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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기쁨 - 온몸으로 불안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해방에 대하여
벨라 매키 지음, 김고명 옮김 / 갤리온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달리기는 마법의 명약이 아니다. 나는 이제 달리기로 인생이 주는 진정한 슬픔에 면역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고통에 대처하는 기술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내가 다시 일어설 수나 있을까 의심했던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날마다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덕에 내가 만든 감옥에서 탈출했고,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경험, 진정한 사랑을 향해 전진했고, 내가 불안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나는 무조건 위험과 두려움부터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달리기가 나를 불행에서 해방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기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p.46~47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달리기를 통해 불안장애를 극복한 경험담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전 세계 100만 부가 판매되며 영국 전역에 ‘러닝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수의 매체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밟던 저자는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서 맞이한 파경을 겪고,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불안장애가 악화되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마비된 것만 같았고, 희망을 모두 잃어버렸고, 인생이 완전히 박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를 구원한 것은 달리기였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뛰어본 적 없었던 그녀는 힘든 일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가장 간단하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는 동안에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이 잠잠해졌고,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도 들지 않았으며, 불안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았다. 종아리는 불에 덴 것만 같았고 심장이 너무 뛰는 바람에 숨 쉬기조차 힘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무력하게 울기만 하던 자신이 달리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녀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달린다. 불안과 근심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은 달리기라는 행위로 발현된 것이다. 처음부터 운동장을 내달릴 엄두는 안 났기에, 낡은 레깅스와 티셔츠를 걸치고 아파트에서 39초 거리에 있는 어둑한 골목길이 시작이었다. 집에서 가까워야 하고 한적해서 자신을 비웃을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3분 정도 달린 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달리는 게 재매있지도, 기분이 좀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 안에서 뭔가가 온갖 핑계를 짓눌렀고, 이틀날도, 그다음 날도 느릿느릿 몇 초 달리다가 멈춰서 쉬기를 반복했다. 달리기 실력은 형편없었고, 나아질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2주 동안 그 어두운 골목을 터덜터덜 달리면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인생은 본래 만만치가 않아서 끊임없이 예상치 못한 전개로 우리를 비틀거리게 한다. 내 인생도 예외가 아니다. 러너로 산다고 항상 인생에 햇살이 비치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명언이 난무하진 않았다(그런 명언 따위는 불쏘시개나 되라지). 시궁창에 빠진 것 같은 때도 있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때도 있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삶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내게 희망이 생겼고, 걱정, 공황, 불길한 예감, 우울증이 항상 내 삶을 쥐락펴락하진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가슴 한복판을 차지하고 앉아서 지그시 압박을 가하지만 않아도 우리는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p.357
살면서 한 번도 운동을 좋아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그렇듯 체육 시간을 싫어했었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등산이라도 가지 않는 한 딱히 일상에서 운동 비슷한 거라도 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달리기를 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일상에 치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따로 할 시간을 내기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제 나이를 좀 더 먹었고 운동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여전히 달리는 것도 땀 흘리는 것도 싫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달리기의 기쁨이라니,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다리는 화끈거리고, 덥고, 힘든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신발 끈을 질끈 묶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만으로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다면, 한번쯤 시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왜 안 돼? 달린다고 손해 볼 거 있어?
이 책은 단순히 달리기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차 있는 에세이는 아니다. 그보다는 구질구질한 인생의 한복판에서 불안과 우울에 맞서고자 고군분투했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치열한 생존기에 가깝다. 누구나 살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고, 그때 다시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제시해준다. 저자는 다른 걸 다 떠나서 달리기를 통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그 행복이란 것이 단순히 달릴 때 생기는 몰입, 쾌감, 기운을 통해서만 얻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가능성의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또한 달리기를 통해 겁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힘껏 지면을 디디면서 뇌를 지치게 하자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각종 공포증과 두려움이 서서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자, 지금 삶이 힘들고 막막하다면, 걱정에 질질 끌려 다니는 중이라면, 달리기를 통해 삶이 바뀌고 공황과 불행에서 해방된 이 이야기가 위로와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