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냐도르의 전설 에냐도르 시리즈 1
미라 발렌틴 지음, 한윤진 옮김 / 글루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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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 그는 널 무너뜨리기 위해 뭐든 할 거야. 내 책임이 크다. 네게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어."
트리스탄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아그네스와 내게 그런 충고를 했을 때 난 그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어. 엘프들이 우리의 자유를 앗아갔으니까. 하지만 우리의 긍지와 용기만큼은 그들에게 빼앗겨선 안 돼. 그러니까 처음부터 강해지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은 없었던 거야."     p.197

 

인간이 에냐도르 대륙을 통치하던 먼 옛날에는 네 군주가 얼음처럼 차디찬 북부, 풍요로운 남부, 황량한 동부, 수산자원이 풍부한 서쪽 해안을 나누어 다스렸다. 하지만 대륙 전체를 지배하려는 욕망에 부푼 군주들의 탐욕이 위대한 마력을 지닌 대마법사와 만나 엘프, 드래곤, 데몬, 그리고 인간이라는 네 종족을 만들어 내게 된다. 반은 사람으로, 반은 짐승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형상으로 살아가는 드래곤은 허공에서 화염을 다루는 능력으로 다른 민족을 습격하고, 불태우고 파괴했다. 치명적인 눈빛만으로 타 종족을 굴복시킬 수 있는 데몬은 추악한 형상이었지만,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한 가죽의 피부로 인해 드래곤의 화염도, 인간의 칼도 해칠 수 없는 존재였다. 누구보다도 아름답지만 도도하고 쌀쌀맞은 엘프는 어떤 가죽과 살도 베어 낼 수 있는 강철 검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하여 드래곤은 엘프를, 엘프는 데몬을, 데몬은 드래곤을 공격하는 끝 모를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인간에게는 다른 종족으로부터 그들을 지킬 수 있는 마력이라는 능력을 얻었지만, 그 능력은 인간들 중 일부에게만 이어졌고 나머지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 갔다. 그로 인해 인간은 엘프에게 복속되어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었는데, 매번 장남으로 태어난 인간은 엘프에게 징발당해 드래곤과의 전쟁터로 끌려갔다. 드래곤과 맞서 싸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 없었고, 죽음이라는 예외 없는 결과에 사람들은 자신의 아들을 보내지 않기 위해 고아를 데려다 키워 엘프에게 선발되도록 했다. 이야기는 고아로 자란 열일곱 트리스탄이 엘프에게 징집되어 끌려가면서 시작된다. 트리스탄과 친형제처럼 자란 카이는 마법사였고, 인간들 중에 마법사를 색출하려는 엘프에 의해 그의 동생인 열다섯 아그네스가 대신 엘프족의 포로가 되고 만다. 결국 카이는 홀로 아그네스와 트리스탄을 구출하러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고, 아그네스는 마법 능력을 검증받기 위해 엘프의 성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엘프에 의해 수백 년 동안 죽지 않는 저주에 걸린 채 감금되어 있는 마법사 엘리야를 만나게 된다.

 

 

이조라는 그의 목소리,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좋았다. 이런 감정은 그녀에게 몹시 낯설었고, 뭐라 말할 수 없지만 마치 마법 같았다. 긴 겨울 끝에 처음 본 따스한 햇살처럼. 해가 뜨고 아침이 되면 아엘프스탄의 협곡에 자욱하던 안개가 사라지고 다시 새날이 찾아오는 것처럼. 하지만 이조라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로리안이 이해되지 않았다. 제게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에서 머리카락이 뒤로 흘러내리자 이조라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달았다. 이 매혹적인 젊은 남자는 엘프가 아니었던 것이다!     p.401~402

 

데몬은 엘프에게 대항하기 위해 드래곤을 의지 무력화 상태로 만들어 이용했고, 엘프는 드래곤에 맞서기 위해 인간을 노예로 삼아 맞섰다. 최후에 누가 승리할지 아무도 모르는 끝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데몬과 드래곤, 엘프, 그리고 인간은 수 세기에 걸친 전쟁의 참화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철전지 원수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데몬, 드래곤, 인간, 엘프가 진실이라는 하나의 핏줄로 이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있다는 예언이 있었다. 바로 불구대천의 숙적이 서로 표식을 나누어 가져 만들어지는 '파수꾼'이라는 존재가 각 왕국의 지배자가 되어 다스리게 된다면, 에냐도르에도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거였다. 제 종족과 적대적 관계에 놓인 종족의 대리인이 남긴 상처를 통해서, 인간과 엘프, 드래곤, 데몬의 파수꾼이 탄생하게 되는데, 과연 네 종족의 젊은이들은 고대의 숨겨진 예언대로 에냐도르의 평화를 위해 화합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곧 출간될 에냐도르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인 <에냐도르의 파수꾼>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독일의 판타지 작가 미라 발렌틴의 에냐도르 시리즈는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만나게 되었다. 작가는 도서박람회에 작품 속 등장 인물의 차림으로 참석할 정도로 늘 판타지 세계에 산다고 한다. 저널리스트로 일하다 이 작품의 큰 성공으로 인해 전업 작가가 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판타지 덕후다운 면모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작품이라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다. 마법사와 드래곤이 등장하는 등 정통 판타지 작품다운 요소들이 가득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게 만드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전혀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차가운 엘프가 너무도 평범한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모험 서사가 중심 플롯을 이루고 있고, 성격도 능력도 각각 다른 다양한 캐릭터들이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작품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재미 그 이상은 아닐 경우에 말이다. 무의미한 폭력, 빈곤과 비탄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잠시나마 소설 속 세계에서 위안을 구하는 일에 작품성과 의미와 가치를 굳이 따질 필요야 없지 않겠는가.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이 굉장히 재미있다는 것, 그리고 첫 번째 이야기를 읽었다면 반드시 두 번째 이야기도 읽고 싶어질 거라는 것이다. 판타지라는 장르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은 일상적인 풍경을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매혹적인 상상의 세계 안에 가져다 놓기 때문일 것이다. 자, 당신을 쉽고 재미있는 판타지의 세계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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