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
네후네 하야세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터넷은 편리하다. 대체로 '평범함'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그것이 내게는 일종의 이상이자 환상이며, 아무리 평범하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일반적인 생활의 형태는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자신이 '이상하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자기 세계가 틀렸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에 올라간 뒤에야 우리 집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92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다카히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도망치듯 집을 나와 일을 한다. 이년 뒤 기를 쓰고 모은 돈을 전부 어머니의 빚을 갚는 데 빼앗기고 나자 사는 게 지긋지긋해졌다. 제대로 돼먹지 못한 인생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마음먹고 투신 장소를 찾아 다니다 구인 광고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지금 당장 인생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사람 모집 중! 월급 15만 엔~ ※입주 필수] 이제 뭐야? 완전 나한테 딱이잖아. 라고 다카히로는 생각한다. 지금 당장 인생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라니, 자신에게 딱 맞는 문이 나타난 것이다.
전화를 건 다카히로와 면담을 한 것은 삼십 대 중반의 유순한 인상을 가진 남성이었다. 그런 내용을 보고 찾아올 사람은 없을 줄 알았던 건지, 그는 오히려 다카히로를 걱정한다. 이제 스무 살인데, 인생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나이는 아니지 않냐고. 더 제대로 된 일을 찾아보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온거라 다카히로는 정말 상관이 없었다. 입주 조건은 간단했다.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낼 것'. 그렇게 다카히로는 10층짜리 쥐색 외관의 맨션에서 살게 된다. 그가 살고 있는 것은 7층, 자신과 이웃집 말고는 모두 빈집이다. 정체불명의 이웃은 매일 밤 괴담을 하나씩 들려 준다. "이건 친구에게 들은 얘기인데."로 시작해서 "......무서웠어?"로 끝나는 이야기. 평소에 겁이 많은 편이었지만, 그 괴담들이 전부 창작이라고 믿었기에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현실에서 이웃이 말한 것과 똑같은 존재가 나타나는데.... 과연 다카히로는 그동안 23명이나 도망쳤다는 기이한 맨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쁜 짓을 한 만큼만 벌을 받는다. 세상에 그렇게 적당한 얘기는 없는 법이다. '그 사람'은 나를 안은 채 질질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따라가면 위험해. 바로 깨닫는다. 그 정도는 바보라도 안다. 즉 나도 안다. 그렇지만, 머리 한구석이 제멋대로 중얼거린다. 애당초 내가 그 맨션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도 이런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내게도 일부 책임이 있을 것이다. p.233
한 친구가 대학생 때 살던 아파트 옆방에 이상한 아주머니가 살았다고 한다. 피로에 지친 표정을 한 백발의 여성인데, 늘 땅만 보고 걸어서 종종 사람과 부딪히곤 했다. 그녀는 항상 <다쿠>라는 이름의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갓난아기처럼 만들어진, 어디에서나 파는 아주 평범한 인형이었다. 아무래도 어딘가 이상해진 사람처럼 보여서 얼른 이사하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돈이 없었다고. 그러던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오니 문손잡이에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그 속에는 손발이 토막 난 인형이 있었다. 편지도 함께 있었는데, '다쿠는 사과를 좋아해요. 공부를 좋아하는 착한 아이입니다. 잘 부탁드려요.'라고 되어 있었다. 목적도, 의미도, 이유도 전혀 알 수 없었던, 불가해하고 기이한 일이었다. 이웃이 들려주는 괴담은 보통 이런 식이었다. 짧지만 임팩트가 강하고, 갑작스러운 결말 이후 길게 여운이 남아 오싹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차세대 호러 주자로 손꼽히는 네후네 하야세의 이 작품은 일본 호러 사이트에 연재된 인터넷 괴담으로 인기를 끌어 책으로 출간되었으며, 빗발치는 요청에 속편과 동명의 코믹스까지 발매되었을 정도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아사히신문〉은 ‘2025년 일본 호러 붐의 최전선’에 있는 한 권으로 이 책을 선정,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자꾸만 곱씹게 되는 이웃 호러’라고 호평했다. '자꾸만 곱씹게 되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읽는 동안에는 크게 무섭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섬뜩해지고, 읽고 나서 자꾸만 생각날 것 같은 괴담이었으니 말이다. 독특한 설정과 스산한 분위기, 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뒤섞이며 점점 높아지는 긴장감이 백미인데, 그 동안 만나왔던 호러 작품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한다.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공포 감각'이라는 문구처럼 낯설지만 어딘가 친숙한, 오싹하지만 이상하게 어둡지만은 않은 색다른 호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의 호러 소설이 궁금하다면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