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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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이들은 달력에 빨갛게 표시된 날을 조바심 내며 기다리기 마련이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 실제 닥치면 기대했던 것보다 즐거움음 훨씬 못 미치기 마련이니까. 애타는 기대감이 내심 실망감으로 바뀌고 마침내 크리스마스 자체보다 기대감 자체가 진정한 보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이런 실망의 순환을 수없이 경험해야 한다. 숨죽인 기다림이 보상의 전주곡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보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환상은 무너지고 마법은 깨진다.              p.57


열한 살 다윈은 학교에서 친구에게 멍청하다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정학 수준의 학칙 위반이라는 소릴 듣는다. 피어슨은 아들을 데리러 학교로 가서 교감에게 퇴학 처분도 각오해야 하니 앞으로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는다. 이 모든 소동은 정신평등주의 운동때문이다. ‘정의로운 시대’의 가면을 쓴 가짜 공평은 모든 교육 기관의 시험을 없애고, 차별적인 표현을 쓸 수 없으며, 숙제를 하지 않아도, 수업 시간에 잡담을 해도 야단을 칠 수 없게 만든다. 분열과 편견을 조장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금지되고, 지능 같은 개념도,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도 판단할 수 없고, 만들어지는 모든 콘텐츠가 검열되는 세상이 되었다. 대학의 영문과 교수인 피어슨은 무시험 입학제를 비롯해서 정신평등운동에 광적인 학생들로 인해 일이 점점 힘들어 지고 있었다. 


피어슨과 에머리는 십대 때부터 단짝 친구로 40년 째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에머리는 지역 방송국 진행자로 피어슨의 집에 식사를 하러 오면서 남자친구를 데려온다. 에머리는 아름다운 외모 만큼이나 연애를 자주 했는데, 이번 남자친구인 로저는 극작가였다. 그들은 식사 중에 인지 불평등이 금지된 현재 세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날카롭게 대립을 하게 된다. 공적인 자리에서 자칫 실수했다가 경력을 구렁텅이에 빠드릴까봐 조심 중이라는 에머리, 자꾸 선을 넘나들며 현재 세태에 대한 비판을 한다는 피어슨의 남편 웨이드, 그러다 로저와 피어슨이 대립하기 시작한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는 피어슨에게 로저가 '얼간이'라는 말을 했다고 혐오 발언은 삼가해달라고 한 것이다. 정신평등주의에 대해 대놓고 반감을 가지고 있는 피어슨과 사회적 위치때문에 조심하는 에머리, 그리고 이 운동이 대체 해로울 게 뭐가 있느냐며 그것에 동의하는 로저... 급기야 그 상황은 에머리와 로저가 문을 닫고 나가버리기에 이르는데... 피어슨은 오랜 친구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 국민이 명백한 거짓말을 통째로 수용하는 현실로 인해 필연적으로 다른 거짓말이 통용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다. 우리는 진실로 향하는 통로를 끊어버렸고, 그로 인해 진실의 존재 자체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즉, 우리의 대표자는 어떤 말을 해도 되고 어떤 주장을 옹호해도 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은 아름답다. 이 주장 하나만 있으면 사실이 된다. 실제로 참인 것이 아니라 참이기를 바라는 것을 옹호할 때, 우리는 모든 선진 경제가 번영을 일구게 해준 과학적 방법론과 결별한다.                 p.345


<케빈에 대하여>에서 모성의 금기를 부쉈던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이번 작품에서 평등이라는 사회적 금기와 현대의 성역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여호와의 증인 광신도였던 부모로 인해 신앙이라는 이름의 복종에서 탈출하고 저항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녀의 딸 루시는 평등의 이상이 종교적 광신 수준의 열풍을 일으키는 사유의 결핍 속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다. 십대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절친과의 사상 대립, 소통이 단절된 모녀 관계 등을 통해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개인의 기질이 사회와 충돌할 때 겪게 되는 고통과 우정의 붕괴를 고스란히 그리고 있다.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과 평등하게 똑똑하다면, 그 사회는 이상적인 걸까? 평등의 기준은 누가 정할 수 있을까? 평등은 언제나 선한 걸까? 


가장 친밀했던 존재가 가장 정확한 적이 된다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너무도 친밀한 사이였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슴 아픈 아이러니다. 에머리의 가족이 열여섯 피어슨의 삶을 구해줬기에, 그 고마움을 수십 년 동안의 우정이 쌓여 오는 동안 내내 간직하고 있었던 피어슨이기에 두 사람의 우정이 무너지는 상황은 엄청난 타격이 된다. 또한 엄마의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딸이 사회복지국이 피어슨을 고발하게 되는데... 적개심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딸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작품은 사회가 집단적으로 거짓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친구 사이와 모녀 관계라는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부분을 통해 풀어내고 있어 더 파격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서사가 만들어 졌다. 여전히 가장 섬뜩하고 불편한 영역을 정면으로 거침없이 파고드는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신작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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