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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냥 - 죽여야 사는 집
해리슨 쿼리.매트 쿼리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7월
평점 :
지난주에 들은 악령이 떠돈다는 계곡 이야기를 듣고 나서, 사샤는 '그분들이 한 말 중엔 사실도 있을지 모른다'는 입장을 택하려는 게 눈에 빤히 보였다. 그럼 나는 어떠냐고? 이 이웃들이 우리를 엿 먹이려고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다고 확신할 뿐 아니라, 그들이 한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재미삼아 한번 시험해 보자는 생각조차 심술궂게 비웃을 작정이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저 사샤와 나는 서로를 잘 알고 있을 뿐이다. p.75
해리와 사샤는 10년 전 대학에서 만났을 때부터 이야기하던 꿈을 마침내 이뤘다. 현관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면 온통 자연뿐인 곳, 인간이 손댄 흔적이 없는 산자락에 집이랑 헛간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이었다. 그리고 해리가 서른다섯, 사샤가 서른이 되고 꿈에 그리던 곳에 신혼집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미국 서부 티턴산맥 국립공원 근처의 산기슭에 위치한 그곳은 웅장한 산맥과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든 간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 속에서 그들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로.
그곳에서 살기 시작한 지 3주째, 해리와 사샤는 이웃에 사는 스타이너 부부를 만나러 간다.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이웃이 딱 하나뿐이었기에, 인사를 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0대 노부부인 댄과 루시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활기차고 건강해 보였다. 노부부는 수십 년째 그곳에 살고 있는 중이었고, 해리와 사샤가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가족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노부부는 해리와 사샤에게 믿을 수 없는 조언을 하게 되는데, 바로 계절마다 찾아오는 산 악령에 대한 것이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각각의 계절마다 특정한 현상이 나타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따라야만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지침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들 투성이라 해리는 그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려고 한다. 그런데, 얼마 뒤 노부부가 경고했던 일들이 하나씩 실제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조용하고 아름다웠던 새 집에서의 평화로운 삶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사샤...... 있죠,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어요. 당신과 해리, 댄, 나는...... 우리는 이 골짜기에서 이사 갈 수 없어요. 우리는 절대로 이 골짜기를 떠날 수 없다고요. 악령이 하는 짓 가운데 그것도 있어요. 이게...... 우리가 빠진 미친 상황이에요."
기절할 것 같았다.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반응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고, 특히 루시에게 이러다니 믿을 수가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p.255~256
제목이 '이웃 사냥'이기 때문에, 연쇄 살인마 혹은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를 상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오싹한 공포를 선사하는 이야기였다. 작품의 원제가 Old Country이기 때문에, 더 자극적이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으로 번역본 타이틀을 잡은 것 같다. 물론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이 너무 안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힘과 '악령'이 등장하는 다소 비현실적인 스릴과 공포를 선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산에서 북소리 같은 게 들려 오면 가능한 빨리 모든 창문을 닫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집 안에 아무것도 들이면 안 되고, 연못에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곧장 벽난로에 불을 붙여야 하고, 곰에게 쫓기는 벌거벗은 남자가 나타나 살려 달라고 소리쳐도 곰이 남자를 공격할 때까지 피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언뜻 듣기에는 무슨 미신도 아니고, 이해하기가 힘들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실제로 해리와 사샤 부부에게 그 일들이 현실로 들이 닥쳤을 때, 정말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 일으키며 이야 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괴담 게시판 노슬립(no sleep)에 연재되면서 수천 개의 좋아요와 댓글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고, 정식으로 출간되기도 전에 10개국에 번역 판권이 수출되었으며, 넷플릭스에 영상화 판권도 팔린 상태이다. 콜로라도의 자연 속에서 자란 두 형제 해리슨 쿼리와 매트 쿼리가 쓴 이 이야기는 실화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지만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는 공포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정체불명의 저주를 두 사람이 각자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도 공감과 이해를 불러 온다. 해리는 종교도 믿지 않고, 전설이나 판타지에도 관심이 없으며, 설명할 수 없는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사샤는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문제에 대처한다. 따라서 계절마다 다른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악령에 맞서는 방식도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르다. 해리는 악령을 도발하기도 하고, 원칙을 따르면서 약간 비켜가기도 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반면, 사샤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합리적으로 해결해보겠다고, 이 미친 짓을 끝낼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진행되던 서사는 후반부에 이르러 엄청난 결말을 향해 가며 완벽한 피날레를 선사한다. 호러물임에도 불구하고 긴 여운을 남겨 주는 작품이었다. 넷플릭스로 영상화되면 얼마나 더 무시무시한 작품이 탄생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