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사는 대만 여자, 썸머의 게스트하우스 일기
썸머 지음, 허유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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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카오에서 에그타르트 사 왔어요!" 세상에, 이렇게 감동적일 데가! 휴대폰과 여권을 놓고 다니는 와중에도 에그타르트 상자를 사수한 것이 아닌가. 부푼 기대감을 안고 그녀의 손에 들린 에그타르트 상자와 눈을 맞추고 있는데, 나를 향해 성큼 다가오던 그녀가 테이블 모서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고, 그 바람에 에그타르트 상자가 공중제비를 돌아 카펫 위로 곤두박질쳤다. "괜찮아요! 안 쏟아진 게 세 개나 있어요!" 맞는 말이었다. 삶의 시련 앞에서 저토록 낙천적일 수 있다는 건 지금껏 숱한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p.89


대만의 뜨거운 여름에 태어나 '썸머'라는 필명을 지은 작가는 영어 교사, 마케터, 에이전트, 아티스트 매니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을 하다가 서울 이태원에서 게스트하우스를 7년째 운영하고 있다. 지방에서 휴가때마다 올라오는 군인, 호주에서 온 화가, 노르웨이에서온 만찢남, 해녀 출신 할머니 두 분, 루이비통 트렁크를 들고 온 인도인 부부, 수수한 인상의 단발머리 마카오 여성, 노르웨이에서 온 배낭여행자 등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여러 유형의 투숙객들이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했다. 그만큼 웃기고, 이상하고, 황당하고, 뭉클한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조용한 중국인 여성이 남기고 간 트렁크 안에 시체라도 들어 있으면 어쩌지 싶었던 일부터 복수극이 코미디로 장르가 바뀌고 만 치킨 배달 사건 등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마냥 재미있고 유쾌한 일들만 벌어지는 건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더렵혀진 방은 흔하디흔한 일이고, 혈서가 발견되질 않나, 바닥 전체가 버터로 뒤범벅되어 있질 않나, 피 칠갑을 한 채로 기절한 여자가 있질 않나, 급기야 비닐봉지에 담긴 끔찍한 동물 사체도 있었다. 웬만큼 기괴해 가지고선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청소도우미 여사님의 쿨한 멘트도 인상적이다."이까짓 게 뭐라고." 100부작 대하드라마를 써도 모자랄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어온 여사님의 의연함은 게스트하우스의 빛이자 든든한 기둥이 되어 준다. 




마치 올림픽이라고 벌어진 듯 저마다 신기록에 도전하는 각양각색 게스트들을 만나보았다. 늘 '세상은 넓고 기괴한 일들은 많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지만,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뒤에야 진정한 '세상에 이런 일이' 체험 캠프에 입소한 기분이었다. 기상천외한 능력을 가진 온갖 엉뚱한 사람들을 상대하며 처음에는 화가 나서 경찰을 부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저 허허로운 웃음 한 번으로 털어버리고 만다. 3,0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어떤 마법이 우리의 숙소 운영 방식을 바꿔놓은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바뀐 건 점점 해탈해가는 우리의 마음뿐이었다.              p.186


이태원은 독특한 밤 문화와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러 찾아오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그러다 보면 택시비가 아까워 아예 하룻밤 묵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특별한 주말 밤을 기대하며 미리 방을 예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남산타워 아래 구불구불한 언덕길에 자리한 썸머의 게스트하우스는 날마다 분주하다. 안면육관수술을 예약하고 중국 항저우에서 온 젊은 여자 손님, 무지개 배지를 단 세련된 차림의 일본 남자, 친부모를 찾으러 온 미국 남자, 열일곱 살에 탈북한 북한 청년, 생애 첫 해외여행을 온 쉰여덟 살의 중국 아주머니 등 다양한 여행자들이 게스트하우스에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남겨두고 간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만나고, 스쳐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순간들이 생각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생생해서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삶의 모습들을 포착해낸다. 이태원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는 각자의 사연을 품고 서울에 머무는 사람들의 따스한 교차로가 되어준다. 저자는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황당하고 기기묘묘한 상황들을 겪으며 아무리 기상천외한 게스트를 만나더라도 낙천적인 마음과 유머는 잃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런 마음 덕분에 우당탕탕 시끌벅적한 에피소드들이 유쾌하고도 따뜻한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인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게스트하우스 운영기이자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잡지에 문화, 여행 칼럼을 꾸준히 써온 대만 여성 작가의 서울살이 기록은 외국인으로서 서울에서 살아가며 겪은 일과 마주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진솔한 시선과 따뜻한 유머로 많은 공감을 얻은 이 책은 대만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이번에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서울에 머무는 사람들의 따스한 교차로가 되어준 이태원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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