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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40년 크리스마스는 기묘하게 평화로웠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포로들은 전쟁 상황을 조금도 몰랐다. 고향에서 오는 편지도 없고, 최고 사령부의 지시도 없고, 미래에 대한 감도 없었다. 중세의 성벽 안에 갇힌 그들은 시간의 흐름이 점점 느려지는 것을 깨달았다. 전쟁은 내일 끝날 수도 있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전투의 흥분, 포로가 된 충격, 다른 수용소에서 이곳으로 이송되며 느낀 불안감을 겪고 나서 만난 콜디츠는 동떨어진 장소, 거의 비현실적인 장소처럼 보였다. <도시 위에 높이 떠 있는 동화 속의 성.> p.40~41
1943년 9월의 어느 따뜻한 밤 자정 직전에 구스타프 로텐베르거 원사가 소총을 둘러멘 병사 두 명과 테라스에 나타났다. 포로들은 두 시간 전 이미 숙소에 들어갔고, 숙소 출입문도 잠겼다. 콜디츠는 조용했다. 로텐베르거는 첫 번째 경비병에게 다가가 서쪽에 탈출 시도가 있으니 즉시 경비실에 보고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두 번째 경비병과 세 번째 경비병에게 다가가 근무가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근무 시간은 아직 두 시간 더 남아 있었다. 오늘 근무는 일찍 끝내라는 로텐베르거가 유난히 성마르게 구는 것 같았다. 사실 로텐베르거는 가짜였다. 그의 정체는 스물다섯 살의 영국군 중위 마이클 싱클레어였다. 이미 콜디츠에서 두 번 탈출했다가 다시 붙잡혀 온 경험이 있는 그는 재능 있는 아마추어 배우이자 망상가였다.
머릿속에 온통 탈출 생각뿐이었던 그의 계획은 단순했다. 경비병을 다른 곳으로 보낸 뒤, 먼저 스무 명이 침대보를 찢어 만든 끈을 이용해 건물 바깥쪽으로 내려가는 거였다. 그렇게 인근의 숲으로 들어가면, 남은 일행이 그들의 뒤를 따를 예정이었다. 당시 콜디츠에 갇힌 포로들 중에는 거의 3년이나 된 사람이 많았고, 그 기간 동안 수많은 탈출 시도가 있었으나, 성공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감시받는 자와 감시하는 자 사이의 전쟁이 수용소에서 점점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만약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콜디츠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탈주가 될 터였다. 과연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몹시 굶주린 포로들이 더 많이 도착하자, 에거스는 각자에게 빵 한 조각과 잼을 나눠 주면서 그들이 서로의 빈약한 음식을 훔치지 못하게 권총을 겨누었다. 공습 사이렌이 밤낮으로 울렸다. <모두가 밀치고, 소란스럽고, 사과하고, 냄새가 난다.> 플랫은 이렇게 투덜거렸다. 마침내 연료마저 떨어지자, 독일군은 소수의 포로들을 밖으로 보내 티어가르텐에서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오게 했다. 그렇게 나간 사람 중 한 명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마당으로 다시 걸어 들어오는데, 감옥 냄새가 우리를 강타했다.> 콜디츠는 얼어붙을 듯이 찹고, 악취 나고, 굶주리는 연옥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p.294
독일의 물데강에서 45미터 높이로 솟은 산꼭ㄷ기에 위치한 콜디츠성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동안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다. 독일은 1043년경 지어진 이후 1천 년 동안 강대한 왕조들이 권력과 명성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동안 증축과 개조,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었던 고딕 양식의 성을 개조해 콜디츠 포로수용소를 만들었다. 성의 목적은 처음부터 한결 같았다. 신민들에게 짓눌릴 듯한 깊은 인상을 심어 주는 것, 통치자의 힘을 보여 주는 것, 적에게 겁을 주고 포로를 감금하는 것. 그곳은 구제불능의 포로들을 모아 놓은 수용소였고, 수많은 탈출 시도가 있었다. 포로들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탈출을 감행하고, 간수들은 강력한 통제와 긴장 속에서 이를 감시했다. 콜디츠성은 무시무시한 감옥이었으나 부조리할 때가 많았고, 고통의 장소였으나 고급스러운 희극이 벌어지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 책은 철조망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채 엄중한 감시를 받는 이 새장에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콜디츠는 높이 27m의 담장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며 외부로 이어지는 2개의 통로를 제외하면 주변이 가파른 낭떠러지 혹은 해자로 되어 있었다. 곳곳에 기관총 감시초소가 설치돼 삼엄한 경비 태세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했다. 책에는 생생한 사진들도 수록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콜디츠성은 겉에서 보기에는 단단하고 틈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숨겨진 방, 버려진 다락방, 중세식 잠금장치로 단단히 잠긴 문, 오래전에 기억에서 사라진 틈새 등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래서 탈출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콜디츠에는 전쟁 전의 사회가 축소판으로 구현되어 있었는데, 다만 실제 사회보다 더 기괴할 뿐이었다. 저자는 기밀 해제된 공문서, 생존자 인터뷰 기록, 포로 및 독일군의 저서 등을 토대로 콜디츠에서의 일상과 인물들을 재구성했다. 이 책은 1940년부터 1945년까지의 포로수용소 역사를 정밀하게 복원한 놀라운 논픽션이다. <나치에 맞선 저항>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공간으로 회자되어 온 콜디츠의 진실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웬만한 영화보다 더 극적인 탈출과 생존의 기록이 궁금하다면, 극한에 처한 인간의 면면을 통해 그 어떤 전쟁 서사보다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