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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애를 죽이기까지
사쿠라이 치히메 지음, 김지혜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기, 만약에.”
내 말에 하나코가 천천히 반응했다. 나를 보는 듯 보지 않는 듯한 크고 검은 눈동자.
“만약 딱 한 사람을 죽여도 된다면 누구를 죽일 거야?”
“뭐야, 그게.”
하나코는 웃었다. 어이가 없다며 내 말을 일축해 버릴 듯한 경쾌한 웃음소리였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p.129
하나코의 최애는 아이돌 그룹 '백 투 더 나우'의 멤버 후지카와 이사미이다. 백 나우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건 잘생기고 노래도 춤도 뛰어난 데다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다이가지만, 하나코는 두 번째로 인기가 많은 이사미를 더 좋아한다. 다이가처럼 천재형이 아니라 노력해서 자신을 갈고닦는 유형의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건축가인 아빠와 인테리어 코디네이터인 엄마는 항상 바빠서 하나코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낯을 가리는 소극적인 성격으로 왕따는 아니지만 딱히 친구도 없어 학교에서도 외톨이이다. 그런 하나코에게 아사미는 유일한 기쁨이자 삶의 낙이며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처럼 입학 이래 누구와도 말을 섞찌 않던 남자애 쓰키미야가 하나코에게 말을 건다. 아사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지 않아? 알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게. 라고 말이다. 같은 멤버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두 사람은 금새 가까운 사이가 된다. 컴퓨터를 잘하는 쓰키미야는 SNS 게시물을 구석구석까지 확인해 이사미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찾아내고, 연예인들이 많이 산다고 소문난 초고층 맨션을 찾아가 멀리서 이사미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기도 한다. 총기 마니아인 쓰키미야는 엄한 아버지로부터 늘 잔소리를 듣고, 어머니로부터 애정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집에서도 별채에서 따로 지내는데, 하나코를 초대해 자신의 취미를 공유하기도 한다. 하나코는 쓰키미야가 있어서 참 든든하다고, 이사미가 최애인 친구가 생겨서 기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쓰키미야는 이사미의 팬이 아니다. 그저 하나코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에 이사미를 좋아하는 척 접근한 것이었다.

다섯 사람은 그대로 첫 곡을 선보였다. 음악에 맞춰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였고 힘찬 노랫소리가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무대 위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조명이 빛났고 원색의 유성들이 흩어졌다. 옆에 앉은 하나코의 옆모습을 조심스럽게 확인하니 심각한 표정으로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선은 틀림없이 후지카와 이사미를 향해 있을 것이다.
이 순간, 나는 다시 한번 결심했다.
후지카와 이사미를 죽이겠다고. p.294
한편 이사미는 겉으로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이가에게 끊임없이 라이벌 의식을 느꼈고, 멤버 중에 특별히 가까운 히로히토와의 관계를 BL 망상으로 좋아하는 팬들과 그걸 가지고 자꾸 놀려대는 멤버들을 향한 분노가 쌓이고 있었다. 유명세와 맞바꿔 자기 생각을 억누르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고, 팬들에게 자신은 만들어진 이미지인 '동양풍 꽃미남'이라는 살아 있는 인형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러한 마음들이 쌓여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 감정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팬들이 있는 자리에서 다이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식으로 문제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팬들의 비난 어린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그에게 일방적인 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사미는 완전히 나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완벽한 아이돌이라 믿어 왔던 최애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의 몰락과 함께 하나코의 세계도 산산조각나는데...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다. '줄곧 이사미에게 속았으니까. 아름답지 않은 이사미 따위 필요 없어. 죽어 버려.'라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때 떠오른 것은 “만약 딱 한 사람을 죽여도 된다면, 누굴 죽이고 싶어?”라는 쓰키미야의 질문이었다. 게다가 쓰키미야는 이사미가 사라져야 하나코가 혼자가 된다고,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위험한 충동은 무대 위의 이사미를 향하는데, 과연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그 목적을 이뤄낼 수 있을까. 잘 나가는 스타가 한 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현실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문제는 그 몰락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의 최애를 위해 쏟았던 시간과 감정, 마음이 산산조각 나면서 그를 사랑했던 팬들 역시 함께 무너져 내리게 마련이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그러한 감정이 조금 더 깊고, 심각했기에 끔찍한 비극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가끔 도를 넘은 사생팬들의 문제에 대해 보도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생팬'이란 연예인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추적해 침해하는 극성팬을 뜻하는 말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사생팬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 처절한 이야기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