 전반적인 분위기와 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하며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음산한 저택, 강령술과 혼령, 억눌린 욕망와 위험한 관계... 더위를 싹 가시게 만드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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