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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스트 더프리스 지음, 금경숙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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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는 내 손에서 자발없이 교태를 부리듯 떨었고,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는 까닭이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그에게 할 말과 그를 도발할 방도를 짜 놓았으나, 정작 내 안에서는 끓기 시작할 때 부글거리는 우유처럼 무언가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었다. 분노가 아니라면 불신의 감정이었다 -- 아니 어쨌거나 나에 대한 분노였다. 모든 가능성을 따져 보았으면서도 그가 여기에 실제로 있을 가능성은 빼 놓았다는 것, 그 역시 선제공격능력이 있다는 것, 전화선은 양방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라는 존재의 현실성.    p.117~118

 

이야기의 화자는 잡지 <몽유병자>의 편집장인 프리소 더포스로 그는 히틀러 연구학의 독보적인 권위자 요시프 브리크의 정통 후계자임을 자처했다. 프리소에게 브리크는 독자가 원하는 어떤 주제라도 두 달에 한 번씩 꾸준하게 5천 자 에세이를 써 주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와 함께 있을 때는 하던 일을 다 제쳐 놓고 그에게 온전히 집중하고는 했다. 그들은 함께 여행을 가고, 가족의 생일날에 동행하고, 그가 쓴 글을 제일 먼저 읽고 비판과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친구 사이이기도 했다. 어느 날 브리크는 칠레에서 이름이 히틀러인 남자를 만났는데, 좋은 기삿감이 될 수 있으니 함께 칠레에 가보라고 제안을 한다. 프리소는 기분 전환도 할 겸 칠레에 가는데, 비행기 탑승 계단에서 넘어져 찰과상을 입게 되는데 상처에 감염이 되는 바람에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 겨우 살아남았지만,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는데 바로 요시프 브리크가 갑자기 운명했다는 거였다. 암스테르담에서, 창문에서 추락했는데 사고였는지는 조사 중이라고 온 신문에 기사가 났다는 거다.

 

프리소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유일한 멘토이자 친구를 잃은 상실감에 괴로워한다. 학계와 언론은 브리크의 업적을 재조명하며 그의 후계자에 주목하는데, 바로 추도식에서 눈길을 끄는 추도 연설을 했던 그의 제자 필립 더프리스라는 청년이었다. 프리소는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이 아니라, 그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인물이라는 점에 강렬한 질투에 사로잡힌다. 그는 필립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전 세계 히틀러 학자들이 모이는 학회에서 그를 공개적으로 만신을 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데, 지극히 사적인 그의 복수극은 거대한 산사태가 되어 대소동을 일으키게 된다.

 

 

나는 이 상황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내가 어떤 부담을 져야 할지, 누가 관련되어 있는지, 그리고 만약 '실수였네, 미안'이라고 할 수 있는 해법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양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 상상 속에서는, 호텔에 걸어 들어가 외투 주머니 양쪽에서 구식 리볼버 권총을 꺼내어, 수위, 경비, 사환, 프런트 직원, 청소원, 숙박객, 니나, 스베더르 뷔르허르스, 필립 더프리스를 한 명씩 한 명씩, 자욱한 포연 속에서 볼링핀인 양 꽝하고 쓰러뜨리는 장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히틀러가 강도 든 은행을 덮칠 때처럼, '1인의 보니와 클라이드'처럼.     p.221~222

 

이 작품은 네덜란드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 불리는 요스트 더프리스의 장편소설로 플랑드르 지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황금책부엉이상을 수상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낯선 네덜란드의 작가의 이 작품은 사실 읽기에 만만치가 않았다.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둘러싼 농담과 진지한 연구들이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괴짜 연구자들이 현대 지식인 사회를 풍자하는 부조리극이라는 점도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더디게 만든다. 게다가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며,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우스꽝스러운 거짓말이 뒤섞여 벌어지는 이야기라 좀처럼 집중하지 않으면 서사의 줄기를 제대로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그에 비해 흥미로웠던 점은 자신의 책이 그 어떤 소설보다 ‘픽션’임을 자각시키는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과 히틀러라는 인물이 가진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의 매력과 영향력에 대한 연구를 주저하지 않는 괴짜들의 지적 유희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지점이었다. 한 젊은이가 경쟁자에게 밑도 끝도 없는 복수심을 가지게 되는 소소한 이야기에서 출발해 브리크의 유산에 주목한 이스라엘 첩보부가 접근하고, 나치로부터 오른팔 경례를 되찾으려는 과격파 시민단체가 난입하며 점점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하게 되는 그 엉망진창 대소동이 주는 색다른 재미도 빼놓을 수 없을 테고 말이다. 요스트 더프리스는 이 작품에서 히틀러가 대중에게 친근한 캐릭터로서 불멸성을 갖게 된 아이러니를 꼬집고, 하나의 문화를 향유하는 집단의 밝고 어두운 면을 풍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스승이자 친구를 제대로 떠나 보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젊은 지식인의 고뇌와 유별나고 긴 고별사를 인상적인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현대 네덜란드 문학과 젊은 세대 작가들의 저력을 확인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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