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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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할 수 없지... 우리가 전과자인 건 사실이니까. 인생이 그렇게 간단히 리셋되지 않아. 과거는 언제까지고 따라다녀.....  속죄는 할 수 있어도 실수를 저지른 과거를 지울 수는 없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의심받는 것도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참을 수밖에 없어. 그런 건 힘들지 않아. 다만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애타게 호소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거..... 그게 제일 슬퍼."      p.145

 

여행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던 다카오는 우연히 친구들과 함께 술기운에 딱 한 번 각성제를 사용했다 적발되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 일로 인해 직장에서는 해고되었고, 갑작스러운 화재 사고로 집에서 나오게 되어 갈 곳이 없어졌다. 어쩔 수 없이 보호사에게 거주지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뭔가 독특한 셰어하우스 ‘플라주’에서 살게 된다. 일층에 있는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집주인 ‘준코’ 외에 거주자는 남자 셋, 여자 두 명이었다. 욕실과 화장실은 공용, 식사는 제공이 되는데, 각 방에 문이 없고 커튼만 있다는 게 가장 특이한 점이었다. 입주자들은 서로의 사생활은 간섭하지 않으면서,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노래도 부르는 등 사이 좋게 지내고 있었다. 다카오도 점점 그들과 가까워지지만, 직업도 성격도 제대로 알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다카오는 취직을 준비하면서 이곳 저곳에 면접을 보지만, 전부 다 떨어지고 알고 봤더니 자신의 과거 이력 때문에 그 어디서도 합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절망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그저 한 번의 실수였고, 실제로 집행유예를 받았으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회에서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그저 '전과자'였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다카오는 플라주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어두운 과거가 하나씩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플라주는 전과자만 입주 가능한 곳이었던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혹은 애인이나 가족의 범죄 때문에, 폭력에 휘말려서, 분노를 억제 하지 못해 등등의 이유로 사회로부터 '전과자'라는 낙인 찍힌 사람들, 세상은 그들을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프랑스어로 해변이라는 뜻의 '플라주'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점,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이자 일종의 완충지대였던 것이다. 준코는 왜 이런 범죄자를 위한 셰어하우스를 만든 것일까.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던 이들 전과자 여섯 명은 과연 사회에 제대로 발을 디딜 수 있게 될까.

 

 

"그렇지만 말이야, 반칙이란 언제 누가 할지 모르는 거고, 별 악의가 없어도 순간적으로 아차 해서 할 때도 있잖아. 단방에 퇴장당하면 반성이고 뭐고 없지만 그래도 우리처럼 재출장이 허락되면 한 번더 해보자. 하는 그런... 뭐랄까... 한번 시합에서 아웃당해본 인간만 아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한번 사회의 틀 밖으로 벗어나서 밖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있다고 할까. 아아, 사회란이런 거구나, 법이란 이런 거구나.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됐구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건 절대 나쁜 면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p.175

 

혼다 데쓰야의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를 읽어 왔던 독자들이라면 이번 신작의 분위기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성장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미모의 여형사가 주인공인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범죄 묘사에 있어 그로테스크할 만큼 잔인하다는 점이었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지우 시리즈, 무사도 시리즈 등과 단행본 작품들에서도 스토리나 완성도와 별개로 잔혹하고 끔찍한 묘사가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작가 이름을 모른 채로 이 작품을 읽었다면, 바로 혼다 데쓰야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전과자들이 등장하고 사건이 벌어지고 미스터리의 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따뜻하고, 온기가 느껴지는 드라마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니 말이다.

 

입주자들 모두 전과자로 구성된 특이한 셰어하우스 '플라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각각의 전과자들의 사연과 함께 특정 범죄의 진상을 파헤치려는 기자의 시선으로 진행되고 있다. 칠 년 전에 벌어졌던 한 남자의 살인 사건이 수사 난항을 겪다 삼 년 만에 여자의 증언 번복으로 용의자였던 남자가 강도살인죄로 송치되었었다. 그리고 징역 십이 년의 실형을 판결받았는데, 당시 알리바이 증언을 뒤집었던 여자의 증언 철회로 항소심에서 무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였다. 기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사건을 좇는 것을 자신의 숙명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급기야 전과자인 척 플라주에 입주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가 살인범이라고 믿고 있는 남자가 플라주의 입주자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프리랜서 기자의 스토리와 플라주의 기존 입주자들의 사연이 별개로 진행되다가 후반부에 교차되면서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매력을 보여준다. 기존에 혼다 테쓰야의 작품들을 읽어 왔다면, 이번 작품으로 그의 색다른 매력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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