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잔혹한 어머니의 날 1~2 - 전2권 타우누스 시리즈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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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덴슈타인은 밝은색 옷감이 든 비닐봉투 하나를 들어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그것이 분홍색 면 팬티임을 안 순간 그는 슬픔에 휩싸이고 말았다. 속옷의 주인은 죽은 날 아침 옷장서랍에서 이것을 꺼내 입었으리라. 언제나 그랬듯이. 그날이 마지막 날이 될지는 꿈에도 모른 채. 얼마나 많이 세탁하고 다림질했을까? 그녀는 그날 왜 하필 이 속옷을 골랐을까? 옷을 고를 때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꼈을까? 그에게 사건이 개인적인 일로 다가오는 순간은 바로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되었다. 누군가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눈 앞에 누워 있는 이 시체도 멀쩡히 살아 숨쉬는 인간이었을 터였다.    -1, p.200

부활절 연휴가 끝나자 마자 몰스하인의 오래된 저택에서 남성 변사체 한 구가 발견된다. 개 한 마리와 함께 홀로 살고 있던 80대 노인인 테오도르 라이펜라트는 이미 죽은 지 10여 일이 지난 듯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왜 그 동안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었을까. 얼핏 보기엔 자연사인 것처럼 보였다. 노인이 키우던 개 역시 아사 직전인 상태로 발견되는데, 놀랍게도 견사에 널려 있는 뼈들이 인골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덕분에 또 하나의 고독사 사건으로 치부되어 부검 없이 서류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검안 과정에서 두부손상이 발견되어 그가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이 보이는데, 수사 결과 사망자의 자택에서 여성 유해 세 구가 발굴되었고, 그들 모두 5월 어머니의 날 전후 실종된 것으로 밝혀진다. 과연 노인은 연쇄살인범일까, 아니면 연쇄살인의 또 다른 희생자일까.

라이펜라트 부부는 전쟁 때 전쟁고아들을 맡아 키우던 수녀원이었던 건물을 사들여 지난 20여 년간 인근 보육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입양해 보살펴왔다. 리타 라이펜라트 부인은 1995년부터 실종된 상태인데, 아직도 마을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말한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민낯이 드러나는데, 그녀는 아무 힘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욕조에 처박고 아이스박스에 가두고 우물에 던져 넣고 랩으로 몸을 감싸는 등 무자비하고 가혹한 체벌을 일삼아왔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폭력과 억압이 어떻게 거대한 비극으로 발전하게 되는지를 그리고 있는 거대한 서사는 세 가지 미스터리가 교차 서술되면서 진행된다.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란 대부분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이면서 어느 순간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폭력의 산사태가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탄탄한 구성과 다양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플롯으로 인해 시선을 뗄 수 없는 마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더욱 정교해지고, 깊이 있어지는 넬레 노이하우스의 필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저는 이 흉악한 살인자에게 희생된 피해자들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맡을 때 적어도 피해자와 유족들의 원한은 풀어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살인사건 전담반의 동료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강력범죄의 피해자를 탈개인화하는 것은 결코 그들을 존중하지 않아서, 혹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수사를 하면서 객관성을 유지하고 감정적 타격을 받지 않기 위한 자기보호 차원입니다. 세상의 악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우리가 이런 것들을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인 겁니다."    -2, p.138~139

넬레 노이하우스의타우누스 시리즈아홉 번째 작품이다. 타우누스 시리즈는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데, 이번 작품 역시 시리즈 정점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읽었다. 이 시리즈는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미덕과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흡인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그리고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재미를 더해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사건과 범인, 그리고 해결되는 과정만 있어도 미스터리 스릴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스토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굴러갈 때의 그 짜릿한 즐거움과, 등장인물에게 이입되어 울컥하는 감동까지 주기란 쉽지가 않으니 말이다.

출간된 타우누스 시리즈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01 사랑받지 못한여자  (원제 : Eine unbeliebte Frau)
02 너무 친한 친구들  (원제 : MORDSFREUNDE)
03 깊은상처  (원제 : Tiefe Wunden)
04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원제 : Schneewittchen muss sterben)
05 바람을 뿌리는자  (원제 : Wer Wind Sat)
06 사악한 늑대  (원제 : Boser Wolf)
07 산 자와 죽은 자 (원제 : Die Lebenden und die Toten)
08 여우가 잠든 숲 (원제 : Im Wald)
09 잔혹한 어머니의 날 (원제 : Muttertag)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 특징은 무엇보다 퍼즐을 맞추는 즐거움에 있다고 하겠다. 일반적인 미스터리 물에서 흔히 치중하는 단순히 범인 찾기, 혹은 반전이나 트릭에만 집중하지 않는 대신, 그녀의 작품은 꼼꼼한 복선과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치밀하게 엮어서 한 편의 거대한 퍼즐이 완성되는 식이다.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인물들,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대사 한 마디, 누군가의 행동들이 결국엔 모두 한 방향으로 흘러 마지막 결론에 이른다. 단순히 깜짝쇼처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되어 감탄사를 불러 일으키는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은 편인데도 그들 각각이 어떻게든 관계를 가지고 있어 사건이 진행되면서 그에 대한 퍼즐을 추리하는 재미 또한 굉장하다. 전작이었던 <여우가 잠든 숲>에서 수사반장 보덴슈타인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데 비해, 이번 작품 <잔혹한 어머니의 날>에서는 피아 형사의 가족사를 비롯해 그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가 연루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노인의 고독사, 아동 학대 등의 사회적 문제와 가족이라는 허상, 세상 모든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까지 담고 있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2권 말미에는 넬레 노이하우스 작가 인터뷰와 시리즈 각 권의 내용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으니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아직까지 타우누스 시리즈를 만나보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이 작품으로 넬레 노이하우스의 진면목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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