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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되찾다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괴도란 것은 황당한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괴도의 아지트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게 오히려 상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성 있는 거짓말을 하려고 하면, 어린아이의 얕은 꾀로는 금방 논리적 허점이 생긴다. 하지만 이 경우에 아이들은 처음부터 대놓고 거짓말을 하고 있으므로 논리적 정합성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무슨 대답을 해도 괜찮은 것이다. 우리가 거짓말이라고 지적해도 소용없다. 어설프게 숨기려고 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p.72
후텁지근한 바람이 부는 여름의 어느 날, 한 아파트에서 초등학생 연쇄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가 홀연히 사라졌다가 이틀 후 무사히 귀가했고, 얼마 뒤 같은 밤 남자아이가 실종되었고 며칠 뒤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난다. 기묘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가십 잡지의 신입 편집자 사우와타리와 프리랜서 기자 사사키가 해당 아파트로 향한다. 아이들이 연이어 사라졌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걱정하고 있지만, 다시 나타났기에 경찰의 대응은 미흡한 상황이었다. 아이들은 검은 망토를 입고, 머리는 별처럼 생긴 사람에게 납치됐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사라졌을 때 남겨져 있었던 범행 성명문에는 '괴도 다윗 스타라이트'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아이들의 황당한 장난처럼 보이는 사건이었다. 아이들은 왜 이런 연쇄 실종 사건을 협력해서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실종 사건의 트릭을 알아내며 사루와타리와 사사키는 이 연쇄 실종에 평범한 놀이와는 다른 어떤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과연 사건의 배후에 숨겨져 있었던 상상도 못 한 진실은 무엇일까. 사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여름 방학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재미없는 여름방학인 채로 끝내버리는 게 아쉬워서, 사건을 일으키기로 한 거였다. 자신들의 손으로, 즐거운 여름방학을 되찾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던 이 실종 사건의 진상은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갈수록 과거에 있었던 사건과 연결되어 더 복잡한 배경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악의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세 가지 원색이 겹쳐져서 검은색이 되듯이, 여러 가지 요소가 겹쳐지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탄생하고 말았다. 그들에게도 과실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탓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설령 그들이 아무리 괴로워하더라도, 그로 인해 나나미가 눈을 뜨지는 않는 것이다. 돌연 사사키가 벌떡 일어났다. 그의 태도와 표정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한테는 그가 빈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p.453
불가능한 상황에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아이들과 그 트릭을 해명하려는 어른들의 대결은 시종일관 담백하고 무겁지 않게 진행되지만, 그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한 진상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아이들의 단순한 가출이나 장난으로 여겨지던 연쇄 실종 사건이 의외의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가벼운 분위기의 이야기에 점점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다. 사건을 조사하던 사우와타리와 사사키 역시 아이들의 실종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에서 예상외로 재미있는 기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프리랜서 기자 사사키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으니, 그의 비밀은 후반부에 사건이 해결되면서 함께 드러난다.
사는 곳이 다르다는 이유로 시작된 괴롭힘과 따돌림, 그로 인한 사립 중학교 입시에 대한 부담감, 화재 사건에 숨겨진 진실 등 이야기는 상상도 못했던 곳을 향해 달려간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여름방학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사사키가 숨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우와타리는 사사키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집단 괴롭힘이라는 악질적인 풍습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들의 지혜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마침내 만천하에 드러난 진실은 묵직한 울림을 남겨 준다. 어디에도 악의라곤 없었다. 그러나 세가지 원색이 겹쳐져서 검은색이 되듯이, 여러 가지 요소가 겹쳐지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탄생하고 만 것이다. 이 작품은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으로 사랑 받은 오카자키 다쿠마의 신작이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것을 잘 하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일상에 잠재한 수수께끼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미스터리의 소설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