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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와 시 ㅣ 클래식 리이매진드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데이비드 플렁커트 그림,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기가 중요한 대목이다. 여러분은 나를 미쳤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미치광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때의 나를 봤어야 하는데. 내가 얼마나 빈틈없이, 얼마나 선견지명 있게, 얼마나 천연덕스럽게 일을 처리했는지 그 현명한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그 노인을 죽이기 1주일 전부터 나는 그에게 최고의 친절을 베풀었다. 매일 한밤중에 노인의 방문 걸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정말 살며시 열었다! - '고자질하는 심장' 중에서, p.26
소소의 책 '클래식 리이매진드' 시리즈가 벌써 여섯 번째 책이 나왔다. 이 시리즈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독특한 시각적 해석을 담은 컬렉터용 하드커버 에디션이다. 원문 그대로의 고전소설을 다시 상상하기 위해 시작된 이 시리즈는 참여하는 일러스트레이터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고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셜록 홈스의 모험>, <그림 현제 동화>에 이어 이번에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와 시>가 나왔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과 시에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데이비드 플렁커트의 현대적 감각의 이미지가 더해지면 어떤 느낌일지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은 굉장히 으스스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들이 많다. 오늘날 추리소설과 공포문학, 심리 스릴러의 기원이 되었다고도 평가받는데, 그만큼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일러스트레이터 데이비드 플렁커트의 작품들은 표지 이미지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강렬한 일러스트들이 텍스트에 담기지 않은 부분까지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야기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삽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행간의 여백을 채워주며 극을 완성시켜 준다.
데이비드 플렁커트의 그림들은 굉장히 현대적이면서도 고딕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해지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고스란히 시각화시켜서 보여주는데,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야기를 따라 가다가 깜짝 놀라곤 했다. 글도 무섭지만, 그림도 으스스해서 글과 그림이 완전히 한 세트처럼 잘 어우러지는 작품이었다.

죽어가는 시간에 다정한 위로라니!
그런 것은, 아버지, (이제_) 나의 주제가 아닙니다 ─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지상의 권능이
내가 지은 그 죄를 용서하리라고 여기지는 않을 테니까요,
지상의 것이 아닌 자부심에 한껏 들떴던 그 죄를 ─
나는 망령 들거나 꿈꿀 시간이 없습니다. '절름발이 티무르' 중에서, p.232
포의 대표적인 단편 중 하나인 <검은 고양이>는 작품을 실제로 읽어 보지 않은 이들조차 내용을 알만큼 유명하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고백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최초로 선보인 작품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나'는 자신이 지극히 광적이고 야만스러운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믿어주기를 바라지도 간청하지도 않겠다는 말로 서두를 연다. 자신에게는 공포 그 자체인 사건들이지만 참혹하다기보다 기괴하게 비칠 일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독자들은 화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지만,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나'의 행동을 쉽사리 이해하기도 어려우니, 그 비정상적이고 통제력을 상실해가는 모습에서 점점 불편함과 오싹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재미있는 건 작가인 포는 실제로 고양이를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그가 이렇게나 거리낌 없이 고양이를 죽이고, 무시무시한 존재로 만들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는 그 선명한 이미지가 오래도록 머릿속에 각인되어 한동안 길에서 검정 고양이만 보아도 피해갔었다. 짧은 분량의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얼마나 섬뜩하고 오싹했던지 무서워서 책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게 된 포의 작품들은 놀랍도록 시적이었다. 어둡고 그로테스크했지만, 그럼에도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게다가 감각적이고 세련된 그림들이 작품이 지닌 분위기와 서사를 더욱 잘 드러내주고 있어 그림만 보더라도 이야기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시간이었다. 소설들은 시처럼 간결하면서도 복합적으로 읽혔고, 시들은 소설처럼 하나의 서사를 가지고 또다른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의 어두운 상상력으로 빚어낸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와 우리를 강력하고 완벽하게 미지의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클래식 리이매진드 시리즈를 첫 작품부터 차곡차곡 만나고 있는데,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일지, 또 어떤 아티스트가 재해석해는 작품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