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위의 만찬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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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 참신하다." 1,500쪽이나 되는 방대한 이탈리아 요리 바이블 <실버 스푼>을 번역하기도 했고, 평소 이탈리아 요리하기를 즐기는 음식 평론가로서 단박에 느낀 감상이다. 이탈리아 요리에서 원래 마늘은 요리 초반에 향만 우려내는 용도다. 올리브기름을 팬에 달구고 칼등이나 손바닥으로 납작하게 누른 것을 넣어 1분쯤 두었다가 건져버린다. 정석은 이렇다만, 교도소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이처럼 큰 제약 속에서도 급식 외의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에 힘입어 교도소만의 별도 요리법과 음식이 대대로 전해 내려온다.               p.74~75


<실버 스푼>, <패밀리 밀> 등 세계적인 요리사들의 책을 번역하고, <한식의 품격>, <미식 대담> 등 음식에 관한 저서를 써온 음식 평론가이자 번역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는 어떨까. 저자는 음식을 통해 영화를 기억하는 특별한 감상법을 제안한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초코파이, <헤어질 결심>의 중국식 볶음밥, <아메리칸 셰프>의 쿠바식 샌드위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정식, <신세계>의 송아지 스테이크, <올드보이>의 군만두,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 <왕과 사는 남자>의 사약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 음식에 초점을 맞춘 글들이 색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읽게 해주어 매우 흥미로웠다. 


영화 속 음식은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기도 하고,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하며,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역할도 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잠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데 활용되기도 하고, 인물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관객들이 공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삶의 중요한 모든 순간에 음식이 함께 했다. 어린 시절 처음 가족끼리 외식이라는 걸 했던 동네의 경양식 집, 동생은 느끼하다고 했지만 나는 너무 맛있었던 돈까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처음으로 독립했을 때, 첫 직장에서 첫번째 월급을 받았을 때, 첫 남자친구와 근사한 데이트를 했을 때 등등... 뭔가 기념할 만한 일이 생기거나, 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순간에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 이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순간들에도 음식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음식과 요리를 이해하는지라 나에겐 엄청 사무치는 장면이었지만 한편 깊은 회의가 들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저 장면, 특히 달걀로 클라리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특히 황백지단의 식문화가 거의 사라져버린 우리에게는 낯설고 공감을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나마 서양 요리 세계에서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 분리는 아직도 굉장히 흔한 일이니 좀 나을까? 달걀의 흰자는 수분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고, 노른자는 지방이 대부분이다. 두 구성 요소의 성질이 확연하게 다르므로 음식과 요리에서도 역할이 분명하게 갈린다.                p.245~246


좋은 영화를 보고 길을 나서면 언제나 그 여운에 마음 한구석이 싱숭생숭해진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인물들이 먹었던 음식을 요리해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올드 보이>의 군만두를 비롯해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는 음식이 유달리 두드러져 보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감독이 추구하는 특유의 미학과 어우러질 때 드러나는 멋과 디테일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저자는 <헤어질 결심>의 볶음밥 장면을 보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고 만다. 해준이 자신의 집에서 나름 솜씨를 부려 밥을 볶아내는데, 서래는 딱 한 입만 먹고 넌지시 내친다. 볶음밥이 너무 엉터리였으므로 만든 사람도 경계해야 마땅했다고 이해하면서, 이런 볶음밥을 만들면서 '중국식' 볶음밥이라 너스레를 떤다니 박찬욱 감독이 미워질 정도였다고 말이다. 저자는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제대로 된 중국식 볶음밥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세 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설명해준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거뜬히 한 접시를 비울 수 있을 것 같아, 저녁 메뉴는 중국식 볶음밥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음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 이야기이기에 일반적인 영화 리뷰에서는 만날 수 없는 순간들을 세밀하게 포착해주기도 하고, 영화 속에서 나온 음식을 실제로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레시피나 배경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더 특별한 시간이었다. 최신 영화부터 오래 전 명작까지 다양한 영화들과 함께 만찬을 벌인다는 점도 좋았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도, 음식에 관심이 있는 이들도 모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음식으로 영화를 읽어내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새로운 감각으로 영화를 음미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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