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포포프 - 잊힌 아이들을 돕는 비밀스러운 밤의 시간 다산어린이문학
안야 포르틴 지음, 밀라 웨스틴 그림, 정보람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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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의 말을 듣는 동안 마음속이 따뜻해졌다. 그런 일들을 함께하자는 건지 물어볼 용기는 없었지만, 속으론 그렇길 바랐다. 함께 사과들을 정리한다. 함께 안토노브카를 포장지에 싼다. 함께 잼을 만든다. 누군가 함께란 단어의 울타리 안에 나를 포함해 말하는 걸 들어 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함께 뭔가를 하는 것과 뭔가를 하라는 말을 듣는 건 큰 차이가 있다. '포장지에 싸라.' '잼을 만들어라.'는 이제 그만. 함께 종이에 싸고 함께 잼을 만들고, 함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 얼마나 듣기 좋은지!           p.29


아홉 살 알프레드는 늘 혼자였다. 엄마는 태어나서 본 적이 없고, 아빠도 늘 집에 계시지 않았다. 아빠는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웠는데, 벌써 아빠가 떠난 지 한 달은 지난 상태다. 아빠는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올 건지 한 번도 말해 준 적이 없다. 보통은 떠나기 전에 먹을거리를 사 두곤 했지만, 이번에는 장 봐 두는 것도, 먹을거리를 살 용돈을 남겨 두는 것도 잊어 버렸다. 게다가 전기세 내는 것도 잊어 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가 끊겨 버렸다. 그렇게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알프레드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바깥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멈추더니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다시 발소리는 알프레드의 집 현관문 뒤에 멈춰 선다. 문 뒤에 침입자가 있었던 것이다. 복도는 유령이 나타난 것처럼 조용했고, 갑자기 우편물 투입구가 열리며 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니까 침입자는 평범한 신문 배달원이었던 거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휴대 전화도 전기 없인 켤 수 없었기에 그 신문은 난데없이 떨어진 황금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신문을 보는 동안에는 세상과 뭔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신문 속에는 사과 한 알과 회색 뜨개 양말, 그리고 냅킨으로 감싼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다. 덕분에 끼니를 해결한 알프레드는 다음 날 밤, 그 침입자와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한다.


침입자의 정체는 바로 신문을 배달하며 잊힌 아이들을 찾아내 도와주는 아만다였다.



저는 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갈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어떤 때는 과거로, 어떤 때는 스웨덴이나 중국으로, 혹은 잠수함을 타고 바다 밑바닥으로 갈 수 있다는 걸요. 예전에 저는 신문만 읽었어요. 그게 제가 아는 최고의 읽을거리였거든요. 그때는 신문을 읽으면 제가 온갖 일이 벌어지는 멋진 세상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니 제가 어떤 세상의 일부라도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시간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말이죠.           p.164~165


아만다는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있는 산딸기 죽 색깔의 나무 집에 살았다. 아만다는 아주 특별한 귀를 가지고 있었다. 잊힌 아이들의 존재를 느끼고 그중에 누군가 한숨을 쉬면 항상 떨리기 시작하는, 밝은 귀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귀의 고막이 잊힌 아이들의 한숨이 만들어 내는 파동에 반응해 그들을 찾아내고, 아이들을 돕게 하는 것이었다.

알프레드는 아만다의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우연히 다락에서 낡은 라디오 송신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잊힌 아이들을 위해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한다. 비밀 라디오 방송은 그렇게 시작되고, 방송의 이름은 실제 라디오의 초기 개발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포포프의 이름을 따 '라디오 포포프'가 된다. 고양이 후비투스, 까마귀 하를라모프스키, 그리고 토요일 새벽 3시마다 잊힌 아이들을 돕기 위해 진행되는 라디오 방송까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세계가 다정하고, 신비스럽게 펼쳐진다.



핀란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핀란드아동문학상대상을 받으며 그해 최고의 어린이책으로 뽑힌 이 작품은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는 북유럽에서 아동 학대라는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으로도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동 학대는 그야말로 무관심과 방치이다.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제대로 어른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또한 폭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알프레드를 비롯해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아이들은 모두 부모와 사회로부터 '잊힌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책임감 없는 어른들을 떠나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데,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도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깊은 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작고 여린 존재들이 짓는 한숨 소리를 누군가 들어 줄 수 있다면, 그 마법처럼 아름답고, 기적 같은 일들이 이 작품 속에서는 가능하다.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 들며, 주체적인 어린이 캐릭터의 새로운 탄생을 보여주는 이 작품이 아동 문학의 고전이 되어 주기를... 그리하여 소외되고, 외로운 어린이들에게 한줌의 온기와 희망이 되어주기를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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