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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목숨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문득 캐럴라인은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이건 살해될 사람 명단이야. 누군가가 우리를 죽음의 표적으로 삼은 거야. 저절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형언할 수 없이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될 거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듯이. 캐럴라인은 명단을 한번 더 읽고는 그렇게 소름 끼치는 망상을 한 자신을 속으로 비웃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명단이라면 당연히 모두가 언젠가는 죽음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오싹하긴 마찬가지였고, 뮤리얼 스파크의 책 <메멘토 모리>가 떠올랐다. 지금 그녀는 별 의미 없는 명단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p.34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인지.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해 인간 내면의 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피터 스완슨이 신작으로 돌아왔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탄탄한 구성으로 살인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져온 작가이기에 이번 작품 역시 기대가 되었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에서 세상에서 독서를 제일 사랑하는 독서광 주인공을 등장시켜 고전 추리 소설 작품들을 단서로 미스터리를 만들어 냈었는데, 이번에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고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했다.
이 작품은 서로 전혀 모르는 아홉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이 포함된 명단을 우편으로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금융회사 부사장, 할리우드 배우 지망생, 무명의 싱어송라이터,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리조트 소유주, 유부남에게 기대어 생활하고 있는 여성, 종양전문 간호사, 작가이자 은퇴한 사업가, 그리고 FBI 요원까지 나이도, 사는 곳도, 배경도 전혀 다른 아홉 명의 사람들은 대부분 명단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한 명씩 살해 당하기 시작하고, 경찰은 그 명단이 일종의 살인 예고라는 걸 알게 되고 수사를 시작하지만 전혀 단서가 없었다. 누가 범인인지, 범인의 목적은 무엇인지, 명단에 있는 아홉 명 사이의 연결고리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일까. 왜 하필 이들 아홉 명일까?
샘은 잘 보존된 양장본을 들고 평소 책을 읽을 때 즐겨 앉는 가죽 안락의자로 갔다. 충동적으로 이 양장본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았다. 인종차별적인 제목이 달렸는데도, 아니면 오히려 그런 제목 때문인지 약 1만 달러나 됐다. 그렇다고 그가 이 책이나 아끼는 다른 책을 팔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샘은 이 책을 다시 읽기로 했는데,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프랭크 홉킨스와 그 명단의 불운한 다른 여덞 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 소설과 어느 정도 유사했다. 샘은 1장을 펼치고 첫 문장을 읽었다. p.151~152
피터 스완슨은 데뷔작인 <아낌없이 뺏는 사랑>에서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비밀 가득한 악녀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누구나 그런 환경에서 같은 선택을 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해질까라는 걸 보여 줬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죽게 마련인데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는 것뿐이라는 살인의 당위성을 굉장히 설득력있게 그려내며,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인지.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었다.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에서는 여성들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집착, 언어폭력, 가스라이팅, 데이트폭력 등 매우 현실적인 공포를 그려 내며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 봤다. 살인마의 마음속 깊은 곳을 옆집에 사는 여성의 눈을 통해 들여다본다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던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증만으로 살인자를 쫓는 사립 탐정의 현재와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희대의 살인자의 과거를 교차 진행시키며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살려 마땅한 사람들>등 정말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었고, 사랑받았다.
이번에 피터 스완슨은 고전적인 플롯에다 자신만의 트릭과 반전을 더해 군더더기 없이 완성도 있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 대부분의 독자들이 범인에 대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스터리를 빈틈없이 직조했고, 후반부의 거듭 되는 반전 또한 강렬한 여운을 남겨 준다. 인간 내면의 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가답게 피터 스완슨의 작품을 읽고 나면 항상 생각할 거리가 남는 것 같다. 피터 스완슨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읽어 왔다면, 이번 작품 또한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같다. 고전 미스터리와 현대 스릴러의 매혹적인 콜라보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