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 - 2026 뉴베리 아너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오브리 하트먼 지음, 마르친 미노르 그림, 황세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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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클레어는 또다시 발이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사무치는 슬픔 때문이었다. 인간도 자기 자식은 저렇게 살뜰히 돌보는 모양인데. 오래전 브릭베인이 길바닥에서 죽어 가던 클레어를 발견했을 때, 클레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돌보는 이는커녕, 사후 세계에서 기다리는 이도 없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대체 왜 나는 사랑받지도 못하고 고통계에서 영원을 보내야 하는 걸까?                p.101~102


죽은나무숲에 사는 클레어는 '죽다 만' 여우다. 트럭에 치일 때 한쪽 귀와 한쪽 눈만 간신히 건졌다. 반대쪽은 눈알이 제멋대로라 놋쇠 줄이 대롱대롱 달린 외알 안경을 걸치고 다녔다. 털이 듬성듬성한 가죽을 가리려고 망토도 하나 장만했다. 표면이 고르지 않은 자주색 벨벳 망토였다. 클레어는 사고 당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후 세계로 떠나는 대신 영혼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벌써 6년 째 홀로 오두막에서 살아가며 자신을 찾아오는 떠도는 영혼들을 사후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 일을 하고 있다. 텃밭에서 다채로운 버섯을 키우고, 사람들이 버린 책을 주워와 읽으며 고요하게 반복되던 일상은 어느 날 오소리 영혼 생강촉새가 나타나면서 달라진다. 


사후세계의 내 영역은 평화계, 쾌락계, 발전계, 고통계였는데, 이상하게도 생강촉새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자꾸만 돌아오는 거였다. 영혼의 어깨에 앞발을 살포시 얹으면, 사후 세계의 허락 아래 상대의 삶을 잠시 엿볼 수 있엇는데, 오소리에게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라면 떠도는 영혼은 초대받지 않는 한 클레어의 오두막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사후 세계의 모든 규칙을 깨부수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오소리는 계속 되돌아왔다. 마침 '죽은나무숲에 있는 자는 영영 사라지리라'는 헤스터파울의 예언도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다들 헤스터파울의 예언을 두고 떠들어 댔는데, 죽은나무숲에 있는 건 클레어 혼자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레어는 생강촉새를 데리고 예언자 헤스터파울을 찾아 가기로 하는데, 과연 예언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이며, 오소리의 영혼이 숲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런데 사후 세계는 왜 이런 걸 보여 준 걸까? 회상은 오직 영혼의 운명을 헤아릴 때 쓰이는데, 이번 회상의 주인공은 클레어 자신이었다. 나더러 대체 뭘 헤아리라는 걸까? 클레어는 닫빛처럼 창백한 아이의 뺨을, 망토 자락을 움켜쥔 작은 주먹을 유심히 살폈다. 아이의 엄마가 클레어에게 스웨터를 덮어 주었듯, 클레어 역시 아이에게 망토를 덮어 주었다. 다정함이 다정함으로 되돌아간 셈이랄까. 업보의 완성이었다. 선이 한 바퀴를 돌아 원이 되었다.                  p.310


성격도, 스타일도 너무 다른 클레어와 생강촉새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살아 있을 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실을 경험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린 클레어는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리다 인간들이 다니는 길에 가게 되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생쥐를 쫓아 큰길에 들어선 순간,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렸고, 트럭에 부딪히며 고통에 고통이 이어졌다. 클레어를 친 트럭은 사라져버렸고, 죽은 생쥐를 집으려고 용을 썼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오소리 한 마리가 그 마저도 가져가 버렸다. 그렇게 홀로 죽어가던 차에 전임 길잡이인 브릭베인이 나타나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엄마에 대한 기억도 없었고, 평생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아본 적이 없던 클레어는 그렇게 죽은나무숲에 오게 되었던 것이다. 생강촉새 역시 가족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존재도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올해 뉴베리 아너 수상작이다. 뉴베리상은 매년 가장 뛰어난 아동 문학 작품에 수여하는 세계 최고의 상이지만, 사실 어른들에게도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작품 역시 아동 문학의 카테고리 안에만 두기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먹먹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책을 너무 많이 읽다 보니 그만큼 감동할 일도, 눈물을 흘릴 일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웬만한 수준의 작품이 아니고서야 심금을 울리는 경지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며 정말 오랜 만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슬프고, 아름답고, 유쾌하고, 스릴 넘치는 모험까지 우리가 이야기에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는 작품이었다. 살아 있을 때도 늘 혼자였던 여우는 죽어서도 여전히 혼자지만, 오소리와의 이상하고도 다정한 우정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슬픔을 짊어지는 법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믿는 이들에게도 이 아름다운 작품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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