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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다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10월
평점 :
삶은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하면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삶은 완전하고 완벽한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삶은 남쪽 북쪽 사방팔방으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p.33~34
아무런 예고 없이, 어머니는 어느 날 중병에 걸렸다. 어머니의 상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어머니를 돕는 올바른 방법인지, 어떤 것을 다르게 또는 더 잘 할 수 있을지, 그 일은 가족 전체를 뒤흔든다. 게다가 어머니의 병은 수천 년 동안 존재했지만 이름이 없었던, 희귀 질병이었다. 어머니는 그로부터 약 11년 동안 상주 간병인과 함께 자신의 아파트에서 지내며, 세 딸들의 돌봄을 받았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자전적 에세이이다.
어머니는 여든여섯 살 반이 되었을 때 문제가 있다는 징후를 보였고, 가족들은 어머니가 이상하게 행동한다는 것, 평소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신경과 전문의와의 진료 상담을 예약했고, 의사는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MRI를 통해 뇌 영상을 읽는 행위에 1000퍼센트 확신이란 것은 없었다. 이후에 명의라는 내과의를 추천받아 진료를 받았고, 그 의사는 어머니가 '정상뇌압수두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 내린다. 당시에 그 병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는 병이다. 가족들은 그렇게 여러 병원을 전전했고,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동시에 한데 몰려든다.어려운 의학적 문제들, 확신의 부족, 선택지와 가능성이 적거나 없다는 느낌으로 가족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힘들었다. 어머니가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가거나 예전 만큼 신체, 정신 능력을 회복하기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해 보였으니 말이다. 저자는 삶의 일부를 포기해야 했고, 삶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낀다.
나는 어머니를 위해 슬퍼하거나 어머니를 애도하지 않았다. 나는 안도감에 마비되었고 피로로 녹초가 되었다. 환희가 아니라 현기증을 느꼈다. 11년이라는 짐, 어머니라는 짐이 떠났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죽었다. 그러나 그 짐, 그 심리적 짐이 완전히 소멸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나는 종종 불안해졌다. 내가 처리해야 할 뭔가를 잊어버렸다고 착각했다. 전화기가 있는 쪽으로 간다. 그러나 내가 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 외에는. 삶은 반사작용으로 가득하다. p.205~206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린 틸먼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소설가로 '작가들이 존경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과 어머니, 가족의 내부 역학을 공개하는 것이 매우 낯설고, 불편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경험을 소설의 재료로 삼을 때는 있지만, 그 경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들어가지는 않기 때문에, 자전적 이야기를 쓰는 데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써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거기에는 내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고 대신 내 양심은 담겨 있었다'라는 문장을 비롯해서, 린 틸먼은 이 책의 곳곳에서 어머니가 싫었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사랑하지 않는,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의무였는지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랑보다는 의무때문에 돌봄을 수행하는 이들의 죄책감, 가족을 돌보는 일의 두려움,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노동의 가치, 척박한 노인 의학의 현실... 이 책 속에 담긴 내용들은 나도 언젠가 겪게 될 일이고, 지금도 누군가는 겪고 있는 일일 것이다. 나이 듦과 병듦, 돌봄과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는 경험이니 말이다. 이 책은 매우 현실적이고 냉철하게, 서늘하고 치열하게 돌봄 노동에 대해 그리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부모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서, 돌봄 노동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